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주의 2015년 금호타이어 여자오픈(왼쪽)과 2020년 롯데칸타타 여자오픈 당시 모습. 김효주는 “몸이 단단해지니 멘털도 강해진 것 같다”고 했다. 사진 KLPGA
김효주의 2015년 금호타이어 여자오픈(왼쪽)과 2020년 롯데칸타타 여자오픈 당시 모습. 김효주는 “몸이 단단해지니 멘털도 강해진 것 같다”고 했다. 사진 KLPGA

‘기적의 칩인’ 세 방으로 9월 14일(현지시각)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ANA인스퍼레이션에서 역전 우승한 이미림(30)은 국내 선수 중 ‘벌크업 원조’라 할 만하다. 그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활약하던 2012년 무려 13㎏을 감량하고 나타난 적이 있다. 하루 4000~5000개의 줄넘기와 식이요법으로 다이어트를 했다. 그는 마음먹은 것은 꼭 해내는 ‘독종’이다. 그랬던 그가 2014년 미국에 진출하고는 6~7㎏을 불렸다. 시즌 초반 드라이버 샷 거리가 250야드에 머물자 식사량을 늘리고 체력훈련을 강화하면서 벌크업을 한 것이다. 그는 270야드 안팎의 비거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미국 선수들과 비거리 경쟁에서 전혀 뒤지지 않게 됐다. 당시 이미림은 “외모를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다이어트와 외모를 가꾸는 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내 운동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KLPGA 투어에서 뛰는 선수들의 골프 트레이닝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특히 올해 초 50일간의 동계훈련을 통해 체중은 4㎏ 불리고, 비거리는 15m를 늘린 김효주(25)의 영향이 컸다. 지난해 LPGA 투어에서 준우승만 세 차례 했던 그는 “거리가 너무 안 나니 마지막 날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올해는 KLPGA 투어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김효주와 동계훈련을 함께했던 팀 글로리어스 박솔빈(29) 트레이너는 “KLPGA 투어 선수들과 함께하는 건 3년째인데 첫해 분위기와 비교하면 180도 정도는 아니더라도 100도 정도는 바뀐 것 같다”며 “부모님들도 요즘엔 ‘우리 애 몸을 크고 단단하게 만들어 달라’고 한다”고 전했다.

대회 때마다 운영하는 투어 피트니스 차량에는 제대로 몸을 풀고 경기에 나서려는 선수들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ANA인스퍼레이션 우승자 이미림 선수가 대회에서 티샷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ANA인스퍼레이션 우승자 이미림 선수가 대회에서 티샷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벌크업은 체력뿐만 아니라 몸집까지 불리는 ‘신체 개조 작업’이다. 흔히 자동차에 비유하는데, 배기량을 2000㏄에서 3000㏄로 키우면 그만큼 속도를 더 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차량의 성능 밸런스를 고루 맞추지 않으면 주행에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효과를 크게 볼 수 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서 ‘독이 든 성배’에 비유하는 전문가도 있다.

벌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김효주의 사례를 살펴보자. 김효주는 2015년 미국 무대에 데뷔할 당시에도 “동계훈련 기간 배에 왕(王) 자가 새겨질 만큼 훈련을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전과 달라진 건 뭘까. 박솔빈 트레이너는 “먹는 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또한 과거에는 무게를 드는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었다”고 했다. 이어 “몸을 바꾸기 위해서는 운동과 휴식 그리고 영양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잠자는 것까지 체크했다”고 말했다.

식단을 살펴보자. 김효주가 가장 많이 먹은 건 달걀과 닭가슴살 그리고 밥이었다. 달걀은 하루에 7~8개, 닭가슴살은 하루 평균 600g 정도, 일주일에 두 차례는 특식으로 미니 백숙 1.5마리를 먹었다. 밥도 끼니마다 1.8~2공기씩 먹는 등 전체적으로 식사량이 이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단백질 외에 탄수화물 섭취도 늘렸다. 탄수화물이 부족하면 근육으로 사용돼야 할 단백질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흔히 몸이 커지면 감각이 둔해질 수도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체중은 불리면서도 체지방률은높이지 않아 컨트롤 능력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했다. 그는 체력훈련을 하다 쉬는 시간에는 벽에 테니스공을 던져 한 손으로 받는다든가 테니스공으로 족구를 했다. 잠도 하루 8~10시간씩 푹 잤다.


하체와 어깨 강화 그리고 밸런스 운동을 한꺼번에 하고 있는 김효주. 한쪽 발을 밸런스 패드에 올린 채 천천히 앉았다 일어서는 불가리안 런지와 덤벨을 한손으로 위아래로 들었다 내리는 숄더 프레스를함께하는 운동이다. 사진 조선일보 DB
하체와 어깨 강화 그리고 밸런스 운동을 한꺼번에 하고 있는 김효주. 한쪽 발을 밸런스 패드에 올린 채 천천히 앉았다 일어서는 불가리안 런지와 덤벨을 한손으로 위아래로 들었다 내리는 숄더 프레스를함께하는 운동이다. 사진 조선일보 DB

웨이트 트레이닝은 하루 2시간씩 1주일에 6일간 했다. 앉았다 일어서는 스쿼트와 바벨을 들어 올리는 데드 리프트 그리고 벤치 프레스 세 가지를 기본으로 했다. 김효주가 감당하면서 8~12회 가능한 무게로 3~5세트씩 했다. 이와 함께 전력 질주와 숨 고르기를 병행하는 달리기, 메디신 볼 던지기, 박스 점프 등을 통해 순간적으로 힘을 쓰는 능력을 길렀다. 벤치 프레스를 처음 할 때는 20㎏을 들었지만, 지금은 45㎏까지 늘었다. 20~30㎏부터 시작했던 데드 리프트는 이제 70~80㎏까지 든다. 박스 점프 높이는 60㎝에서 83㎝로 증가했다. 현재 시즌 중에도 주 2~3회씩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벌크업 끝판왕’이라 할 브라이슨 디섐보(27·미국)도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 체중을 88㎏에서 108㎏으로 20㎏ 불리면서 하루 8마일(12.74㎞)씩 달리는 유산소 운동으로 지방이 쌓이는 걸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정은(24)과 조정민(26) 등의 체력훈련을 담당하는 정상욱(53) 코치는 “체중 증가를 통해 파워를 늘리는 방법은 야구와 역도 등 여러 종목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라면서 “중요한 건 벌크업 효과를 지속시키면서 부작용을 줄이는 훈련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함께하는가에 달렸다”고 말했다. 근육량을 늘려 보디빌더 같은 몸매를 만들어도 순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클럽 스피드를 빠르게 할 수 없다. 정광천(45) JK골프컨디셔닝센터원장은 “골프는 예민한 운동이어서 적은 체중 변화로도 스윙 스피드나 리듬 템포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 “꾸준한 운동으로 골프에 필요한 밸런스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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