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을 돋우는 윌로뜨의 한 입 거리 음식 ‘아뮤즈 부시’. 왼쪽부터 성주 참외 가스파초, 요구르트 타르틀레트, 리예트 드 카나르, 에스카르고 로스트 호래기, 제주도 현무암 새우 칩. 사진 조선일보 DB
입맛을 돋우는 윌로뜨의 한 입 거리 음식 ‘아뮤즈 부시’. 왼쪽부터 성주 참외 가스파초, 요구르트 타르틀레트, 리예트 드 카나르, 에스카르고 로스트 호래기, 제주도 현무암 새우 칩. 사진 조선일보 DB

보기에 정교하게 아름답고 섬세하면서 그 안에는 견고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음식. 이승준 셰프가 지휘하는 프랑스 레스토랑 ‘윌로뜨’에서 식사한 뒤 받은 인상이다. 여성 최고경영자(CEO)나 기업 대표가 “손님을 접대해야 하는데, 어디가 좋을까” 묻는다면 여기를 추천하겠다. 여자친구나 애인, 아내와 의미 있는 날을 함께하기에도 알맞겠다.

서울 강남 한복판 청담동에 있지만 은밀한 구석에 숨겨진 듯한 레스토랑이다. 주소를 찍고 도착하면 ‘식당이 어디 있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눈에 띄지 않는다. 주차장 같은 건물 1층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작은 문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간 후, 왼쪽 좁은 통로를 따라가면 비로소 식당이 나온다. 식당 양 옆면이 커다란 통창으로 햇살이 가득 스며드는 데다, 실내에 식물 화분이 여럿 놓여 쾌적하면서도 아늑하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한다. 점심과 저녁 모두 코스요리 세트로만 내기 때문에 선택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잠시 뒤 종업원이 빵과 버터를 가져온다. 주방에서 직접 구운 호밀빵에 딸려 나온 버터를 작은 올빼미 모양으로 만들었다.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귀엽다. 그야말로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하다. 그러고 보니 레스토랑 곳곳에 올빼미가 있다. ‘윌로뜨(Hulotte)’라는 식당 이름은 프랑스어로 올빼미라는 뜻. 이 셰프는 “처음 요리를 배우고 수련했던 프랑스 중부 도시 디종(Dijon)의 상징물이 올빼미”라며 “동시에 윌로뜨는 ‘보호하다’ 혹은 ‘안아주다’라는 뜻도 있어서 내가 추구하는 음식과 맞는다는 생각에 가게 이름으로 정했다”고 했다.

이승준 셰프는 경력이 독특하다. 국내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2001년 무작정 프랑스로 갔다. 이 셰프는 “건축 공부하러 프랑스 갔겠거니 짐작했던 지인들은 깜짝 놀랐지만, 맞벌이하셨던 부모님 때문에 어려서부터 동생들 식사를 차려주다가 요리를 좋아하게 됐다”며 “요리를 업으로 삼고 싶었다”고 했다. 다수의 셰프 지망생처럼 파리에 있는 요리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디종에 있는 와인학교에 입학했다. 프랑스 동북부 부르고뉴(Bourgogne)는 세계 최고의 피노누아 레드 와인과 샤르도네 화이트 와인 생산지. 디종은 부르고뉴의 중심이자 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미식 도시다.

디종에서 1년 6개월 동안 와인을 공부한 이 셰프는 ‘요리를 빨리 배우려면 학교보다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이 셰프는 아내와 함께 이력서 200통을 프랑스어 필기체로 써서 식당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리 경력이 전혀 없는 그를 받겠다는 식당은 없었다.

말이 안 되는 도전임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이력서를 디종에 있는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 ‘스테판 데르보르(Stephane Derbord)’에 보냈다. 놀랍게도 오너셰프 데르보르에게서 “와서 견습생으로 일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 셰프는 부족한 기술과 경력을 노력과 성실로 채웠다. 2년 동안 주방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이후 18년간 프랑스에서 파리 하얏트 방돔 호텔 등 최고의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5년 제주도 한 호텔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 귀국했고, 2016년 서촌에서 지금의 식당을 열었다가 2018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다.


