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손튼(해리슨 포드)과 벅은 야생에서 인간과 인간 이상의 깊은 감정 교류를 나눈다. 사진 IMDB
존 손튼(해리슨 포드)과 벅은 야생에서 인간과 인간 이상의 깊은 감정 교류를 나눈다. 사진 IMDB

19세기 말, 사람들은 황금을 찾아 알래스카로 몰려갔다. 멀고 춥고 눈이 쌓여 말을 탈 수 없는 북극의 이동 수단은 개썰매. 그래서 크고 힘센 털북숭이 개들이 비싼 값에 팔렸다. 이러한 세상의 변화는 덩치만 컸지 동네방네 철없이 뛰어다니던 개구쟁이 강아지 벅에게도 불운으로 닥친다. 개장수에게 납치돼 북극으로 팔려 가는 신세가 된 것. 왜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지,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벅은 춥고 좁은 철창에 갇혀 배고픔과 채찍의 공포를 처음으로 알게 된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법, 배에서 내린 벅은 하늘에서 축복처럼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용감하게 털어낸다. 그가 맡은 첫 임무는 아홉 마리의 썰매 개와 함께 우편마차를 끌고 편지를 배달하는 것. 힘은 들었지만, 주인에게 귀여움받고 먹이를 얻는 즐거움 말고도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보람을 배운다. 동족과 관계, 인간과 사이에 우정과 신뢰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벅은 험난한 자연, 사나운 눈보라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간다. 무엇보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설원을 달릴 때, 가슴 밑바닥에서 힘차게 밀고 올라오는 어떤 목소리가 끊임없이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느낀다.

벅은 기존의 우두머리와 대결 후 당당히 대장 자리에 오른다. 벅은 더는 철부지 강아지가 아니었다. 무리의 리더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벅이 달린 거리는 수천㎞. 하지만 편지 대신 전보가 상용화하자 우편마차는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다.

돈에만 혈안이 된, 누구보다 어리석고 무능하고 잔혹한 새 주인은 최악의 인간이었다. 모진 학대를 당하다 그의 총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한 순간, 벅은 운명처럼 존 손튼을 만나 목숨을 구한다. 금을 발견하겠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아들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지 못해 세상 밖으로 도망쳐 온 손튼은 벅을 자신의 오두막으로 데려온다.

개든 인간이든 생명은 똑같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지만, 죽어가는 벅에게서 어린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죽음 직전에 목숨을 구해 준 손튼은 벅이 죽어서도 충성을 바칠 단 한 명의 인간이 된다. 손튼 역시 사람에게서는 얻지 못한 위안을 벅에게서 받는다. “네 조상이 여길 배회했을 거야. 내 조상도. 우리가 야생에 살 때 말이야. 우린 왔다 가는 거야. 하지만 자연은 늘 여기 있지.”

아무런 욕심 없이 함께 떠나온 세상의 맨 끝, 거대하고 무한한 자연 앞에서 손튼과 벅은 인간과 개가 아닌, 먼 조상 때부터 함께해온 친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음을 텅 비워낸 그곳에서 손튼은 모든 인간의 꿈인 황금을 발견하고, 벅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의 실체와 조우한다.

“무언가가 벅을 숲속으로 끌어당겼다. 이 여정은 벅을 그의 운명으로 이끄는 것 같았다.”

손튼은 숲으로 가서 궁금한 걸 찾아보라고 벅을 격려한다. 정체를 몰라 두려우면서도 한없는 기쁨으로 가슴 뛰게 했던 목소리, 늘 지켜보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던 부름의 정체는 밤마다 숲을 쩌렁쩌렁 울려대는 늑대의 노래였다. 벅은 있는 줄도 몰랐지만, 마음 깊이 그리워했던 생명의 품, 깊은 숲을 탐험한다.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동족, 먼 옛날 한 핏줄이었던 조상의 후예, 늑대와 마주한다.

“벅은 사람들 손에서 버릇없이 자랐고 고통도 받았다. 이제 벅은 동족과 함께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고향을 찾기 위해 벅은 얼마나 멀리 여행했는가. 난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가.”

손튼은 벅이 머물러야 할 곳이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자연, 늑대의 무리여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벅은 늑대와 손튼 사이를 오갈 뿐, 목숨을 구해주고 진실한 친구가 돼 준 그와 선뜻 이별하지 못한다. 손튼은 이제야말로 오랜 방황을 끝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는 떠날 채비를 하고 그동안 모아 두었던 금도 원래의 자리로 훌훌 던져버리고는 흐뭇한 얼굴로 벅에게 말한다. “멋진 모험이었지, 그렇지?”


1903년 잭 런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명작

인간 사회에서 온갖 역경을 이겨낸 벅이 야생의 본능을 깨닫고 전설적인 늑대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그러나 개와 늑대가 아닌 인간과 모든 생명의 귀향에 대해 말하는 ‘콜 오브 와일드(The Call of the Wild)’는 1903년 미국 작가 잭 런던이 발표한 소설이다. ‘뮬란’의 각본을 쓰고 ‘라이온 킹’에서는 미술을 맡는 등 디즈니 애니메이터로 활동했던 크리스 샌더스가 동명의 영화로 다시 만들었다.

달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벅의 몸무게가 10㎏ 이상 빠진다거나 동료 썰매 개들을 사고로 하나둘 잃어가는 고통, 그래도 끝까지 책임을 다하던 개들의 장렬한 죽음 등, 눈물 쏙 빠지게 마음을 흔드는 장면을 영화는 과감히 생략했다. 특히 인디언과의 분쟁, 늑대의 본능이 드러났을 때 벅이 보여주는 잔혹성은 아이들과 함께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알맞게 각색했다. 그렇다고 해서 감동이 줄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세인트버나드 종 아버지에게서 몸집과 무게를, 셰퍼드 종 어머니에게서 그에 걸맞은 자태를 물려받아 ‘영락없이 늑대’라고 묘사된 원작과 달리 컴퓨터 그래픽으로 완벽하게 생명을 받아 새롭게 태어난 벅은 덩치는 크지만 입은 뾰족하지 않은, 순하고 착해 보이는 세인트버나드 종에 가까워 보인다. 사나운 늑대보다는 친근한 개의 이미지로 벅을 기억하도록 관객을 배려한 것 같다. 젊은 시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보물을 찾기 위해 모험을 즐기던 해리슨 포드는 완연한 노인의 모습으로 자연과 동물을 이해하고 교감하는 지혜로운 인간을 상징한다.

“벅은 손튼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커다란 공허감을 주었다. 배고픔과 비슷했으나, 벅은 아프고 또 아팠다. 어떤 음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아픔이었다.”

뜻밖의 사건으로 손튼을 잃은 벅의 상실감은 영화에서도 먹먹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세상과 유대가 끊어진 이상, 야생의 부름을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벅은 인간과 함께했던 기억을 가슴 깊이 묻은 채 자신의 근본 자리, 늑대의 무리로 돌아가 위대한 전설이 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기 위해 매일매일 숨차게 달리는 것일까. 황금을 찾고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닐 텐데. 들어보라, 벅이 들었던 야생의 부름을.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끝내 찾아오라는 자연의 목소리를. 시인 알프레드 드 비니가 ‘늑대의 죽음’이란 작품에서 인간의 말로 해석해준 바로 그 생명의 응원을. “탄식하고, 눈물 흘리고, 간청하는 것은 비겁하다. 운명이 그대를 부른 길 위에서 길고도 어려운 임무를 정열적으로 수행하라.”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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