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25전쟁 당시의 사진. 인류학자 권헌익 교수는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저서 ‘전쟁과 가족’에서 6·25전쟁을 가족과 국가의 대립이란 관점에서 조명했다.
1950년 6·25전쟁 당시의 사진. 인류학자 권헌익 교수는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저서 ‘전쟁과 가족’에서 6·25전쟁을 가족과 국가의 대립이란 관점에서 조명했다.

전쟁과 가족
권헌익│정소영 옮김│창비│324쪽│2만원

올해는 6·25전쟁 70주년이다. 공식적으로 종전 선언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그로 인한 혼란과 갈등의 여파는 여전히 한국인의 마음속에서 요동친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앓고 있는 정치적·이념적 대립의 근원이 6·25전쟁에 있다는 사실에 누구나 동의하지만, 정작 그 근원을 좌우 이념의 편견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것을 놓고 또 다른 남남(南南) 갈등이 멈출 줄 모른다. 물론 북한이 남한을 침공해서 일어난 전쟁이라는 판정은 1989년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후 정설이 됐다. 문제는 민간인 희생자의 목소리로 전쟁을 해석하는 작업이 이제 시작 단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류학자 권헌익 교수가 영어로 쓴 ‘전쟁과 가족’이 최근 우리말로 번역됐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겸 서울대 인류학과 초빙 석좌교수다. 6·25전쟁을 가족과 국가의 대립이란 관점에서 조명한 이 책은 실제 사건의 기록뿐만 아니라 그 전쟁을 다룬 한국 문학을 대거 활용함으로써 사실과 허구의 융합을 거쳐 전쟁의 복합적 실상을 세밀하게 탐구했다.

권 교수는 6·25전쟁의 특성을 놓고 “1950 ~53년 전쟁은 엄청난 사상자를 남겼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민간인 사상자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이다”라고 강조했다. 그처럼 엄청난 민간인 희생은 태극기와 인공기가 교차한 지역에서 벌어진 좌우 학살과 보복의 악순환이 초래했다. 권 교수의 연구는 관련 증언과 기록뿐 아니라 문학 작품에 반영된 개인과 집단의 체험을 통해서 역사 해석에 입체감을 부여했다.

권 교수는 박완서의 삶과 소설을 예로 들었다. “박완서는 전쟁 당시 자신의 가족이 겪었던 일을 자전적 소설에서 회고한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때, 당시 북한군인 숙부의 집을 접수해 장교 식당으로 사용했는데, 이후 국군과 미군이 서울을 탈환했을 때 이웃이 그 사실을 고발해 즉결 처분되었다. 또한 전쟁 전 급진적 정치 운동에 가담했었던 그의 오빠는 북한군 점령기 때 인민군에 징집됐는데 국군이 해방군으로 돌아오자 오빠의 전적이 가족의 생사를 위협하는 문제가 된다. 당시 문학을 전공한 대학생이던 박완서는 가족의 생존을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반공청년단의 서기로 일한다.”

권 교수는 6·25전쟁 때 국군 장교를 가장으로 둔 가족이 인민군에 점령된 서울에 살면서 가족 전체가 살아남기 위해 장남이 인민군 의용병이 돼 부친과 총부리를 겨누게 된 것도 모자라, 그 부인이 남편의 투항을 권하는 북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사례를 소개했다. 또한 제주도 4·3사태로 가족이 좌익으로 몰린 집안에서 손자가 가문의 존속을 위해 국군에 자원입대하고, 인천상륙작전에서 공을 세워 살아 돌아온 뒤, 세월이 흘러 제주도에서 4·3 희생자의 명예 회복에 당당하게 나선 사례도 제시했다.

권 교수는 “그때 그 시대의 문제는 적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에서 가족이 살기 위해서 나가 싸우는 것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그 처절한 상황은 북한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6·25전쟁이 가족 붕괴의 비극을 낳았기 때문에 그 가족의 가치를 복원하는 차원에서 희생자를 기림으로써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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