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농의 샘’에서 신비로운 여성 마농을 연기한 프랑스 배우 엠마누엘 베아르. 사진 IMDB
‘마농의 샘’에서 신비로운 여성 마농을 연기한 프랑스 배우 엠마누엘 베아르. 사진 IMDB

이야기는 오래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루지 못한 인연에서 시작된다. 여자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고 남자는 그녀의 마음을 의심하며 전쟁터로 떠났다. 여자가 보낸 편지가 배달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었다. 그러나 운명이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 밖의 세계. 끌려가며 희롱당하는 줄 모르고 운명에 맞서 살아간다고 착각하는 인간을 연민하듯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을 변주한 하모니카 멜로디가 샘물처럼 마음을 감싼다.

1920년대 프랑스 프로방스의 작은 산악 마을, 결혼하지 않고 혼자 늙어가는 세자르에겐 조카 위골랭이 유일한 혈육이다. 외모와 지능 모두 부족하지만 하나뿐인 상속자, 카네이션 재배 사업을 하고 싶다는 조카를 위해 세자르는 카모완가의 비옥한 땅을 매입하려 한다.

그러나 말싸움 끝에 땅 주인을 죽게 한 세자르는 사고사로 위장한 뒤 위골랭과 함께 영토 내에 있던 샘을 시멘트로 막아버린다. 물이 없으면 쓸모없이 버려질 땅, 누가 주인이 되든 헐값에 사들이려는 속셈이었다.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나 살아간다는 말처럼, 사람은 죽을 날인 줄 모르고 노래 부르며 길을 떠나고, 죽을 자리인 줄 모르고 찾아가 꽃을 심는다. 죽음으로 몰아갈 적인 줄 모르고 친구가 되기도 한다. 세무원으로 살던 장도 그랬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미련 없이 도시를 버리고 아내와 어린 딸 마농과 함께 죽은 삼촌 카모완의 땅을 상속받아 이사를 한다.

도시인답게 귀농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만을 품은 그는 산악지대에서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지 못한다. 책과 숫자만 알던 곱사등이 장이 옥수수와 토끼를 기를 거라는 말을 조카에게 전해 듣고 세자르는 배꼽을 잡고 웃는다. 책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일한 장은 첫해에는 그럭저럭 풍작을 거두지만 이듬해, 세자르의 예상대로 지독한 가뭄이 닥치고 작물들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자신의 땅에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장은 물 한 방울을 얻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과 고생을 하지만 자연의 가혹함을 이길 방도는 없다. 세상엔 성실과 인내, 선의와 기도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것도 있음을 장은 인정하지 않는다. 끝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포기할 줄 모르던 장은 우물을 파기 위해 설치했던 다이너마이트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빚더미에 앉은 것도 모자라 남편까지 잃은 장의 아내에게서 세자르는 꿈에도 그리던 땅을 싼값에 사들인다. 땅 주인을 죽이고 장도 고통 속에 죽어가게 한 데다 그의 아내와 어린 딸마저 불행에 빠뜨렸지만, 죄의식 따위, 세자르에겐 없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그는 위골랭과 함께 샘을 찾아가 막혀 있던 물꼬를 터뜨리며 기쁨을 만끽한다.

10년의 세월이 흐른다. 장의 샘을 차지한 위골랭은 카네이션 사업을 성공시킨다. 그런데 짓궂은 큐피드의 장난일까? 위골랭의 심장에 사랑의 화살이 날아와 박힌다. 염소 치기 처녀로 아름답게 자란 마농이 숲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우연히 훔쳐보게 된 순간 한눈에 반하고 만 것이다. 세자르와 달리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던 위골랭은 떳떳할 수 없는 처지인 걸 알면서도 샘물처럼 솟구치는 사랑을 서툴게 고백한다. 하지만 마농은 본능적으로 그를 거부한다.

어느 날 마농은 길 잃은 염소를 찾다가 아무도 모르는 마을의 수원(水源)을 발견한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진실, 아버지의 샘을 훔친 세자르와 위골랭 그리고 아버지가 죽을 만큼 고통받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냉소적으로 지켜볼 뿐, 샘의 존재를 말해주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에게 똑같이 복수해주리라, 그녀는 모질게 마음먹는다.

위골랭의 수조는 물론 온 마을의 물이 말라버린다. 그제야 사람들은 마음 깊숙이 감춰 두었던 양심을 꺼내 고백하듯 물길을 막은 죄인과 침묵한 자신들에게 천벌이 내린 거라며 세자르와 위골랭을 원망한다. 세자르는 결백하다며 뻔뻔스럽게 항변하지만, 마농은 샘을 훔쳐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그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며 피를 토하듯 울부짖는다. 마농에게 비난받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던 위골랭은 자신의 사랑이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절망, 집으로 돌아가 자살한다.


아들을 죽음으로 이끈 아버지

세상에 하나뿐이던 피붙이를 잃고 세자르는 살아갈 모든 기력을 잃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시절 자신이 받을 수 없었던 편지 한 통이 사랑했던 플로레트를, 그녀와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인생의 기회를 빼앗아버렸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결과 의도하지 않았으나 자신도 모르게 저버린 핏줄, 눈앞에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던 아들, 그가 바로 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을 쥐어뜯는다.

얼마나 혹독하게 괴롭히고 고통 속에 죽어가게 했던가! 배신한 플로레트가 다른 남자와 사이에 낳은 아들이라 생각했을 때 장의 고생과 죽음은 통쾌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식이었다니! 장애가 있는 아들이 평생 감당해야 했을 삶의 무게와 자신이 악착같이 몰아붙인 그의 죽음을 떠올리며 세자르는 뼈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낀다.

프랑스 영화 ‘마농의 샘’은 마르셀 파뇰이 1952년에 영화로 제작한 후 다시 소설로 완성한 작품이다. 이를 클로드 베리 감독이 1986년에 두 편으로 나눠 리메이크했다.

세자르는 전설적인 프랑스 배우 이브 몽땅이, 장은 제라르 드빠르디유가, 미워할 수만은 없던 위골랭은 다니엘 오떼유가 맡아 명연기를 펼친다. 마농 역의 엠마누엘 베아르가 숲에서 하모니카를 불며 춤추는 모습은 오래 기억될 아름다운 장면이다.

인간의 욕망, 그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척박한 지대에서 꽃을 피우고 싶었던 위골랭의 열망과 마농을 향한 뜻밖의 사랑이, 혈연에 대한 세자르의 애착이 무슨 죄일까? 다만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심을 부리는 순간,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자신은 절대 실패하지 않고 좌절할 일 없다며 교만해지는 바로 그때, 운명의 여신은 싸늘히 미소 지으며 인간의 뼈를 깎아내고도 남을 슬픔을 독극물처럼 삶 속으로 천천히 흘려보낸다.

운명에 희롱당하는 것이 인생이라 해도 돌아보면 늘 되돌리고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는 후회가 남는다. 행복과 불행, 그 시작과 끝에는 오직 ‘나’만 있을 뿐, 그밖에 무엇을 원망하고 핑계 댈 수 있을까.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