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성 댄스 그룹 ‘싹쓰리’의 90년대 복고풍 패션. 사진 예능 ‘놀면 뭐하니?’ 인스타그램
혼성 댄스 그룹 ‘싹쓰리’의 90년대 복고풍 패션. 사진 예능 ‘놀면 뭐하니?’ 인스타그램

뉴트로(New-Tro)는 새로운(New)과 복고풍(Retro)의 합성어다. 복고풍 감성과 스타일을 현재의 시선으로 세련되게 재해석한 스타일을 ‘뉴트로’라 부른다. 뉴트로는 매년 수많은 시대를 시간 여행해 왔는데, 몇 시즌 전부터 1990년대란 정류장에서 그 시기를 마음껏 누비고 있다. 처음 음악을 중심으로 문화적 열풍이 불었고, 최근에는 패션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세계 유명 패션 브랜드들은 지난 몇 시즌 동안 꾸준히 1990년대 스타일을 진화시켰다. 2020년 봄·여름 컬렉션의 트렌드 키워드 역시 ‘1990년대로의 회귀’였다. 프라다 패션쇼에 프라다 삼각 로고와 나일론 백이 등장했을 때 전 세계 패션 리더들이 추억에 빠져들며 환호했다. 1990년대에 프라다 나일론 백 하나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가 길게 줄을 섰던가? 그 시절 어린이였던 1990년대생조차 엄마가 소중히 들고 다니던 프라다 나일론 백을 기억해내기도 했다. 아직도 그 시절 프라다 나일론 백을 간직하고 있다면, 다시 세상 빛을 보여줘도 될 듯하다. 다만 새로운 시대의 프라다 나일론 백은 ‘리나일론(Re-Nylon)’ 프로젝트를 통해 재생 나일론인 ‘에코닐’을 사용해 친환경 백으로 재탄생했다는 점이 다르다. 1990년대 패션 리더가 가죽이 아닌 나일론이란 혁신적인 소재와 실용적인 미니멀 디자인에 매료됐다면, 2000년대 밀레니얼 세대는 착한 패션 아이템이란 점에 환호하고 있다.

2020년 봄·여름 컬렉션의 발렌시아가 ‘로고 룩’도 모두 과거로 회귀시키며 끝없는 패션 수다를 끌어냈다. “세상에! 내가 대학생 때 입었던 스타일이 다시 트렌드로 돌아온 거야?” “언니 기억나? 내가 고등학교 때 언니 로고 티셔츠 몰래 입고 나갔다 둘이 엄청 싸웠잖아.” 등의 수다가 이어졌다. 1990년대 로고 티셔츠와 청바지로 한껏 멋을 냈던 10대와 20대 시절 사진들이 소셜미디어에 줄줄이 소환됐다. 사실 로고 티셔츠의 재유행은 몇 년 전 시작됐다. 커다란 로고 프린트로 199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타미 힐피거, 휠라, 라코스테, 챔피언 등이 앞다투어 로고 프린트 셔츠를 내놓았다. 명품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과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도 로고가 커다랗게 프린트된 티셔츠와 수영복 등을 유행시키며, 패션 트렌드를 ‘로고리스(logoless·로고를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에서 ‘빅 로고’ 시대로 전환했다. 또한 프라다는 20년 전 전성기를 누렸던 ‘프라다 스포츠 라인’의 로고를 재디자인해 새로운 로고 룩을 재창조했다.

전 세계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을 일으킨 ‘프렌즈’와 ‘섹스 앤드 더 시티’ 열성 팬의 감성을 자극하는 1990년대 슬립 드레스 룩도 화려하게 복귀했다. 반짝이는 새틴 소재의 슬립 드레스는 드라마의 큰 성공과 함께 당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 된 제니퍼 애니스톤과 사라 제시카 파커가 드라마 속에서 즐겨 입었던 맨해튼 룩이다. 얼핏 란제리처럼 보이는 심플한 디자인의 슬립 드레스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가 즐겨 입은 드레스 룩이기도 했다.

