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처음 등장한 KTM의 ‘1290 슈퍼듀크 R’은 2017년 전자 장비를 더한 2세대로 개선됐고, 지난해 완전 변경된 3세대가 출시됐다. 사진 양현용
2014년 처음 등장한 KTM의 ‘1290 슈퍼듀크 R’은 2017년 전자 장비를 더한 2세대로 개선됐고, 지난해 완전 변경된 3세대가 출시됐다. 사진 양현용

환상적이었다. 온종일 달렸음에도 바이크에서 내리며 조금 더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롤러코스터 탄 듯 오르내리는 포르투갈 알가베 서킷에서 ‘슈퍼듀크 R’을 타고 달리는 경험은 근래 최고의 오락이었다.

2014년에 등장한 ‘1290 슈퍼듀크 R’ 1세대 모델은 ‘비스트(야수)’라는 별명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2.6초, 시속 200㎞까지 7.2초 만에 가속하는 살벌한 성능으로 주목받았다. 2017년에는 다양한 전자 장비를 더한 2세대로 개선됐고, 시간이 흘러 이제 완전 변경된 3세대 모델이 등장했다. 지금까지는 오프로드 바이크를 기본으로, 포장도로에 맞게 휠과 타이어를 장착한 형식의 모터바이크로 ‘슈퍼모타드’라고 불리는 슈퍼모토와 일반적인 네이키드 모터바이크(차체를 감싸는 외장이 없는 바이크)의 중간에 위치하던 슈퍼듀크 R이 이번 3세대부터는 완전한 슈퍼 네이키드로 그 성격을 바꾸었다. 프레임부터 완전히 새로워졌다.

언뜻 보면 구형과 신형의 외형이 비슷해 부분변경 모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른 바이크다. 가장 기본이 되는 프레임부터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었다. 프런트 포크를 잡아주는 스티어링 축부터 시트 끝까지 촘촘히 이어지던 트렐리스(격자) 프레임은 사라지고, 몇 가닥 안 되는 최소한의 파이프가 엔진을 잡아주는 형태로 바뀌었다. 기존 모델과 달리 엔진이 차체의 일부가 되는 형태로 바뀌면서 프레임의 구조가 단순해진 것이다. 구조는 단순화됐지만, 비틀림 강성은 기존 모델보다 세 배나 강해졌다. 디자인의 기본은 2세대 스타일을 따르고 있지만, 바이크 전체를 두르는 면들을 다듬고 살짝살짝 비틀어주면서 훨씬 날렵하고 근육질처럼 보인다.

시트에 앉아서 바라보는 모습의 변화는 가장 극적이다. 더 깨끗한 화질의 박막 트랜지스터(TFT) 화면과 새로운 그래픽의 계기반, 게임 컨트롤러 같은 버튼들이 더해진 스위치박스까지, 운전자가 바라보는 시점에서 완전히 다른 바이크가 됐다. 핸들 바 높이도 함께 낮아지고, 시트 쿠션도 딱딱하다. 전체적인 세팅에서 묘하게 레이스 머신 분위기가 느껴진다. 엔진의 중량을 800g 줄이고, 고회전에서 토크를 향상시켰다. 혼합 가스나 공기를 엔진에 흡입시키기 위한 인테이크 밸브는 티타늄 소재에 고속 영역에서의 출력 향상을 위한 램에어 시스템이 도입됐다.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유럽연합(EU)의 유해가스 배출 기준인 ‘유로5’에 대한 준비도 마쳤다. 여기에 업데이트된 변속기의 정교함이 돋보인다. 변속기 안에서 돌아가는 기어들 하나하나가 더 촘촘하고 짜임새 있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변속 때 착착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기분 좋게 한다.


