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속 편백나무 가을숲을 시민들이 걷고 있다. 사진 이우석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속 편백나무 가을숲을 시민들이 걷고 있다. 사진 이우석

기름진 득량만 바다를 끼고 호남 명산 천관산을 등에 기댄 장흥은 탐진강이 그대로 관통하는 천혜의 지세를 자랑한다. 가을 황금 들판이 곳곳에 펼쳐진 가운데 가을 바다도 옥색으로 물이 든다. 여름을 그냥 지나쳐버린 채 역병이 창궐한 작금의 시기라지만, 가을 바다마저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호젓한 가을 분위기 물씬 흐르는 수문해수욕장은 청아한 득량만 바다를 향해 기름진 갯벌을 훤히 드러낸다. 검푸른 묵의 농담으로 서서히 멀어지는 섬 앞에 펼쳐지는 갯벌은 강렬한 가을빛을 받아쳐 죄다 은박지처럼 빛을 발한다.

눈이 호강했으니 이젠 입의 차례. 입이 바빠야 눈도 맑아진다. 남도에 간다면 어쨌거나 먹는 시름은 던다. 오히려 포만과 비만이 걱정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에는 사람도 살찌게 마련이다. 산과 들, 바다에 오곡백과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이니 그렇다.

들판에도 바다에도 풍년이 드는 풍요의 고장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에 맛 좋은 소고기 익는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때다.

글재주 좋은 문사와 충절심 강한 사람이 많이 배출돼 문림의향(文林義鄕)의 고장이라지만, 이때만큼은 그저 먹는 것에만 집중해도 좋다.

산에서 표고버섯이 쏙쏙 돋아나고, 바다에는 맛이 든 키조개가 쑥쑥 올라온다. 하늘 같은 관을 쓴 천관산(天冠山) 아래 들판의 소들은 탄탄한 속살이 든다.

사람보다 소가 훨씬 더 많다(인구 약 3만 명, 소 약 5만 마리)는 장흥군 한우 산업의 위용에다 전국 생산량의 절반 가까울 정도의 표고버섯 명산지로서의 명성, 그리고 청정해역 갯벌 개흙 안에선 키조개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국내 지리적 표시제에 장흥 키조개만이 유일하게 등록됐을 정도로 장흥군은 전국 키조개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키조개의 본향이다. 이 셋이 만난 것이 바로 ‘장흥삼합’이다.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며 토요시장이 생겼을 때 가장 입소문을 모은 것도 바로 이 경이로운 조합, 장흥삼합이었다.


장흥삼합은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 고기 세 가지 어울리는 식재료로 구성됐다. 사진 이우석
장흥삼합은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 고기 세 가지 어울리는 식재료로 구성됐다. 사진 이우석
전라남도 장흥의 토요시장에서 상인들이 갖가지 해산물을 팔고 있다. 사진 이우석
전라남도 장흥의 토요시장에서 상인들이 갖가지 해산물을 팔고 있다. 사진 이우석

조화로운 삼합의 맛

‘삼합(三合)’이라 부르는 음식의 조합은 서로 성질이 다른 재료로 맛을 더 좋게 내는 경우에 빛이 난다. 화음의 음악, 복식 스포츠, 버디 영화처럼 서로 시너지를 낸다.

삼합의 원리는 동양에서 완전한 수를 이르는 숫자 3에서 비롯됐다. 서로 다른 셋이 마침내 하나를 이룬다는 의미. 동양철학이나 한의학에서도 똑같이 삼합을 이야기한다. 음식에선 세 가지 식재료의 어울리는 조합을 일컫는다.

장흥삼합은 역사가 오랜 음식은 아니다. 해산물이 풍부한 장흥군이 한우를 많이 키우면서 생겨났다. 풍요로운 고을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식문화다. 그래서 ‘로컬 식재료’의 매력이 충만한 조합이다.

정남진 땅 장흥까지 왔으니 현지 사람처럼 먹어봐야 한다. 우선 소고기를 구워 키조개 관자와 표고버섯을 올린다. 고기와 해산물, 채소가 함께 맛의 화음을 낸다. 육즙 풍부한 한우의 짭조름한 맛, 쫄깃한 식감의 관자 그리고 감칠맛의 상징인 표고버섯이 함께 씹히며 ‘제4의 맛’이 탄생한다. 고기와 산채, 해산물이 만났으니 얼마나 찰떡궁합일까. 서양식 서프 앤드 터프(메인 코스로 육류와 해산물 요리를 함께 내는 것)와도 일맥상통한다.

쌈에 키조개 관자를 얹고 그 위에 소고기와 표고버섯을 올린 다음 입 안에 넣으면 진한 감칠맛의 풍미가 그윽하게 퍼진다. 맛과 향이 서로 잘 어우러지는 삼합이다. 특히 담백하면서도 쫄깃한 관자가 들어가는 통에 질겅질겅, 폭신폭신, 꼬득꼬득 씹히는 느낌이 장흥삼합 식도락의 절정에 이르게 한다.

토요시장에는 삼합을 파는 많은 식당이 있다. 특히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와 상차림 비용만 내면, 고기를 구워주는 정육식당이 시장 내외에 즐비하다. 토정황손두꺼비식당은 토요시장 끝자락에 있다. 만 7세 이상부터 상차림에 4000원씩 받고 채소와 반찬, 불판을 내준다. 고기는 사오고 키조개 관자와 표고버섯은 주문하면 된다. 버섯은 5000원, 관자는 1만원 받는다.

전남에서 고기 먹고 난 후 으레 후식으로 챙겨 먹는 매생이 떡국도 맛이 참 좋다. 원래 소문난 국밥집이다.


▒ 이우석
놀고먹기 연구소 소장,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여행수첩

둘러볼 만한 곳 정남진 전망대에 오르면 국토의 정남향을 바라보며 가을 사색에 잠길 수 있다.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풍경은 그저 눈에 담기만 해도 가슴까지 뻥 뚫리는 청량함을 안겨 준다.

웰빙과 웰니스가 여느 때보다 강조되는 시기니 가을 숲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편백 가을 숲을 만나기 위해선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에 가야 한다. 편백 톱밥 산책로도 좋고 통나무주택, 황토주택, 한옥 등 숲속 숙박시설과 목재문화체험관, 목공건축체험장 등 체험하기 좋은 부대 시설이 있다.

우드랜드 앞에 편백족욕카페가 생겼다. 편백 기름을 짜고 난 재료를 활용해 족욕을 즐기는 곳이다. 편백으로 만든 뜨거운 족탕에 발을 담그고 20~30분 천천히 쉬어갈 수 있다. 발로부터 전달되는 뜨거운 열기와 편백 성분이 혈액순환을 도와 체내 노폐물과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다. 장흥 명물 발효차인 청태전(靑苔錢) 차를 함께 즐기며 잠시나마 여행자의 여유를 즐겨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