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리프’를 선보인 닛산은 2011년 납작하고 커다란 충전기 위에 차를 세우기만 하면 플러그를 꽂지 않고도 충전이 되는 시스템을 공개했다. 사진 닛산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리프’를 선보인 닛산은 2011년 납작하고 커다란 충전기 위에 차를 세우기만 하면 플러그를 꽂지 않고도 충전이 되는 시스템을 공개했다. 사진 닛산

몇 달 전 스마트폰 무선충전기를 샀다. 이전까진 나는 ‘무선충전기가 왜 필요해? 충전 케이블 꽂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막상 써 보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깜깜한 방에서 자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도 충전기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되니 이런 신세계가 없다. 초반엔 제대로 올려놓지 못해 충전되지 않은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이젠 한 번에 완벽하게 올려놓는 기술도 터득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기차도 무선충전이 된다면 정말 좋겠는데?’ 1년 전쯤 공영주차장에서 1시간 넘게 충전기와 씨름하고서 전기차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됐지만 만약 충전이 쉽고 편해진다면 다음 차로 전기차를 고민해볼 의향도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나만 한 건 아닌가 보다.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 ‘리프’를 선보인 닛산은 무려 9년 전인 2011년 리프의 무선충전 테스트 영상을 공개했다. 납작하고 커다란 충전기 위에 차를 세우기만 하면 플러그를 꽂지 않고도 충전이 되는 거다.

전기차 무선충전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주차 면에서 자기장을 일으켜 차에 전기가 유도되는 원리를 이용하는 자기유도 방식과 주차 면과 차 사이의 자기공명 현상을 이용해 에너지를 보내는 자기공명 방식이다. 닛산은 두 방식 중 자기유도 방식을 쓰는데, 전송 반경이 넓어 충전기 위에 딱 맞게 주차하지 않아도 충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무선충전이 상용화된다면 주차하는 것만으로도 충전할 수 있어 충전소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충전기와 씨름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닛산은 2018년에 기술 개발을 마쳤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상용화되진 않았다.

닛산이 전기차 무선충전 기술 상용화에 신중을 기하는 사이 여러 자동차 회사가 무선충전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현대차그룹은 2019년 1월 자동주차 시스템과 결합한 무선충전 기술을 공개했다. 주차장 입구에 차를 세운 후 내리면 차가 스스로 무선충전기가 깔린 주차 공간으로 찾아가 주차를 마치고 충전하는 기술이다. 충전이 끝나면 다른 차가 충전할 수 있도록 그곳을 빠져나와 비어 있는 주차 공간을 찾아간다. 운전자가 차를 호출하면 영화 ‘전격 Z 작전’ 속 키트처럼 운전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온다. 하지만 이 기술 역시 아이디어 단계라 상용화되기엔 이르다.

참고로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상용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레벨 4면 완전 자율주행에 가까운 수준이다. 차가 스스로 도로와 주변 상황을 인지해 신호에 걸렸을 때 멈추는 것은 물론 차선을 바꾸고 위급한 상황에선 완전히 멈추기까지 한다.

전기차 무선충전 기술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자동차(PHEV)의 무선충전 기술은 이미 상용화됐다. BMW는 2018년 미국과 유럽 도시에 PHEV 무선충전 시스템을 설치했다. 커다랗고 납작한 무선충전 패드 위에 차를 세우면 주차 면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이 전기를 만들어 배터리를 충전한다. 3시간 30분이면 9.2㎾ 배터리를 100%까지 충전할 수 있다는 게 BMW 관계자의 말이다. 충전 상황은 계기반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충전을 모두 마치면 자동으로 충전이 멈춘다. PHEV 배터리가 가능하다면 전기차 배터리도 조만간 가능해지지 않을까?

참으로 ‘신박’해 보이는 이 기술엔 맹점도 있다. 바로 충전 패드 위에 정확히 차를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BMW는 차 안 디스플레이에서 빨간색과 녹색으로 주차 가이드라인을 보여주며 정확히 세우도록 유도하지만, 제대로 주차하느라 여러 번 들락거리다 보면 “차라리 충전 케이블을 꽂는 게 편하겠어”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치밀지 모른다.


폴크스바겐은 2019년 말 스마트폰으로 호출하면 내 차로 달려와 충전기를 꽂고 충전해주는 로봇을 선보였다. 사진 폴크스바겐
폴크스바겐은 2019년 말 스마트폰으로 호출하면 내 차로 달려와 충전기를 꽂고 충전해주는 로봇을 선보였다. 사진 폴크스바겐
BMW가 2018년 미국과 유럽 등에 설치한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무선충전 시스템은 3시간 30분이면 9.2㎾ 배터리를 10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사진 BMW
BMW가 2018년 미국과 유럽 등에 설치한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무선충전 시스템은 3시간 30분이면 9.2㎾ 배터리를 10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사진 BMW

미·중, 무선충전 도로 건설

요즘 떠오르는 새로운 무선충전 기술은 도로에 충전 시스템을 깔아 달리면서 충전하는 방식이다. 도로 아래에 전력을 공급하는 선로를 깔고 전기차 바닥에 전력을 받을 수 있는 집전판을 달아 달리는 중에도 충전할 수 있다.

먼 미래의 얘기 아니냐고? 이미 미국과 중국에서는 이런 도로를 개발 중이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는 2㎞ 도로 중 600m 구간에 무선충전이 가능한 선로를 까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무선충전 도로는 우리나라 카이스트에서 2009년 처음 개발했다. 이후 경북 구미에 2013년 세계 처음으로 무선충전 버스 차로가 건설됐지만, 충전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있다.

2019년 12월 폴크스바겐은 완전히 새로운 전기차 충전 방식을 선보였다. 스마트폰으로 호출하면 내 차로 달려와 스스로 충전기를 꽂고 충전을 해주는 로봇이다. 이 로봇은 트레일러 같은 이동식 에너지 저장 장치를 가지고 다니면서 충전이 필요한 차에 직접 찾아가 충전을 한다. 출장 세차 서비스처럼 출장 충전 서비스를 해주는 거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아직 아이디어 단계다. 폴크스바겐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과 관련해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충전 로봇이 상용화된다면 일일이 주차장 바닥에 무선충전 시스템을 깔 필요도 없겠다.

여러 자동차 회사가 전기차 무선충전 기술 개발을 열심히 하는 건 그만큼 전기차에서 충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전기차를 주저하는 이유도 역시 충전이다. 충전 시설이 많아지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 부족하고 미흡한 게 사실이다. 무선충전이 상용화된다면 전기차 시장은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확대될 것이다. 나 역시 다음 차를 고르라고 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전기차를 선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