이렇게 지난 몇 년간 1990년대 룩이 시즌마다 근사하게 업데이트됐지만, 국내에선 패션 인플루언서와 셀러브리티들 외에 대중적인 인기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싹쓰리(SSAK3)’ 열풍이 불며 1990년대 룩은 순식간에 대중적인 패션 코드가 됐다. 싹쓰리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된 혼성 댄스 그룹이다. 이효리, 비, 유재석이 각각 시청자들이 직접 골라준 ‘부캐(부 캐릭터)’ 린다G, 비룡, 유두래곤으로 활동한다. 이들은 패션뿐 아니라 헤어, 메이크업까지 1990년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린다G(이효리)의 크롭 톱(crop top·짧은 상의), 헐렁한 트레이닝 팬츠, 망사 토시, 커다란 링 귀고리는 1990년대 스타일을 세세하게 복제해내면서도 요즘 시대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 검정 베레모와 새까만 선글라스, 무릎까지 벨트를 길게 연출한 유두래곤(유재석)의 패션은 1990년대 뮤직비디오 스타와 보이 밴드 그룹들을 추억하게 한다. 복근을 과하게 노출시킨 비룡(비)의 힙합 룩도 1990년대 소녀들을 열병에 빠뜨렸던 1990년대 국내외 힙합 스타들의 완벽한 재현이다.


프라다의 삼각 로고가 부착된 ‘리-나일론’ 가방. 사진 프라다 인스타그램
프라다의 삼각 로고가 부착된 ‘리-나일론’ 가방. 사진 프라다 인스타그램
연예인 김유정이 입은 휠라의 ‘빅 로고’ 원피스 수영복. 사진 휠라코리아 인스타그램
연예인 김유정이 입은 휠라의 ‘빅 로고’ 원피스 수영복. 사진 휠라코리아 인스타그램

1990년대의 완벽한 재해석, ‘싹쓰리 패션’

싹쓰리의 패션은 방송에서 밝혔듯이 1990년대 미국의 3인조 혼성 댄스 그룹인 ‘디-라이트(Deee-Lite)’ 스타일에 영감을 두고 있다. ‘디-라이트’는 당시 테크노풍 음악과 독특한 패션 콘셉트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멤버 각각의 개성을 살려 컬러와 스타일을 혼합한 것이 ‘디-라이트’ 패션의 특징이다. 싹쓰리 패션 역시 이효리, 비, 유재석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장르의 1990년대 패션을 혼합해 대중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다. 똑같은 유니폼 룩이나 비슷한 시밀러 룩(similar look·비슷한 디자인과 컬러를 세트처럼 연출하는 룩)을 입는 요즘 아이돌 룩과 달라 밀레니얼 세대들은 ‘싹쓰리 패션’을 더욱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싹쓰리 패션이 1990년대 감성과 스타일임에도 최신 트렌드의 세련된 패션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실루엣에 비밀이 있다. 컬러 색감과 배열, 프린트나 패턴은 1990년대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했지만 실루엣은 요즘 식으로 재해석해내고 있다. 이러한 패션의 재구성은 3040세대에게 1990년대의 향수로, 1020세대에겐 새롭고 신선한 스타일로 매력 있게 다가간다. 각각의 개성과 취향을 강조했던 1990년대 패션 철학이 밀레니얼 세대의 패션 코드와 잘 통하고 있다.

싹쓰리 패션은 명품 브랜드의 2020년 봄·여름 컬렉션에 실제 등장한 의상들이다. 린다G가 입은 깅엄 체크(gingham check·격자무늬 체크)는 루이비통, 그래픽 프린트의 초록색 레깅스는 몽클레르, 베레모와 스타일링된 유두래곤의 복고풍 슈트는 구찌, 비룡의 재킷은 프라다, 보머 재킷(bomber jacket·품이 넉넉하고 허리와 소매에 밴드가 달린 짧은 재킷)은 디올 옴므 제품이다. 루이비통의 버질 아블로, 디올 옴므의 킴 존스,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들이 모두 1979~86년생이다. 10대에 경험한 1990년대 패션의 기억과 경험이 디자이너들의 감각을 통해 2000년대의 세련된 뉴트로 룩으로 스타일리시하게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뉴트로는 다양한 시대를 시간 여행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점프해온 후 꽤 오랫동안 1990년대에 머물고 있는 건, 아직 더 들춰보고 재소환하고 싶은 아이템이 많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엔 극단적으로 모든 것을 생략한 미니멀리즘부터 과장된 패션, 흑백과 회색의 무채색부터 형형색색의 컬러와 요란한 프린트, 심플 슈트부터 다양한 스트리트와 스포츠 룩이 한 번에 뒤섞여 유행했다. 1990년대 젊은 소비층을 대표했던 ‘오렌지족’이나 ‘X세대’가 보여줬던 자유분방한 패션과 실험 정신은 튀는 독특함을 추구하는 요즘 패션 인플루언서들을 똑 닮아 있기도 하다. 다음 시즌엔 또 어떤 전설의 아이템들이 소환될지 1990년대 시간 여행이 기다려진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_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