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린 오토모티브 뮤지엄이 소장한 피터 뮬린의 시트로엥 콜렉션. 사진 류장헌
뮬린 오토모티브 뮤지엄이 소장한 피터 뮬린의 시트로엥 콜렉션. 사진 류장헌

‘이코노미조선’ 361호에 소개한 피터 W 뮬린(이하 피터 뮬린)은 부가티 외에 미국 내 유일한 시트로엥 수집가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예쁘고 귀여운 차를 만드는 회사로 알려졌지만, 시트로엥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차를 대거 보유하고 있다. 실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랑스 사람의 입맛에 맞춘 ‘2CV’ 자동차 디자인에 한 획을 그은 ‘DS(지금의 DS와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차)’ ‘트락숑 아방’ ‘SM’ ‘GS’ ‘아미’ 등이 대표적이다. 유압 섀시(하이드로릭 섀시)를 가장 먼저 도입한 자동차 회사이기도 한데 유압 서스펜션(충격흡수장치)을 비롯해 지금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유압 제동장치와 유압 클러치를 가장 먼저 개발해 상용화한 곳도 시트로엥이다.

부가티 컬렉션을 기대하고 뮬린 오토모티브 뮤지엄을 찾았지만, 이곳에서는 부가티 대신 미국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시트로엥 특별전을 운영 중이었다. 시트로엥과 푸조, 르노는 한때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그다지 큰 재미를 못 보고 철수했고 현재도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굉장히 어려운 업체들이다. 온갖 차들이 다 돌아다닌다는 미국에서 프랑스 차를 보려면 박물관에나 가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피터 뮬린의 시트로엥 수집품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트로엥의 명차들이 가득하다. 우주선을 닮았다는 평가를 받은 플라비니오 베르토니 디자인의 DS를 비롯해 전후 유럽의 경제 복구 최전선에 있었던 ‘HY78(H밴)’, 고성능 B 세그먼트 시장을 연 슈퍼미니 ‘아미’, 전륜구동의 표본이라 불린 트락숑 아방도 모두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차는 시트로엥의 실험정신이 가득했던 GS와 SM, ‘M35 프로토타입’이다. 이번에 소개할 차도 시트로엥의 실험정신이 가득했던 M35 프로토타입과 올해 50주년을 맞은 GS와 SM이다.

M35 프로토타입은 ‘아미8’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실험용 차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267대가 생산된 쿠페(2도어)로, 아미의 전위적인 디자인을 계승했다. M35 프로토타입은 시트로엥 컬렉터들이 가장 눈독 들이는 모델 중 하나인데 생산 대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공식 판매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생산된 모델들은 소수의 시트로엥 VIP 고객에게만 인도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M35 프로토타입을 제외한 아미 시리즈는 1961년 처음 등장해 1978년까지 생산된 나름 장수 모델이다. 프랑스어로 친구를 뜻하는 아미(Ami)는 시트로엥의 간판스타인 2CV의 후속으로 개발됐다.

아미의 또 다른 별명은 ‘3CV’로 2CV의 뒤를 잇는다는 의미가 내포됐는데, 프랑스 소형차의 대표 주자로 불린다. 독특한 디자인의 아미는 여러 버전을 내놓았다. 그중 M35는 수평 대향 엔진 대신 로터리 엔진이 탑재된 모델인데, 시트로엥은 로터리 엔진의 특허가 마쓰다에 팔리기 전 아미를 통해 소형차 시장에서 로터리의 활용성을 타진했다. 여기에 소형차 최초로 유압 서스펜션을 탑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터리 엔진은 합리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던 시트로엥이 기대한 만큼 효율을 내지 못했고 결국 M35 프로토타입은 시험작으로 끝났다.


M35 프로토타입은 1969년부터 1971년까지 267대가 생산된 쿠페다. 사진 류장헌
M35 프로토타입은 1969년부터 1971년까지 267대가 생산된 쿠페다. 사진 류장헌
GS 바이로터. 일반 GS보다 70% 이상 가격이 비쌌다. 사진 류장헌
GS 바이로터. 일반 GS보다 70% 이상 가격이 비쌌다. 사진 류장헌

탄생 50주년을 맞이한 GS·SM

GS와 SM은 시트로엥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차종이다. 1968년 오르시 패밀리로부터 마세라티를 인수한 시트로엥은 고급 차 외에 마세라티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활용해 럭셔리 그란투리스모(GT·장거리용 고성능 자동차)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었다. 마세라티의 엔진을 탑재한 차가 SM이고 개발부터 출시까지 무려 14년이 걸린 베스트셀러가 바로 GS다.

1970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16년 동안 모델 변경 없이 생산된 GS는 4가지 수평 대향 4기통 공랭식 엔진을 기반으로 4도어 패스트백, 5도어 해치백, 5도어 왜건, 3도어 밴 등 다양한 버전을 선보였다.

안타깝게도 GS는 시트로엥의 황금기와 몰락기를 함께한 모델이기도 하다. 소형차와 중형 고급 차 사이에 자리를 잡은 GS는 출시 4년 만인 1974년 시트로엥이 파산을 선언하면서 명맥이 끊길 뻔했다. 다행히 프랑스 외에도 칠레, 포르투갈, 인도네시아, 스페인, 남아프리카, 태국 등에서도 생산되면서 그 명맥을 이었다.

GS에도 실험적인 성격이 강한 로터리 엔진 탑재 모델이 있었다. 1973년 발표된 GS 바이로터라 불리는 이 모델은 당시 프랑스의 자동차 세금 기준이 직렬 엔진이나 V형 엔진보다 로터리 엔진이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등장했다. 그러나 같은 해 중동발 석유파동이 터지고 연비가 좋지 못했던 GS 바이로터는 873대만 생산되고 단종됐는데, 뮬린이 그중 한 대를 보유하고 있다.

1970년에 등장한 시트로엥 SM은 마세라티의 V6 엔진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반대로 마세라티는 시트로엥의 유압 시스템을 사용하기도 했다. SM은 처음 미국에 상륙한 1972년 미국 모터 트렌드가 주관하는 올해의 차에 선정됐으며 고성능 전륜구동 GT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초기 성공에도 SM의 미국 수출은 1974년 중단된다. 수입 첫해 6개의 헤드라이트가 미국 법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시트로엥은 헤드라이트를 4개로 줄인 모델을 미국에 수출했다.

이후 1974년 미국 내 5마일 범퍼 의무 규정에서도 면제를 받지 못했고 적법성 논란에 시달리던 유압 서스펜션도 결국 불법으로 구분되면서 시트로엥은 SM의 미국 수출을 중단했다. 뮬린의 SM은 암스테르담의 첫 주인을 시작으로 세 번째 주인이 리스토어(복원)를 진행했다. 1974년 파산한 시트로엥은 1975년 푸조에 인수됐다. 1975년 푸조는 마세라티를 매각했는데 이와 함께 SM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