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치 밴드의 브레인 장영규는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베이시스트다. 그는 어어부 프로젝트, 씽씽에 이어 밴드 이날치를 이끌고 있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이날치 밴드의 브레인 장영규는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베이시스트다. 그는 어어부 프로젝트, 씽씽에 이어 밴드 이날치를 이끌고 있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애매한 독창성보다 똑똑한 다양성, 지루한 오리지널보다 흥겨운 하이브리드에 열광하는 이 시장에서, 이 모든 시대 정신으로 무장한 강력한 그룹이 나타났으니, 바로 ‘이날치’다. BBC라디오는 이날치 밴드를 일컬어 ‘희한하게 익숙하고 아름답게 낯설다’라고 표현했다. 장구와 북, 소리꾼이라는 간결한 판소리 룰을, 두 대의 베이스와 한 대의 드럼, 4명의 소리꾼으로 배열해, 전 세계 3억 명을 춤추게 한 남자, 리듬의 마법사 장영규를 만났다.


어어부 프로젝트에서 씽씽밴드, 이날치까지, 놀라움을 만들어내는 최전선에 항상 장영규가 있다.
“확실히 오래 하다 보니 뭔가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오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돌아보면 궁금했다. 왜 한국의 음악하는 멋진 형들은 다 사라지고 없는 걸까? 계속하면서 멋지게 살아남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러 음악산업계가 아이돌 그룹과 거대 기획사로 재편되는 동안 장영규는 영화계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타짜’ ‘도둑들’ ‘곡성’ ‘부산행’ 등 100여 편의 영화에 리듬을 입히며 화사하게 역동하는 장영규만의 비빔밥 사운드를 뽑아내곤 했다.

영화계와의 다양한 협업이 장영규라는 독특한 지형도를 만들어낸 듯하다.
“젊은 시절부터 재질과 성분이 다른 사람들과 섞이며 지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무슨 말인가.
“내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진 않았다. 그런데 무용가 안은미, 설치미술하던 이불, 최정화, 이재용 감독 등을 따라다니면서 함께 놀고 잡일도 하면서 많이 배웠다. 꼭 음악을 하지 않더라도 살면서 다른 분야 사람을 만나 그 속에서 지내다 보니 눈이 뜨이고 귀가 열렸다. 그때 쌓였던 성분들이 지금 터져 나오고 있다.”

초기에는 어떤 음악을 했나.
“안은미가 무용 음악을 의뢰하면서 한 첫 말이 ‘마음대로 섞어봐’였다. LP 여러 장을 휙 던지면서(웃음). 그때 훈련이 많이 됐다. 이를테면 바그너와 김소희의 판소리를 붙이는 식이었다. 그렇게 섞을 재료를 찾느라 1990년대 초중반 음악의 전 장르를 다 찾아들었다. 월드뮤직, 전자댄스음악(EDM), 클래식…. 섞기 시작하면 장르의 구분이 없어진다. 그러면 판소리나 클래식은 나한테 엄격한 장르가 아니라 특이한 재료로 받아들여진다. 간혹 언론에서 이날치 밴드의 음악을 ‘퓨전 국악’이라고 규정하면 어색하다(웃음). 이날치의 음악은 얼터너티브 팝이다. 춤출 수 있는 팝이다.”

1995년부터 홍대 인디 신에서 전위적인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를 이끌던 그가 인디를 뛰어넘는 밴드를 하고 싶어 해외 시장을 겨냥해 시작한 밴드가 민요 록밴드 씽씽이었다. 펑크, 디스코, 레게, 글램록, 테크노와 어우러져 나온,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방가르드한 민요 사운드에 홍대 클러버들이 열광했고, 음악 마니아들의 바이블로 통하는 미국 공영방송 라디오 NPR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초대되면서 글로벌 잭팟이 터졌다. 시장의 상식을 뒤집으며 완전히 새로운 음악 경험을 선사했던 씽씽은, 그러나 얼마 뒤 해체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재결성에 대한 팬들의 열망이 뜨거운 가운데, 어느 날 이날치가 날아들었다. 더 익숙하고 더 새로운 구성으로. 장영규에게 상업성이란 자기 것을 버리고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뻔한 계산’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코어 콘텐츠를 대중도 함께 즐기도록 만드는 ‘고도로 계산된 파격’이었다.

이날치는 2019년 5월 이태원에서 ‘들썩들썩 수궁가’로 단독공연을 했고, ‘어류’ ‘토끼’ ‘호랑이’ ‘자라’ 등의 싱글이 포함된 정규 1집 ‘수궁가’를 냈다. 앰비규어스 댄스팀의 흥겨운 춤이 결합된 네이버 온스테이지의 온라인 공연은 조회 수 1058만 회, 서울·부산·전주 등 전국 도시를 돌며 찍은 ‘Feel the Rhythm of Korea’는 조선의 힙으로 이름을 날리며 3억 뷰를 기록했다.

