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회 US오픈 골프대회(총상금 1250만달러)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는 브라이슨 디섐보. 사진 AP연합
제120회 US오픈 골프대회(총상금 1250만달러)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는 브라이슨 디섐보. 사진 AP연합

‘필드 위의 괴짜 물리학자’ 브라이슨 디섐보(27·미국)는 지난해 10월 ‘벌크업 혁명’을 선언하고 약 1년 만인 9월 20일(이하 현지시각)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지난 7월 로켓 모기지 클래식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지 2개월 만이었다. 14개의 모든 클럽을 가장 잘 사용하고 탁월한 코스 매니지먼트 능력을 지닌 진정한 챔피언을 가린다는 US오픈에서 승리한 것은 ‘디섐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사건처럼 여겨졌다.

‘비거리는 체중에서 나온다’ ‘초(超)장타를 치면 카지노 하우스처럼 언제나 이길 수 있다’ 같은 디섐보 법칙도 더는 괴짜의 괴변으로 웃어넘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11월 12일부터 나흘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꿈의 무대’ 마스터스가 새로운 검증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US오픈 우승 인터뷰에서 오간 아래의 벌크업 문답은 디섐보의 400야드 초(超)장타를 치기 위한 벌크업 혁명이 더 높은 고지를 향한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알게 해준다.


더스틴 존슨은 파워와 순발력을 동시에 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골퍼의 체형을 지녔다는 평을 들어왔다. 사진 더스틴 존슨 트위터
더스틴 존슨은 파워와 순발력을 동시에 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골퍼의 체형을 지녔다는 평을 들어왔다. 사진 더스틴 존슨 트위터

오거스타에 도착할 때 몸무게를 더 늘렸으면 하나.
“그렇다. 111㎏(245파운드)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 운동량이 많을 것이다.”

몸집을 불리는 게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의사와 상담하고 있다. 몇 주 전에는 혈액 검사를 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게 괜찮다. 건강한지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다. 나도 오래 살고 싶으니까(디섐보는 지난 7월 미국 잡지 ‘GQ’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목표는 130∼140세까지 사는 것이다. 과학적인 식이요법과 여과한 음용수 등 현대 과학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오늘 저녁에는 뭘 먹을 건가.
“스테이크와 감자다. 멈추지 말아야 한다.”

오거스타에서의 전략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있나.
“어디서건 마찬가지지만 거리가 큰 장점이 될 것이다. 48인치 드라이버를 테스트해 볼 생각이다. 아이언 플레이도 좀 더 향상시켜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드라이버를 똑바로 보내야 한다. 그게 여전히 주요 목표다.”

브라이슨, 당신은 여기까지 오기 위해 당신만의 방법을 사용했다. 오늘을 지켜본 아이들이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고 이러한 방법을 모방하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골프에서 내 목표는 노력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나는 이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게임의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말 어렵지만 즐거운 여행이다. 사람들에게 ‘이봐,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라고 말하도록 영감을 주길 바란다. 이번 우승은 나의 PGA 투어 통산 7승째이자 메이저 첫 승이다.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길 바란다.”

디섐보가 일으킨 벌크업 혁명이 계속해서 승리의 영토를 넓힐 수 있는지는 앞으로 ‘정통파 근육맨’들과의 승부에서 향방이 갈릴 것이다. 여전히 세계랭킹(9월 27일 기준)에선 5위 디섐보를 콘크리트처럼 누르는 ‘4대 천왕’이 그들이다.

세계 1위 더스틴 존슨(36·미국)은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여유 있게 ‘디섐보 불가론’을 외쳤던 인물이다. 존슨은 메모리얼 토너먼트(7월 16~19일)를 앞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디섐보는 그가 원하는 만큼 멀리 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나를 이길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내가 있는 힘껏 공을 치면 절반은 찾지도 못할 것이다. 나도 드라이빙 레인지에서는 가끔 마음먹고 때린다. 단지 재미로 그런다. 하지만 페어웨이가 상당히 좁은 골프 코스에서 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존슨은 “벌크업한 브라이슨 디섐보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헐크’의 괴물 같은 드라이버에도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최고의 경기를 하면 여전히 디섐보를 앞선다”고 했다. ‘초(超)장타는 승률을 압도적으로 높여준다’는 디섐보의 주장을 ‘골프는 거리 싸움이 아니다’라는 전통적 관점에서 이단(異端) 취급한 것이다.

존슨이 지난 9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며 ‘1500만달러의 사나이’가 될 때까지만 해도 그의 말은 반박하기 어려워 보였다.


로리 매킬로이는 한때 과도한 근육운동을 한다는 비판에 시달렸지만 디섐보의 벌크업이 시작되면서 이제는 온건한 정통파 근육맨 대접을 받는다. 사진 PGA 투어 홈페이지
로리 매킬로이는 한때 과도한 근육운동을 한다는 비판에 시달렸지만 디섐보의 벌크업이 시작되면서 이제는 온건한 정통파 근육맨 대접을 받는다. 사진 PGA 투어 홈페이지

23승(메이저 1승)을 거둔 존슨에 비하면

7승(메이저 1승)인 디섐보는 애송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디섐보의 US오픈 우승은 존슨의 발언을 겸연쩍게 만들었다. 타이거 우즈를 지도했던 부치 하먼은 이상적인 골퍼의 체격을 지닌 선수로 존슨(193㎝, 86㎏)을 꼽는다. 그는 덩크슛을 꽂아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농구 실력도 지니고 있다. 이런 정통파의 눈에는 6개월도 안 돼 몸집을 20㎏ 불린 디섐보(185㎝, 108㎏)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성처럼 위태롭게 여겨지는 것이다. 2위 욘 람(26·스페인)은 이미 벌크업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체격(188㎝, 100㎏)을 지니고 있다. 3위 저스틴 토머스(27·미국)는 근육의 힘이 아닌 두 발이 땅을 박차고 솟구치는 듯한 ‘까치발 타법’으로 장타를 날린다. 4위 로리 매킬로이(31·북아일랜드)는 디섐보 이전 지나치게 근육운동을 많이 한다는 비판에 시달렸던 선수다. 방송 해설자로부터 “타이거 우즈처럼 부상병동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랬던 매킬로이는 디섐보처럼 몸집을 불리고 싶으냐는 질문에, “나는 몸이 가볍게 느껴질 때 플레이가 더 잘된다”고 했다.

매킬로이는 10월 3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비거리 340야드가 찍힌 스윙 분석 장비 모니터 사진을 올렸다. 디섐보 이전에 드라이버를 ‘가장 똑바로+멀리’ 친다는 평을 듣던 그였기에 다시 한번 ‘대포 전쟁’을 선포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디섐보가 일으킨 벌크업 혁명이 ‘골프 왕좌의 게임’에 일파만파를 일으키는 흥미로운 양상이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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