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끊어지는 모습은 지켜보기 힘들다. 하지만 당신은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있다.”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면 남겨진 자들은 깊은 슬픔에 잠긴다. 그 고통은 말 그대로 ‘잠기는’ 고통이어서 슬픔을 뚫고 나와 이전처럼 숨 쉬는 데에는 긴긴 시간이 필요하다.

5년 전이었을까.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던 중 김병종 화가가 쓴 그림 에세이 ‘자스민, 어디로 가니?’를 읽게 됐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다. 흰 바탕에 먹으로만 담백하게 그린 강아지의 이름은 자스민이었다. 김병종 화가가 그린 자스민은 구석구석 사랑스러웠고 자스민을 아끼는 김병종 화가와 고(故) 정미경 작가 그리고 그들 자녀의 마음은 구석구석 다정했다. 16년을 함께한 자스민이 죽은 후 김병종 화가는 해소되지 않는 슬픔을 체험한다. “고통은 언어를 얻고 나면 이슬처럼 증발한다. 그 누구보다 불행한 사람들인 예술가들은 그래서 가장 동정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예술가였던 그는 잊을 수 없는 괴로운 마음을 차라리 추억을 되새기는 데 쓰기로 한다.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리라. 더 남은 아쉬움이 없도록 모든 그리움을 다 느껴 버리는 건 남겨진 사람, 더욱이 슬픔에 잠긴 사람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애도의 행위였을 테니까. 모두가 애도를 알지만 누구나 애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도는 사랑이 지닌 최후의 능력이다.

알베르 카뮈가 존경하는 스승으로 더 알려진 철학자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어느 개의 죽음’을 집어 들었을 때 나는 알아 버렸다. 이 책을 읽으면 5년 전 그날처럼 슬퍼질 거라는 사실을. 어쩌면 울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무섭게 내 몸을 휘감았던 건 이 글이 어떻게 끝날지, 그 엔딩을 알고 있기 때문일 수 있겠다. “그는 죽는다. 확실하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건 그들의 시작과 끝, 그러니까 탄생과 소멸을 온전히 함께한다는 뜻이다.

‘어느 개의 죽음’은 그르니에의 반려견 타이오와 보낸 마지막 나날들에 대한 단상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모두 90개의 짧은 글로 구성됐고, 각각의 글에는 노견과 보내는 마지막 시간에 그가 느낀 애틋하고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조금의 꾸밈도 없이 쓰였다. 그 담백함이 마치 흰 바탕 위에 그어진 먹과도 같다. 또한 개의 죽음을 넘어, 신과 인간, 삶과 죽음, 밝음과 어둠 등의 이분법적 세계를 넘나들며 부정적 세계의 초극, 초달을 표현한다.


고통을 끝까지 지켜보는 시간

어떤 끝은 미지의 것이 아니다. 시작할 때부터 알게 되는 끝. 뻔히 다 보이는 끝.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바로 그렇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의 죽음을 경험한 이후 두 번 다시 동물과 함께 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죽음을 지켜보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물과 함께 살아가며 경험하게 될 마지막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은 그 고통을 지켜보는 것이 사랑의 행위라고 말한다. 고통을 끝까지 지켜보는 시간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그 시간을 견디어 내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사랑에 끝이 있는 것처럼 끝에도 사랑이 있다. 그러나 끝을 사랑하는 데에는 담대한 마음이 필요하다. 오래 갈고닦은 노력도 필요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이자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세계적인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로고테라피’라는 개념을 통해 끝으로 상징되는 ‘절망’을 사랑할 방법을 설파했다. 그는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어떤 극악한 비극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고테라피의 방식을 따르면 인간은 의미를 발견하고 창조해 냄으로써 자신을 자신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 의미를 다른 말로 바꾸면 담대한 마음이라고 불러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믿음은 당신이 보는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당신 자신으로부터 와야 한다.”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애도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애도가 사랑이 지닌 최후의 능력인 것처럼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로 하여금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낼 수 있도록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의미를 읽어 낼 수 있으니 힘들 줄 알면서도 기꺼이 그 힘듦을 선택하기도 한다.

인간의 장점을 한 가지 꼽으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고통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이라고 말하겠다. 인간은 고통스러운 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로 가겠다고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은 얼마나 하찮고도 위대한 존재인지. 우리는 오직 사랑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말의 불길이 좀처럼 사위지 않는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평론가상


Plus Point

장 그르니에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 1898년 파리에서 태어나 브르타뉴에서 성장했고 파리 고등사범학교와 소르본느대학에서 공부했다. 1922년 철학 교수 자격증을 얻은 뒤 아비뇽, 알제, 나폴리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누벨르뷔프랑세즈(NRF) 등에 기고하며 집필 활동을 했다. 1930년 다시 알제의 고등학교에 철학 교사로 부임, 그곳에서 졸업반 학생이던 알베르 카뮈를 만났다.

1933년에 그르니에가 발표한 에세이집 ‘섬’을 읽은 스무 살의 카뮈가 “신비와 성스러움과 인간의 유한성 그리고 불가능한 사랑에 대하여 상기시켜 주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하며 몇 년 뒤 출간한 자신의 첫 소설 ‘안과 겉(1937)’을 스승에게 헌정한 일화는 유명하다.

말년에 소르본느대학에서 미학을 가르치다 1971년 사망할 때까지 꾸준히 철학적 사유를 담은 책들을 발표했고 현대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다수의 미학 분야 저술을 남겼다. 그르니에의 사상은 실존주의적 경향을 띠지만 회의주의적이고 관조적이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장 그르니에의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무엇보다 철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일상적 삶에 대한 서정적 성찰로 확장시킨 산문집들이며 대표작으로 ‘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