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엽편(葉篇) 소설집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을 낸 2002년 동인문학상 수상 작가 성석제. 사진 조선일보 DB
최근 엽편(葉篇) 소설집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을 낸 2002년 동인문학상 수상 작가 성석제. 사진 조선일보 DB

내 생애 가장 큰 축복
성석제│샘터│284쪽│1만3000원

소설가 성석제는 박정희 정권 때 중·고등학생이었다. 그 무렵 전국의 웬만한 학교에는 ‘미친개’라는 별명이 붙은 교사가 한 명은 꼭 있기 마련이었다. 학생을 미친 듯이 쥐어 패던 교사는 군사 정권 시대의 폭력성을 체현(體現)하는 듯했다.

2002년 동인문학상 수상 작가 성석제가 최근에 낸 엽편(葉篇) 소설집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을 펼치니까, 그 시절에 성행했던 추억(?)의 폭력 교사 이야기 한 토막이 실려 있다. 엽편(葉片)처럼 분량이 단편보다 더 짧은 소설 40편이 이 책에 들어있다.

그중 ‘펠레의 전설’이란 이야기에서 화자 ‘나’는 “요즘은 보기 드물겠지만, 아니 있을 리가 없지만 내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교마다 혹은 학년마다 한두 명씩 권투 챔피언을 연상케 하는 강력한 펀치를 자랑하는 교사가, 아니 스승이, 아니 선생님이 있었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 교사의 별명은 ‘펠레’였다. 축구를 엄청나게 잘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교사에게 맞지 않고 졸업한 학생이 없다시피 할 정도로 잘 팼기 때문에 처음엔 ‘다 패버릴래’로 불렸다가, ‘다 팰래’로 변하더니, 이어 ‘펠레’로 음운 변환을 거쳤다.

어느 날 ‘펠레’ 선생이 무슨 까닭인지 심기가 불편한 상태에서 얼굴을 찌푸린 채 그가 담임 맡은 반에 들어섰다. 그는 장갑 낀 손가락으로 유리창 난간에 소복이 쌓인 먼지를 흡족할 만큼 들추어냈다. “봐라. 이게 바로 너희들의 정신 상태를 보여준다. 불결하고 비위생적이고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증거란 말이다.”

드디어 ‘펠레’는 몽둥이를 쥐고선 “주번이 누구냐? 손 들고 나와”라고 고함을 질렀다. 주번은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은 무슨 일인가로 밖에 나가 교실에 없었다. 교실에 있던 주번 한 명은 워낙 심약해서 광분한 ‘펠레’ 앞에 감히 나서지 못한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무도 나오지 않자, ‘펠레’는 더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 쓰레기장 같은 반에는 주번도 없나? 주번이 누구얏! 당장 앞으로 튀어나오지 못해! 주번!”

그러자 앞자리에 있던 한 학생이 튀어나갔다. 펠레는 “너 왜 아까 나오랄 때 안 기어 나왔어?”라며 음성을 높였다. 그때 밖에 나갔던 주번 학생이 교실에 들어왔다. 교감이 각 반 주번 대표를 불러 지시하는 자리에 갔다 왔다는 것. 그 아이는 ‘펠레’ 앞에 나와 있던 급우를 가리켜 “넌, 넌, 주번이 아니잖아?”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주번도 아닌데, 주번처럼 나왔던 아이는 “저 구 번인데요. 구 번 나오라는 줄 알고”라며 울먹였다. 그 순간 아이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펠레’는 당혹스러운 나머지 더 화가 났다. “반장 누구야! 반장! 너 이리로 나와!”

그때 반장은 껌을 씹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펠레’의 부름에 미처 껌을 뱉지 못한 채 달려 나갔다. ‘펠레’는 본격적으로 매타작할 요량으로 와이셔츠 소매를 걷기 위해 단추를 하나씩 풀 때마다 한 마디씩 끊어가며 “네가, 이, 반의, 뭐야, 도대체? 넌, 이, 반, 에, 뭐, 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반장은 대답했다. “껌인데요.” 교실은 다시 웃음바다에 잠겼고, 아이들은 뒤로 자빠졌다. 성석제 특유의 말놀이를 활용한 풍자와 해학이다. 이런 식의 유머가 이 책 곳곳에 흩어져 있다. 배를 잡고 뒹구는 아이들을 보면서 ‘펠레’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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