금귤 비니거 드레싱으로 향미를 낸 숙성 광어. 사진 조선일보 DB
금귤 비니거 드레싱으로 향미를 낸 숙성 광어. 사진 조선일보 DB
직접 구운 호밀빵과 함께 나온 올빼미 모양의 버터. 사진 조선일보 DB
직접 구운 호밀빵과 함께 나온 올빼미 모양의 버터. 사진 조선일보 DB
윌로뜨 레스토랑 내부는 세련됐으면서도 편안하게 꾸며져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윌로뜨 레스토랑 내부는 세련됐으면서도 편안하게 꾸며져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정교한 솜씨로 만든 보석 같은 맛

요리는 계절마다 주기적으로 바뀌지만, 그때그때 좋은 식자재를 구할 수 있으면 바로 새 메뉴에 반영된다. 지난 9월 말 점심은 식전에 나온 빵에 이어 입맛을 돋우는 가벼운 한 입 크기의 간단한 음식인 ‘아뮤즈 부시(amuse bouche)’ 5가지로 본격 출발했다. 성주 참외 가스파초(여러 가지 채소로 만든 시원한 수프), 제주도 현무암 새우 칩, 요구르트 타르틀레트(작은 타르트로 과일이 들어 있는 파이), 리예트 드 카나르(오리고기를 지방과 함께 열을 가하여 만든, 빵에 바르는 음식), 에스카르고 로스트 호래기(꼴뚜기과의 동물을 요리한 음식) 등 하나하나 입에 넣기 아까울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아뮤즈 부시에 이어 나온 앙트레(entree·전채) ‘금귤 비니거 드레싱으로 마리네이드한(향미를 낸) 숙성 광어’는 윌로뜨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요리다. 납작한 접시에 숙성 광어회를 깔고 그 위에 작은 쐐기 모양으로 자른 금귤과 새콤달콤한 금귤 비니거 젤리를 얹었다. 접시는 바다, 금귤 비니거 젤리는 투명한 황금빛 파도, 금귤 조각들은 바다와 파도를 헤쳐나가는 배처럼 보였다. 맛도 탁월했다. 새콤달콤한 금귤과 금귤 젤리가 숙성된 광어의 감칠맛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보기도 아름답지만, 맛의 균형과 구조가 단단하게 잡힌 요리였다.

플라(plat·메인 요리)는 오리·농어·한우·양갈비 중 선택 가능한데, 이 중 농어를 골랐다. 국내 프랑스 레스토랑에서는 생선을 잘 내지 않는다. 우리나라 손님들이 대부분 육류를 선택하고 생선은 외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고급 식당일수록 해산물이 많고 잘한다. 이 식당이라면 제대로 나오지 않을까 싶어 주문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살려 구운 농어와 프랑스 쥐라(Jura) 지역 와인으로 만든 소스가 물 만난 고기처럼 어울렸다.

레몬 타르트 디저트와 차로 식사를 마쳤다. 이 셰프의 경력이나 솜씨에 비하면 널리 알려지지 않아 의아할 정도다. 숨겨진 보석을 홀로 발견한 듯 들떴다.


윌로뜨(Hulotte)

분위기 그야말로 ‘꾸안꾸(꾸미지 않은 듯 꾸민)’, 세련됐으면서도 편안하다.

서비스 정확하고 절도 있지만 딱딱하거나 오만하지 않다. 서비스에 대한 확실한 이해에서 나오는 서비스다.

추천 메뉴 코스 세트만 있다. 코스 구성에 따라 과금이 있어 점심 4만5000원 혹은 5만9000원, 저녁 9만9000원 혹은 13만5000원.

프랑스 레스토랑치고는 비싸지 않은 편. 게다가 음식에 들이는 공력과 코스 구성, 위치를 고려하면 가성비가 매우 훌륭하니 기왕이면 비싼 코스를 드셔보길 권한다.

음료 와인 페어링을 권한다. 2잔 4만5000원, 3잔 7만5000원. 와인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셰프답게 자신의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기가 막히게 골라놓았다. 프랑스 특히 부르고뉴 와인 비중이 크다. 국내에서 쉽게 마실 수 없는 뱅존(vin jaune) 와인이 4가지나 있어 반가웠다.

영업시간 점심 낮 12시~오후 3시, 저녁 오후 6~10시

예약 권장

주차 편리. 발레파킹 서비스

휠체어 접근성 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