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버스에서’에 담긴 사진. 그림이 그려진 유리창 너머로 상념에 빠진 남자의 모습이 포착됐다. 사진 김진영
‘밤의 버스에서’에 담긴 사진. 그림이 그려진 유리창 너머로 상념에 빠진 남자의 모습이 포착됐다. 사진 김진영

‘거리 사진’이라고 하면, 흔히 어떤 거리나 도시와 같은 장소를 사진가가 오가며 찍은 사진을 떠올린다. 사진가는 거리에서 발생하는 우연적인 상황과 다양한 요소를 포착하고자 한다.

현대인은 어떤 장소에 가기 위해 먼 거리를 그저 이동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보낸다. 교통수단 내부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은 분명 제한적이지만, 교통수단이 우리를 어딘가로 실어다 주는 동안 사람들은 무언가를 한다. 일견 지루한 장면의 연속인 듯하지만, 대중교통 안에서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에 시선을 둔 사진가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진가가 워커 에번스(Walker Evans)다. 그는 1938년부터 1941년까지 카메라를 코트 안에 숨기고 미국 뉴욕 맨해튼의 지하철을 탔다. 3년간 그가 포착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진 찍히는지 의식하지 못하도록, 조리개와 노출값을 미리 설정해 둔 35㎜ 콘탁스(Contax) 카메라를 코트 안에 감추었다. 금속 부위를 검은색으로 칠해 눈에 띄지 않게 하고, 렌즈만 옷 틈으로 바깥을 향하게 했다. 셔터와 연결된 케이블 릴리스(cable release·셔터를 작동하는 줄)는 소매 안쪽을 타고 들어가 주머니에 숨어 있던 그의 손과 연결돼 있었다. 이에 더해 친구이자 동료 사진가인 헬렌 레빗(Helen Levitt)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그의 행동이 덜 주목받을 것이라 기대하며 말이다.

워커 에번스가 이러한 묘안을 동원한 이유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그 모습 그대로 찍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피사체가 포즈를 취하거나 카메라를 눈치채고 행동이 미묘하게 달라지기 전에 말이다. 그는 그저 코트를 입은 사람이 되어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사진을 찍었다. 그가 담은 지하철 속 사람들은 무방비 상태의 얼굴들이다.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생각에 잠겨 보이기도 한다. 사적인 상념에 빠져 있는 이 사람들은 자신이 공공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지하철 사진들은 워커 에번스의 ‘Many Are Called(Yale University Press, 1966)’에 수록됐다. 이후에도 여러 사진가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에게 주목했다. 마이클 울프(Michael Wolf)는 혼잡한 아침 시간대 도쿄의 지하철 속 사람들을 담은 ‘Tokyo Compression(Peperoni Books, 2010)’을 펴냈고, 존 샤벨(John Schabel)은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창문을 통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Passengers(Twin Palms Publisher, 2013)’에 담았다.

영국 사진가 닉 터핀(Nick Turpin)은 런던의 버스 안 사람들에게 주목했다. 런던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그는 거리 사진가다. 그는 본래 어딘가를 오가며 사진을 찍곤 했는데 어느 날, 김 서린 버스 차창 너머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자신도 늘 탔던 버스, 특별할 것 없었던 광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익숙한 것에서 특별하고 색다른 것을 발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밤의 버스’는 그의 주변에 늘 있었지만, 비로소 사진가인 그의 눈이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리를 오가던 것을 멈추고, 엘리펀트 앤드 캐슬(Elephant and Castle)이라는 곳을 촬영 장소로 정했다.

닉 터핀이 촬영 장소로 택한 쇼핑몰은 유동 인구가 많고 주요 버스가 오가는 곳이었다. 대로와 맞닿아 있는 쇼핑몰 2층은 이층 버스의 2층 창문을 찍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외부 난간에서 망원렌즈를 들고 버스를 바라봤다. 그는 버스가 도착하고 떠나는 60초 남짓한 시간에 흥미로운 피사체를 재빨리 찾아내야 했다. 워커 에번스에게 카메라를 숨겨 줄 코트가 있었다면, 닉 터핀에게는 어둠이 그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가려 주었다. 사진 찍히는 걸 의식한 피사체는 우연히 눈이 마주쳤던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오후 5시 30분에서 7시 30분까지 엘리펀트 앤드 캐슬에서 세 번의 겨울을 보내며 사진을 찍었고, 이를 ‘밤의 버스에서(On The Night Bus, Hoxton Mini Press, 2017)’라는 제목의 사진집으로 출간했다. 닉 터핀의 사진은 곧잘 렘브란트의 회화에 빗대어질 정도로 낭만적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가 원하는 ‘그림 같은’ 장면은 주로 겨울 그리고 밤에 펼쳐졌다. 겨울의 버스는 내부와 외부의 온도 차로 인한 응결 현상 때문에 창문에 물이 맺힌다. 내부 조명이 켜져 있는 밤의 버스는 어두운 바깥에서 안쪽이 환하게 들여다보인다.

닉 터핀은 대체로 버스의 창틀을 배제하고, 창 안의 장면이 프레임 가득 담기도록 표현했다. 그 결과, 그가 원하는 그림 같은 장면이 만들어졌다. 창에 서린 김은 얼굴의 윤곽을 흐릿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고, 지나가는 다른 차의 불빛으로 간혹 마법 같은 색깔이 담겼다.


영국 사진가 닉 터핀의 사진집 ‘밤의 버스에서’ 표지. 사진 김진영
영국 사진가 닉 터핀의 사진집 ‘밤의 버스에서’ 표지. 사진 김진영
‘밤의 버스에서’에 담긴 사진. 한 여자 아이가 김 서린 유리창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 김진영
‘밤의 버스에서’에 담긴 사진. 한 여자 아이가 김 서린 유리창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 김진영
‘밤의 버스에서’에 담긴 사진. 버스에서 졸고 있는 여성. 사진 김진영
‘밤의 버스에서’에 담긴 사진. 버스에서 졸고 있는 여성. 사진 김진영

타인의 시선으로 표현된 당신의 일상

‘밤의 버스에서’ 당시의 작업에 대해 닉 터핀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이동 중인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었다. 그들은 경계를 풀고 무방비였으며 어딘가를 응시하거나 생각에 잠기거나 초점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공적인 공간에서 사적인 순간에 빠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타인을 이렇게나 깊고 생생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드문 일이다. 유리창과 어두운 밤은 타인의 하루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닉 터핀의 이 같은 말은 맨해튼의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담고자 했던 워커 에번스를 떠올리게 한다. 워커 에번스 역시 지하철 속 사람들의 얼굴에서 특별한 점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이들은 경계를 풀고 가면을 벗었다. 거울이 있는 침실에 홀로 있을 때보다도 사람들은 훨씬 더 휴식을 취하는 얼굴을 드러냈다.”

‘침실보다 편한 얼굴’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섞였을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는 대중교통이라는 공공장소에서 각자 사적인 시간을 경험한다. 조용히 이동 중인 익명의 군중 사이에서 ‘군중 속에 있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 채 말이다. 이들을 찍은 사진은 나의 일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유사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때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를 타인의 눈으로 상상하게 한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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