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책 ‘고양이를 버리다’를 선보였다. 사진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책 ‘고양이를 버리다’를 선보였다. 사진 비채

고양이를 버리다
무라카미 하루키│김난주 옮김
비채│102쪽│1만3500원

무라카미 하루키도 어느덧 고희를 지났다.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난 그는 지금껏 성장기에 대해서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부모가 일본어 교사였지만, 사춘기 때부터 일본 소설보다는 미국 소설에 흠뻑 빠져 지냈고, 작가가 되기 전엔 재즈 카페를 운영했다는 정도만 종종 회상했다. 그가 지난해 ‘문예춘추’ 6월호에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라는 부제를 달고 발표한 산문 ‘고양이를 버리다’가 최근 우리말로 번역됐다. 100쪽 정도 되는 단행본이라 단숨에 읽히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산문을 오래간만에 읽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라카미가 우연히 기억의 갈피를 헤집고 떠올린 어린 시절의 풍경을 열어보다가 뜻하지 않게 그 풍경을 한 꺼풀 더 벗기면서, 점차 과거로 더 깊이 들어가다가 또 다른 추억을 소환해 그 등을 타고 현재로 되돌아오는 시간 여행을 감상한 듯했다. 무라카미 소설이 즐겨 사용하는 ‘앨리스의 토끼 굴 속으로의 여행’ 같은 서사 기법이라고나 할까.

무라카미는 18세에 집을 떠날 때까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는 하이쿠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일본어 교사였다. 어머니도 교사였다. 무라카미는 성인이 된 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관계가 심하게 틀어져서 20년 동안 절연 상태였다는 것. 그는 부친이 아흔 살이 넘어 타계하기 직전에서야 ‘화해 비슷한 것을 했다’라고 썼다.

그러한 작가가 아버지 회상을 통해 역사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조명했다. 어릴 때 사찰에 입양돼 자란 아버지는 승려 교육을 받았지만,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킬 때 무려 세 차례나 군에 소집돼 전선에 투입됐다.

작가가 아버지의 전쟁 체험을 통해 큰 충격을 받은 어린 시절의 기억 한 토막은 이렇다. “아버지는 딱 한 번 당신 속을 내게 털어놓듯이 자신이 속한 부대가 포로로 잡은 중국 병사를 처형한 일이 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어떤 경위로, 어떤 심정으로 그런 얘기를 내게 했는지는 모른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 전후 사정은 불확실하고, 기억은 고립되어 있다. 나는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아버지는 처형 당시의 광경을 담담하게 얘기했다. (중략) 같은 부대의 동료 병사가 처형을 집행하는 현장을 그저 옆에서 지켜보았는지, 아니면 본의 아니게 보다 직접적으로 관여했는지,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나의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당초 아버지가 모호하게 말했는지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다.”

작가는 아버지의 행동을 판정하지 못했다. 다만 아버지의 전쟁 체험이 자신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라면서도 “하지만 나로서는 그 말을 ‘메시지’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역사의 한 모퉁이에 이름 없는 한 이야기로서, 가능한 한 원래 형태 그대로 제시하고 싶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이 산문은 무라카미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를 유기했던 기억에서 출발한다. 고양이를 더 키울 수 없는 형편 때문에 아버지와 함께 해변에 버렸던 고양이가 귀신처럼 집에 먼저 돌아와 있던 기억의 풍경처럼, 역사는 그의 삶 한 모퉁이에 늘 웅크리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작가의 입장에서 그것을 쓰다 보니 무라카미는 아버지에 대해 기억하는 것을 말하게 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