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기술의 생선숯불구이 점심 세트 메뉴. 사진 조선일보 DB
조선기술의 생선숯불구이 점심 세트 메뉴. 사진 조선일보 DB

광화문 피맛골에 생선구이가 되돌아왔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뒤로 ‘피맛골’이라는 골목이 있었다. 조선 시대 고관대작이 말과 가마를 타고 종로를 지나가면, 서민들은 이들이 지나갈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다. 불편했던 서민들은 벼슬아치를 피해 종로 뒤 좁은 골목길로 다녔다. 이 골목길은 ‘피마(避馬)’ 즉 말과 가마를 피해 다니는 길이라 해서 피맛골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피맛골은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길이었지만 서민들이 다니는 길목이라 이들을 상대로 먹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흥했고 음식점 골목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에도 이어졌다. 교보 건물 뒤에서 종로 6가까지 이어지는 피맛골에는 온갖 음식점이 늘어서 있었다. 특히 현재 D타워가 들어서 있는 피맛골 초입에는 생선구이 백반집이 많았다. 소설가 최인호는 2008년 ‘샘터’ 기고에서 “골목에 화덕을 내놓고 생선을 굽는 강렬한 냄새에 홀린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그 집에 들어가 혼자서 점심을 먹었다. 허름한 식당 안은 인근 빌딩에서 점심을 먹으러 나온 회사원들로 만원이었다”고 피맛골을 묘사하기도 했다. 2009년 청진동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생선구이 집은 모두 헐렸고 광화문 일대에서 점심으로 생선구이를 먹기는 쉽지 않아졌다.

D타워에 최근 들어선 ‘조선기술’은 옛 피맛골 생선구이 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음식점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니 문어 다리가 인쇄된 커다란 입간판이 손님을 맞는다. 입간판을 지나자 바로 식당 입구다. 입구 오른쪽으로 심해 잠수부들이 쓰는 금속 헬멧이 설치돼 있다. 식당은 바다 그리고 배와 관련된 소품으로 장식됐다. 한쪽 벽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방향키가 붙어 있다. 다른 벽에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에서부터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대사까지, 바다·배·항해·수산물과 관련된 문구가 적혀 있다. 조명도 창문도 모두 선박에서 사용하는 것들로 꾸며져 있다. ‘타이타닉’ 같은 크루즈 선박의 다이닝 홀에 들어선 듯했다.


조선기술 내부는 크루즈선 다이닝 홀처럼 꾸며져 있다. 사진 조선일보DB
조선기술 내부는 크루즈선 다이닝 홀처럼 꾸며져 있다. 사진 조선일보DB
조선기술에서 직원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조선기술에서 직원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원조 뛰어넘는 맛과 서비스

통유리창 옆 테이블에 앉아 점심 세트 메뉴를 훑어봤다. ‘숯불 삼치 소금구이’ ‘고등어 미소(일본 된장) 조림’ ‘농어 간장조림’ ‘갑오징어 튀김 정식’ 4가지가 있다. 매일 점심은 숯불구이와 간장·미소조림, 튀김 4가지 요리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생선·해산물은 그날그날 바뀐다. 4가지를 모두 주문했다. 숯불구이가 먼저 나왔다. 생선구이 솜씨가 옛 피맛골 생선구이 백반집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과거 피맛골 생선구이 집들은 손님이 몰리기 전 생선을 미리 구워놨다. 편리한 생선구이 전용 기계를 사용했다. 조선기술에서는 참숯을 사용한다. 이준수 대표는 D타워 5층에 있는 한우 전문점 ‘한육감’을 운영한다. 한우를 구우면서 쌓은 참숯 구이 노하우를 생선구이에 적용했다. 숯을 사용하니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부드럽다. 또한 생선을 먹다 보니 잔가시가 없었다. 굽기 전 주방에서 뼈를 모두 발라낸다. 이 역시 과거 피맛골 생선구이 집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서비스다.

미소조림과 간장 조림도 훌륭하다. 생선에 양념은 충분히 배어들면서도 살이 퍽퍽해지지 않는 지점을 찾아 절묘하게 조리했다. 미소조림이나 간장조림 둘 다 달콤한 편이나, 부드럽고 달착지근하면서 묵직한 맛을 선호한다면 미소조림을, 보다 짭조름한 맛을 좋아하면 계피 향이 매력적으로 배어든 간장조림을 선택하면 좋겠다. 갑오징어 튀김은 참나물을 섞어서 튀겼다. 씹을 때마다 갑오징어의 탱탱하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과 참나물의 향기가 조화롭게 입안에 퍼진다. 여기에 잘 지은 밥과 김치, 멸치볶음, 된장국 등이 딸려 나온다.

생선구이만 팔던 과거 피맛골 식당들과 달리, 조선기술은 회·튀김·탕 등 50여 가지 다양한 메뉴를 갖췄다. 해산물뿐 아니라 닭 날개 등 숯불 꼬치구이, 통조림 햄을 넣은 일본 오키나와 스타일의 고야 참플, ‘빠다(버터)’를 듬뿍 얹은 고소한 파스타 등 육해공 가리지 않고 맛있는 건 다 모아놨다. 대학로 ‘순대실록’의 ‘순대 스테이크’ ‘한육감’ 디저트 ‘티삼미수(화분의 흙처럼 꾸민 티라미수)’ 등 이름난 식당의 인기 메뉴도 있다. 덕분에 저녁 회식 장소로 훌륭하다.

식당 옆에 마련된 테라스를 최대한 활용해 포장마차 3대를 들여놨다. 포장을 들추고 들어가면 동글동글 땅콩 모양 테이블이 있다. 모두 마주 볼 수 있도록 모서리가 없는 디자인을 이 대표가 고안했다. 최대 12명까지 들어앉을 수 있는 포장마차는 한 팀에만 빌려준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모르는 이들과 섞이길 꺼리는 사회 분위기에 딱 맞는다. 포장마차를 이용하려면 코스 메뉴를 선택해야 한다. 10~14인 기준 30만·50만·100만원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하면 생선회·해산물 구이·어묵탕 등 50여 가지 메뉴를 입맛대로 조합해준다.

점심 때 맛난 생선구이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광화문 피맛골 자리에 되살아나 반갑다. 저녁에 해산물과 여러 별미를 두루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생긴 건 더 반갑다.


조선기술

분위기 크루즈선 다이닝 홀에 들어선 듯하다. 밝고 발랄하고 젊고 세련됐다. 과거 피맛골 생선구이 집은 잊으시라.

서비스 친절하고 열정이 있다.

추천 메뉴 숯불삼치 소금구이 1만6800원, 고등어 미소조림 1만9800원, 농어 간장조림 2만2000원, 갑오징어 튀김정식 1만8700원(이상 점심 세트), 해산물 카르파치오 샘플러 1만8000원, 파리 에펠 감자사라다 8000원, 두부와 어리굴젓 1만2000원, 아구 가라아게 1만2000원, 칵테일 새우깡 9800원, 옥수수 닭날개 튀김 1만2000원

계절 메뉴 생선솥밥 3만3000원, 한육감 한우 카르파치오 2만9800원, 순대 스테이크 1만8000원, 프루츠 파르페 8000·1만4000원, 티삼미수 8000원, 숯불꼬치구이 4000~5000원.

음료 소주·사케(일본 청주)·맥주·위스키·와인 등 주종별로 구색을 빠짐없이 갖췄다.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1시

예약 권장

주차 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