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다. 누가 왔는지, 문을 열어 줄지 말지, 우리는 아무것도 예견하거나 대비할 수 없다. 끝은 차라리 뒤에서 나타난다. 불현듯 다가와 지금의 끝을 선고해 버린다. 고장 난 비상벨처럼 아무렇게나 시끄럽게 울려대며 무엇도 믿을 수 없게 하는 끝. 믿을 수 없다는 공포야말로 갑작스레 찾아온 끝이 보여 주는 유일한 얼굴일지 모른다.

두 손에 끝이라는 순간을 받아들고 나면 지나간 모든 시간이 끝을 부른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은 온통 후회와 자책으로 가득해진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는가 하면 그날이 문제였던 것 같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소용없는 일이다. 결말을 만드는 건 어떤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조건이니까. 수많은 조건이기에 어떤 소리도 형성하지 못한 채 천천히 다가와 놀랄 만한 한순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야기가 좋은 건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면 펼쳐지던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들기 시작하고 앞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길도 보인다. 끝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만 고통에도 끝이 있다면 그건 그대로 불행 중 다행이다. 엔딩을 학습하는 일은 끝이 주는 고통도 끝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도록 훈련을 거듭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어려운 끝이 주어질 때마다 이 연재물의 첫 번째 글을 상상하는 것도 조금 도움이 된다. 가장 좋은 결말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것이며 대개 우리의 끝은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좋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오테사 모시페그의 ‘내 휴식과 이완의 해’는 동면에 들고 싶어 하는 어느 젊은 여성이 6개월 동안 수면 상태에 있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이야기다.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아무것도 인식하고 싶지 않고 어떤 것도 느끼고 싶지 않을 때 그저 수면이라는 정지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망. 수개월이 지나고서 깨어나면 시간은 흘러가 있고 잠들기 전 나를 힘들게 했던 감정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아물어 있기를 바라는 환상 동화 같은 이야기. 시간의 흐름을 모른 채 흘러간 시간 위에 다시 올라탈 수 있다면 삶이 좀 더 쉬워질까. 괴로움을 온몸으로 통과하지 않은 채 지나갈 수 있다면 생이 좀 더 견딜 만해질까.

누구나 한번쯤 떠올려봤을 것 같은 상상을 1981년생 작가가 현실화했다. 주인공은 꼬박꼬박 심리 상담을 받으며 거짓으로 불면을 호소해 수면 유도 약물을 처방받는다. 하나둘씩 모은 약,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 약물을 먹으면 사흘 동안 잠들 수 있다. 깨어나면 또 먹고 깨어나면 또 먹으며 지속 가능한 동면 프로젝트를 실행해 옮길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긴 잠으로 이동한다. 휴식과 이완의 시간을 위해.


그녀의 수면은 도피가 아니다

그녀는 부모님을 잃었고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하고서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나서 상실을 비롯한 부정적 감정을 처리할 수 없어 수면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두고 무책임한 상상력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녀가 도모하는 이 수면으로의 탈출은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의 수면은 삶이 진정으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자신에게 충분한 휴식과 이완의 시간을 선물하는 행위다. 피할 수 없는 것을 대면하기 위해 잠시 잠깐 자신을 쉬게 하는 걸 보고 도피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잠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주인공은 잠에서 깨어나 추락하는 여성을 보고 경외감을 느낀다. 수면을 위해 질주하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이르러 각성하는 장면은 상상 이상으로 감동적이다.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사람은 무너지는 쌍둥이 빌딩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여성이다. 소설의 시간은 2000년 9월에서 2001년 9월까지. 배경은 뉴욕. 우리가 아는 것처럼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때가 바로 2001년 9월이다.

가만히 있으면 죽음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일이다. 다가오는 것이 기쁨일지 고통일지 알 수 없는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고, 그 미지의 공기 속에 호흡을 내뱉는 일이다. 끝은 소리 없이 다가온다. 하지만 소리 없이 다가와 벨을 울려대는 그 끝을 마주한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우리 자신의 손에 달렸다. 주어진 끝이 가져다주는 슬픔에 압도당할지, 미지의 어둠 속으로 한발 더 걸어 나갈지. 끝에서 끝맺을지, 끝에서 시작할지.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평론가상


plus point

오테사 모시페그(Ottessa Moshfegh)

198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바너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브라운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바이스’ ‘파리리뷰’ ‘그란다’ ‘뉴요커’ 등에 단편소설을 발표했으며 2014년 중편소설 ‘맥글루’로 펜스 모던상과 빌리버 북 어워드를 받았다. 2015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아일린’으로 2016년 펜헤밍웨이상을 받고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아일린’은 자신을 찾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전에 없이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선보임으로써 한국 독자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2018년 두 번째 장편소설 ‘내 휴식과 이완의 해’가 연이은 호평을 받으며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아마존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영미 문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로 주저 없이 손꼽히고 있다.

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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