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사랑한 여인 라우라(왼쪽),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사진 위키미디어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사랑한 여인 라우라(왼쪽),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사진 위키미디어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짝사랑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처절히. 그는 이런 말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한다.

“그녀를 향한 내 사랑은 나를 감옥에 넣어두고 풀어주지도 가두지도 않는다. 죽기를 열망하나 도움을 간청한다. 나는 고통을 먹으며 울고 웃는다. 이 모두 당신 때문에.”

도대체 어떤 이를 사랑하길래 죽음이라는 표현까지 하면서 이토록 아파하고 있는 것일까. 이후 그의 태도가 조금 바뀐다.

“내가 그녀를 만난 그 시간, 그날, 그달, 그 해, 그 계절 그리고 그녀의 이름 ‘라우라’를 흩뿌려 외치던 절망과 탄식, 이 모두 축복이어라.”

그는 이렇게 짝사랑으로 절망을 안겨준 이를 보면서도 그 모든 고통이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나는 보았지. 지상에서 천사의 자태를 한 이를.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태양이 수천 번이나 나를 질투한다네.”

어느새 그의 언어에는 더 이상 고통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짝사랑하는 여인을 천사의 반열로 올려놓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한다. 그의 말을 듣노라면 마치 고통의 몸부림이 어느 순간 더 없이 고결한 자태로 하늘로 승천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다소 서두가 길었다. 이 글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시인이 남긴 소네트를 인용한 것이다. 페트라르카는 1304년에 태어나 1374년에 삶을 마감한 르네상스 시대 시인으로서 단테와 보카치오와 더불어 이탈리아 초기 문학사에서 3대 시인으로 꼽히는 이다.

그의 삶과 문학에 있어서는 앞에서 인용한 시에 잠시 등장한 ‘라우라’라는 여인을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 그는 23세 때인 1327년 우연한 계기로 라우라를 알게 됐고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어떠한 연유로 이 사랑은 이뤄질 수 없었던 탓에 그녀를 향한 사랑과 연민은 그 이후로 그의 작품 세계를 뒤덮게 된다. 따라서 앞서 인용한 시 내용은 바로 그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사랑한 여인 라우라(왼쪽),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사진 위키미디어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사랑한 여인 라우라(왼쪽),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사진 위키미디어

시구(詩句)에 담긴 감정을 음악으로 절절히 재현

피아니스트인 필자가 왜 이렇게 이 시 이야기를 많이 하느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최근 연주한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고 또 가장 어려웠던 음악 작품이 바로 이 시가 배경이기 때문이다. 이 시가 탄생한 지 500여 년이 지난 19세기 중반 헝가리 출신의 낭만주의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가 바로 이 시를 가사로 삼아 ‘페트라르카의 세 개의 소네트’라는 제목으로 가곡을 남겼다. 필자가 이 작품을 연습하며 놀란 것은 한둘이 아니다. 우선, 고통이 전해지는 듯 생생하고도 절절한 사랑 이야기에 놀랐고, 이 이야기가 700여 년 전에 쓰였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고, 마지막으로 프란츠 리스트가 이 감정을 탁월하게 음악으로 재현해 냈다는 것에 놀랐다.

연습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음을 손가락으로 누르기 전에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할지였다. 물론 필자도 짝사랑을 해봤지만 솔직히 말해 죽기를 열망하고 고통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또 그 사랑의 깊이가 어느 정도였길래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 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태양이 그렇게 질투를 할지 감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리기 전 감정을 최대한 담아 토해내듯 이 시를 몇 번에 걸쳐 읽고 또 읽는다. 총 세 개로 이뤄진 작품 중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는 첫 번째 곡 ‘평화는 어디에도 없고’부터 시작해 그녀와의 모든 만남이 축복이라 노래하는 두 번째 곡 ‘그날의 축복’을 읽는다. 마지막 곡인 ‘나는 보았지, 지상에서 천상의 자태를’까지 읽고 나면 마치 진흙탕과 같은 감정이 투명한 물로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를 읽자마자 바로 손을 건반 위로 옮겨 눌러본다.

리스트의 꿈꾸는 듯한 반주 음형과 멜로디 라인이 무척 인상적이다. 특히 시인 페트라르카가 평생 외친 그 이름 ‘라우라’가 등장할 때는 소름이 돋을 정도다. 이 이름이 등장할 때면 마치 저 밤하늘 높이 빛나는 별에 손이 닿을 것처럼 피아노와 성악 멜로디의 음역도 최상부로 이동한다. 그리고 속삭이듯, 간절한 듯 연주한다. 또 한편으로는 땅이 진동하고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포르테시모로 악기를 두들긴다. 이렇듯 인상적인 사랑을 담은 음악은 마지막 가사 “부드러운 공기와 바람으로 가득 찬 하늘”을 말하며 조용히 사라진다.

연주가 끝난 후 스스로 반문해본다. 바쁜 현대인으로 거대한 도시 안에 치여 살면서 이렇게 순수하고 투명하고 아름다운 사랑과 감정을 언제 느껴봤는지. 오랫동안 잊을 뻔했던 마음 한편에 잠자던 사랑의 열정을 일깨워 준 시인 페트라르카와 작곡가 리스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독자들에게 이 곡을 감상하며 혼란에서 정화된 고결한 순간으로 가는 감정을 느껴보라 권하고 싶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프란츠 리스트 ‘페트라르카의 세 개의 소네트(Tre Sonetti di Petrarca S.270)’
존 우스트만, 루치아노 파바로티

프란츠 리스트가 당시 그의 연인인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이탈리아 로마를 여행하며 읽은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의 시에 영감을 받아 1838~ 39년에 작곡한 가곡 작품이다. 이후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했을 뿐만 아니라 이 가곡 작품을 몇 차례 개작했다. 시의 내용에 더욱 충실해지려 애썼다고 전해진다.

때로는 피아노 독주곡, 또 때로는 오페라 아리아가 생각날 정도로 시성 가득한 표현이 낭만적인 사조에 깃들어 풍부하게 표현된 리스트의 수작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