‘아캣텍처-스위스 고양이 사다리’에 담긴 사진. 미끄럼 방지용 널빤지가 일정 간격으로 있는 타입의 ‘치킨 사다리’에서 고양이들이 서로 만난다. 사진 김진영
‘아캣텍처-스위스 고양이 사다리’에 담긴 사진. 미끄럼 방지용 널빤지가 일정 간격으로 있는 타입의 ‘치킨 사다리’에서 고양이들이 서로 만난다. 사진 김진영

고양이는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애완동물 중 하나다. 반려묘와 함께 사는 사람은 고양이가 쉬거나 놀 수 있도록 만들어진 캣타워(cat tower) 등 집 안에 고양이에게 적합한 물건을 갖춘다. 고양이를 위한 실내 제품이 애완동물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매해 놀라운 수치로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스위스 베른에는 고양이와 관련해 우리 눈에 다소 생경한 풍경이 집 바깥에 펼쳐져 있다. 스위스의 사진가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브리지트 슈스터(Brigitte Schuster)는 다른 지역에서 베른으로 이사한 후, 그 지역 주민에게는 익숙한 것이지만, 그녀에게는 독특하게 느껴지는 풍경을 한 가지 발견한다. 바로 건물 외벽에 설치된 고양이 사다리였다. 베른에는 고양이가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사람이 손수 만든 고양이 사다리가 건물 외벽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고양이(cat)와 건축(architecture)의 합성어 ‘아캣텍처-스위스 고양이 사다리(Arcatecture-Swiss Cat Ladders)’라는 제목의 사진집에는 브리지트 슈스터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베른 곳곳에서 포착한 고양이 사다리의 다양한 모습과 형태가 담겨 있다. 나무판자를 단순히 부착한 형태부터, 지그재그로 발판을 설치해 고층까지 연결한 형태, 빗물 파이프에 계단을 부착한 형태, 나무와 건물을 이은 형태, 섬세한 나선형 구조, 우편함을 지지대로 쓴 형태, 발코니끼리 연결한 형태 등 다채로운 유형의 고양이 사다리가 책에 담겨 있다. 실내에 두기 위해 생산되는 고양이 제품들과 달리, 이 사다리들은 규격화돼 있기보다 미리 조성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어진 이른바 ‘홈메이드’ 사다리들이다.

자신을 ‘고양이 사다리 연구자’라고 자처하는 브리지트 슈스터는 다양한 고양이 사다리를 촬영한 후, 이를 형태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해, 순서대로 책에 수록했다. 큰 분류로는 총 12가지, 세부 분류를 포함하면 총 23가지나 되는 사다리는 주어진 환경에 맞춰 고양이 이동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사람들의 창의성을 엿보게 한다.

이 사진집에 수록된 사진에서 사다리와 고양이가 함께 찍힌 것은 많지 않다. 브리지트 슈스터는 이 점을 현실의 반영이라 말한다. 실제로 고양이는 사다리 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몇 초를 사다리에서 보낼 뿐이다. 자연스레 브리지트 슈스터의 사진에도 사다리를 이용 중인 고양이가 찍힌 장면보다, 고양이 없이 사다리만 담긴 장면이 많다.

이 사진집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 사다리들이 당연히 길고양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건물 외벽에 있는 사다리이니, 길고양이를 위한 시민의 배려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사다리가 한쪽 끝은 야외에 걸쳐 있지만, 다른 한쪽 끝은 실내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사다리들은 고양이가 실내에서 실외로, 다시 실외에서 실내로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는 실내 생활만 하고, 야외 활동을 안 좋아할 거란 관점에서 봤을 때, 실내와 실외를 연결하는 이 사다리들은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집 안과 밖을 오간단 말인가?


브리지트 슈스터의 ‘아캣텍처-스위스 고양이 사다리’ 표지. 사진 김진영
브리지트 슈스터의 ‘아캣텍처-스위스 고양이 사다리’ 표지. 사진 김진영
‘아캣텍처-스위스 고양이 사다리’에서 사다리 종류를 스케치한 것. 사진 김진영
‘아캣텍처-스위스 고양이 사다리’에서 사다리 종류를 스케치한 것. 사진 김진영
‘아캣텍처-스위스 고양이 사다리’에 담긴 사진. 나선형 계단 타입의 사다리. 사진 김진영
‘아캣텍처-스위스 고양이 사다리’에 담긴 사진. 나선형 계단 타입의 사다리. 사진 김진영

고양이 사다리는 모두에게 자유를 준다

이 사진집의 서문에는 이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동물 심리학자이자 생태학자인 데니스 터너(Dennis C.Turner) 박사는 수년간 고양이의 실내 및 실외 생활에 관한 연구를 한 결과, 고양이에게 실외 생활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에 따르면 고양이가 어린 시절부터 야외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야외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이 실내에서의 심리적 불안을 해소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고양이가 야외에 존재하는 다양한 자극을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고, 실내 환경이 생물학적이고 심리적인 필요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줄 경우에 고양이는 실내에서 잘 자랄 수 있다. 하지만 데니스 터너 박사는 통계적으로 실외 생활을 겸하는 고양이보다 실내에만 있는 고양이가 심리적 불안 증세를 많이 보인다고 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힘줘 말한다. “많은 고양이는 야외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집주인이 언제나 고양이를 데리고 나갔다 들어오는 생활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고층에 사는 주인이 고양이를 아래층에 내려다주고, 고양이가 돌아올 때에 맞춰 마중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가장 좋은 방법이 ‘아캣텍처’에 담긴 다양한 형태의 고양이 사다리일 것이다. 고양이가 집 안팎을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작은 구멍이 고양이가 스스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해준다.

브리지트 슈스터는 고양이 사다리가 고양이뿐 아니라 주인과 고양이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설치물이라 말한다. “고양이 사다리에 대한 조사는 나로 하여금 몇 가지 매우 흥미로운 발견을 하도록 이끌었다. 고양이 주인들은 그들의 고양이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자유를 사랑하고 자신만만한 스위스의 고양이 주인들은 자신의 욕구와 행동을 고양이에게 투영하기 위해서 고양이 사다리를 사용한다. 이러한 투영에도 불구하고, 주인과 고양이 모두 실질적으로 고양이 사다리의 혜택을 본다. 고양이 사다리는 모두에게 자유를 준다. 밖으로 나가는 것에 익숙해진 고양이는 독립적으로 오가고, 주인은 고양이를 들이기 위해 집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고양이 사다리가 건물 외벽에 설치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스위스의 건물주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브리지트 슈스터의 사진은 고양이 사다리가 건물 외관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미적으로 어우러져 또 다른 도시 경관을, 나아가 도시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양이 사다리를 가까이 들여다봄으로써, 도시를 구성하는 주요한 사회적, 건축적, 미적 관점이 드러나고, 이는 곧 베른이라는 도시의 주요 특징이 된다. ‘새로운 고양이 사다리가 더해지고, 낡은 고양이 사다리는 제거’되는 혼성과 변화의 과정을 통해 고양이 사다리라는 문화적 유산이 다음 세대로 전달될 것이다.

물론 나라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공간 특징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것은 자명하다. 고양이가 야외로 나가는 것이 위험한 환경이라면, 이러한 사다리가 설치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스위스에 고양이 사다리가 일반적이라는 것은 고양이가 야외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환경임을 시사한다. 인간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의 방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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