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와일드’.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와일드’.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지난 주말에는 영화 ‘와일드’의 마지막 장면을 반복해서 봤다. 의지했고 사랑했던 엄마가 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딸 셰릴은 인생을 포기한다. 아무 남자와 섹스를 하고 약물에 중독되도록 몸을 방치한다. 더 나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듯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데 골몰하는 사람. 그야말로 타락해 버린 셰릴이 인생을 리셋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남편과 이혼한 후 완전한 혼자가 되었을 때다. 감당할 수 없는 상처와 슬픔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해 준 사람까지 망쳐 버린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 혹은 치유하기 위해, 혹은 벌하기 위해 그녀는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생애 가장 깊은 골짜기로 떨어진 한 사람이 혼자서 4000㎞가 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을 걷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힌 건 이 암흑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존을 보장해 주는 어떤 조건도 없는 극한의 길을 떠나야만 하는 한 인간의 내면에서 들끓고 있는 감정은 회복에 대한 절박함 이외 다른 무엇도 아니리라. 아래로 떨어지는 인간이 완벽하게 몰락하지 않는 건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도록 펼쳐진 길 때문이 아닐까. 밑으로 향하던 삶의 방향을 앞으로 바꿀 수 있는 인간은 생이 가해 오는 어떤 충격파에도 너무 많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절망하는 인간’의 역사는 길 위에 많이 빚지고 있는 것 같다. 길이 아니라면 이토록 하찮은 인간의 도전을 누가 다 받아줬을까. 길이 아니었다면 인간이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과 화해할 수 있었을까.

영화 ‘와일드’는 길 끝에서 끝난다. 갖은 고행을 거쳐 종착점에 도달했을 때 화면 위로는 바람처럼 내레이션이 불어와 체력이 바닥난 셰릴에게 희미한 여명 같은 삶의 신비와 생기를 보여 준다. 내레이션은 미래의 그녀가 하는 말로 채워져 있다. 이 영화의 엔딩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현재의 고통에 들려주는 위로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잘살고 있는 미래의 ‘나’는 힘들어하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 가장 큰 희망이다.

“종착점에 닿기 전까진 어딘지도 모르고 걸었다. 수도 없이 감사하다고 되뇌었다. 길이 준 가르침과 나도 모를 미래에 대해. 난 4년 후 다시 이 다리를 건너고 여기서도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한 남자와 재혼을 하고 9년 후 그 남자와 카버라는 아들을 낳고, 1년 후 엄마 이름을 딴 바비란 딸을 낳는다. 이젠 공허한 손을 뻗을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안다.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내 인생도 모두의 인생처럼 신비롭고 돌이킬 수 없고 고귀한 존재다. 진정으로 가깝고 진정 현재에 머물며 진정으로 내 것인 인생. 흘러가게 둔 인생은… 얼마나 야성적이었던가.”

말장난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엔딩은 끝이 아니다. 엔딩이 비극적이라고 느끼는 건 여기가 끝이라고 생각할 때다. 끝이라는 느낌은 언제나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극렬한 상실과 절망, 요컨대 참혹한 감정과 함께 오니까. 끝난 것 같았지만 실은 끝이 아니었다고 말해 주는 엔딩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별다를 것 없는 인간인 나는 그 희망이 너무나도 간절해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셀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돌려봤다.

흘러가게 둔 인생이 야성적이라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기다리라고 장려하는 문장이 아니다. 망가지기 위해 강물을 거스르며 애쓰는 것보다 슬픔이 자신을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야말로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감정을 품는 성숙한 인간으로, 그러니까 고통을 아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니 흘러가게 둔 인생이란 모든 슬픔을 다 맛보겠다는 용기와 인내로 완성된 단단하고 성숙한 인생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상처가 능력이 되려면 슬픔으로부터 도피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수천 킬로미터를 걸으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그런 마음 같은. 슬픔을 막으려고 애쓰는 힘보다 슬픔을 다 경험하자고 마음먹고 슬픔에 온몸을 내어주는 것이 더 강한 힘이다. 그 강한 힘이 우리를 진짜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인생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이 야성적이라는 말의 뜻은 그런 것이리라. 나도 슬픔을 아는 야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셰릴은 혼신의 힘을 다해 3개월간의 여정을 마친다. 길 위에서 서면 종착점에 도착할 때까지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섰을 때 인간은 한 번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알 수 없는 길 위에서의 모험을 감행할 것을 요구받는다. 주저앉을 때도 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길을 걸어내는 것. 하나의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되기 위해서는 끝과 시작을 연결하는 길을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는 것.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계속되고 새로운 인생은 내일이 오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다가올 것이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평론가상


plus point

셰릴 스트레이드

미네소타대학교를 졸업한 뒤 시라큐스대학교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솔직한 자기 고백과 섬세한 심리 묘사로 많은 사람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미국의 작가다. 서른일곱 살에 발표한 데뷔작 ‘토치(Torch)’가 주목받은 뒤 4285㎞의 도보 여행을 기록한 논픽션 ‘와일드’가 2012년 출간되자마자 각종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며 아마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여기에 더해 오프라 윈프리가 자신의 ‘오프라 북클럽 2.0’을 다시 시작하면서 이 책을 ‘올해의 첫 번째 책’으로 선정하며 다시 한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뉴욕타임스 논픽션 부문 1위로 떠오르며 다시 한번 화제의 책이 됐다. 2014년에는 장 마크 발레 감독,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영화 ‘와일드’가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지며 작가 역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보그, 얼루어, 베스트아메리칸에세이 등에 글을 기고하며 ‘슈거’라는 이름으로 인생 상담을 해 주는 팟캐스트도 운영했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영화 제작자인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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