KTM의 2020년식 ‘1290 슈퍼듀크 R’의 프레임은 최소한의 파이프가 엔진을 잡아주는 형태다. 사진 양현용
KTM의 2020년식 ‘1290 슈퍼듀크 R’의 프레임은 최소한의 파이프가 엔진을 잡아주는 형태다. 사진 양현용

진정한 슈퍼 네이키드

프레임 강성의 변화는 누구나 느낄 수 있을 만큼 확실한 주행 성능의 차이를 만든다. 코너링 스피드의 한계가 높고 불필요한 거동이 없다. 그냥 슈퍼바이크에 핸들만 높여 달아 휘두르기 좋게 만든 느낌이다. 엔진의 스윙암 피벗 높이를 올리는 설계로 안티 스쿼트(뒷부분이 주저앉는 걸 제어하는 것) 효과를 높여준 덕분에 가속을 위해 스로틀(가속레버)을 열 때 뒤 타이어의 그립(움켜쥠)이 훨씬 선명해졌다. 스로틀을 열면 두툼한 토크를 터트리며 순식간에 다음 코너로 날아가는 기분이다. 폭발적인 가속으로 알가베 서킷 직선로에서 기록한 최고 속도는 시속 260㎞였다.

랩 타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돌고 가속하고 제동하는 과정의 반복이지만 즐겁다. 무엇보다 스로틀로 엔진을 완벽히 조련하는 느낌이 든다. 엔진과 머릿속이 바로 연결된 것 같은 직결감으로 조작할 수 있다. 엄청난 토크가 쏟아지는데도 무섭지 않다는 점이 신기하고 놀랍다. 단순히 안정적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엔진의 반응이나 브레이크 서스펜션(충격 흡수 장치)도 발전하면서 주행의 재미는 더욱 극대화됐다. 여기에 트랙 모드는 더 숙성됐다. 언제든 트랙 모드에 진입하면 더 빠르게 반응하는 엔진 출력 맵과 바퀴의 구동력을 제어하는 트랙션 컨트롤, 브레이크잠김방지(ABS) 등 자신이 맞춰둔 세팅이 바로 적용된다.

특히 트랙션 컨트롤 개입 정도를 실시간으로 변경할 수 있다. 이 버튼은 트랙 모드가 아닐 땐 크루즈 컨트롤 속도 조절에 사용한다. 트랙 모드에서는 안티 윌리(앞바퀴가 들리는 것을 막는 기능) 컨트롤을 끌 수 있다. 트랙션 컨트롤이 코너에만 개입하고 윌리는 허용하는 모드다. 여기에 후륜에는 개입하지 않는 슈퍼모토 브레이크 잠김방지장치(ABS)까지 켜면 전자장비의 개입은 최소화된다. 이 상태의 1290 슈퍼듀크 R은 기어 단수와 상관없이 빠르게 가속하면 프런트 휠이 올라온다. 내가 의도하거나 자연스럽게 되는 윌리와 의도치 않은 타이어의 미끄러짐은 기가 막히게 구분해서 개입한다. 손목을 크게 비틀어 풀 스로틀을 하는 것만으로 프런트 휠이 공중을 가른다.

기록이 쌓이고 몸에 익을수록 1290 슈퍼듀크 R이 정말 다루기 편하고 강력한 바이크임을 깨닫는다. KTM은 이번 1290 슈퍼듀크 R에 ‘비스트 3.0’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강력한 맹수는 날뛰는 들짐승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을 잘 아는 잘 길든 맹수가 됐다.

엔진의 스윙암 피벗 높이를 올리는 설계로 안티 스쿼트 효과를 높인 덕분에 가속할 때 뒤 타이어의 그립(움켜쥠)이 훨씬 선명해졌다. 사진 양현용
엔진의 스윙암 피벗 높이를 올리는 설계로 안티 스쿼트 효과를 높인 덕분에 가속할 때 뒤 타이어의 그립(움켜쥠)이 훨씬 선명해졌다. 사진 양현용
슈퍼모토 브레이크 잠김방지장치(ABS)까지 켜면 전자 장비의 개입은 최소화되는데, 이땐 기어 단수와 상관없이 가속하면 프런트 휠이 올라온다. 사진 양현용
슈퍼모토 브레이크 잠김방지장치(ABS)까지 켜면 전자 장비의 개입은 최소화되는데, 이땐 기어 단수와 상관없이 가속하면 프런트 휠이 올라온다. 사진 양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