레퍼런스가 있었나.
“아니다. 그냥 자라면서 들었던 모든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특별히 1980년대 팝 음악 색채가 많다. 당시 다들 록을 들었는데 나는 신스 팝을 들었다. 그 리듬이 몸 안에 남아 있다. 목표가 ‘춤출 수 있는 판소리를 만들자’였다. 거기에 시장이 있다고 봤다.”

협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현대무용 그룹인 앰비규어스 댄스팀과는 안무를 맞춰보지도 않고 첫 무대에 올랐다.
“이날치의 30초 영상을 보여줬더니 재밌어하더라. 그런데 마침 그 팀이 바로 해외 장기 공연을 떠나야 해서 ‘무대에서 만나요!’가 됐다. 돌아오는 날 함께 무대에 섰는데 무리가 없었다.”

실제 무대 느낌도 ‘난입’에 가까웠다. 갓과 투구, 한복과 트레이닝복, 선글라스…, 유머러스한 스타일링에 고도로 절제된 막춤이 판소리 그루브를 쫀득하게 쪼개더라.
“그 정도로 믿고 가려면 사전에 그 팀의 장점이 뭔지 정확한 판단이 서 있어야 한다. 나는 앰비규어스 팀에 아무런 주문을 안 했다. 우연을 배제하지 않으면 흥미로운 의외성이 나온다. 나는 뭐든 일단 ‘해보자’고 한다.”

장영규는 한때 백남준과 활동했던 존 케이지의 음악을 들으면서 우연이 뭘까를 생각했다고 했다. 우연이 발생하는 지점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그것을 소중하고 의미 있게 쓰고 있다고.


이날치 밴드가 2020년 11월 23일 ‘온: 한류 축제’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이날치 밴드가 2020년 11월 23일 ‘온: 한류 축제’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팝아트’ 수준의 뮤직비디오는 ‘오래오 스튜디오’ 팀의 작품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핑크플로이드의 ‘더 월’ 이후 가장 신선한 비주얼이었다.
“서로 어울리는 팀을 만나면 굉장한 시너지가 난다. 오래오는 우리 첫 공연을 보고 포스터를 만들어줬다. 이날치 음악을 재미있어하길래 모든 노래를 뮤직비디오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돈이 없으니, 돈 안 들이고 아트웍 필름처럼 해달라고. 하하. 결과적으로 공연을 못 해도 굿즈와 동영상이 끊이지 않고 나오면서 확장성이 커졌다. 결과물이 좋으면 나는 그게 그들의 것이라고 확실하게 크레디트를 준다.”

사람이든 음악이든 섞을 때 원칙이 있나. 메인과 서브 구분 없이 모두가 주인공인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섞을 재료의 장점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요것만 드러나면 된다는 포인트가 있다. 그래야 서로가 빛난다. 다행히 그 지점을 선택하는 직관이 나한테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음악 감독으로 선택당하는 삶을 살다 보니 체득한 능력이다.”

장영규와 함께 작업하는 협력자들은 다 몰아지경에 빠져서 자기 일처럼, 자기 흥으로 일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 잘하고 싶어서 즐거운 경쟁을 한다. 파트너를 탁월한 협업자로 만드는 비결이 있나.
“2013년에 일민미술관에서 ‘탁월한 협업자’라는 전시를 했다. 나는 밴드 일도 하지만 영화계에서 원하는 사운드를 만들어주는 일도 하잖나. 어떤 일을 할 때 한 번 하고 인연이 끝나는 사람도 있고 같이 자주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가 뭘까를 생각했다. 일단 협업이 잘되는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있다. 주문한 작업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정 장면에 맞는 음악은 사실 수천 가지가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제안한 음악 결과물이 상상과 달라도, 큰 방향이 맞고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오케이를 하는 분들이 있다. 나는 그런 감독들과 기분 좋게 일했다. 반면 내 그림과 맞지 않다고 계속 다른 것을 요구하면 결국 평소 자기가 익숙하게 듣던 수준의 음악이 나온다. 가요만 듣던 사람은 가요가 나와야, 오케이를 한다.”

결국 탁월한 협업은 탁월한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란 말인가.
“맞다. 그러기 위해서 첫째는 잘하는 사람과 일할 것. 둘째는 협업자의 결과물이 내 상상과 다르더라도, 방향이 맞으면 그냥 가야 한다. 내 취향은 여러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니, 열어 두자는 거다. 그러면 다들 신나게 일하고, 새로운 게 나온다.”

박찬욱, 김지운, 최동훈, 나홍진, 연상호, 이경미 등 함께 일한 감독들은 다들 탁월한 협업자들이었나.
“그렇다. 그분들도 나한테서 몰랐던 것, 신선한 것을 얻어내야 이익이잖나. 자기 머릿속에 원래 있던 것을 꺼내주는 사람에게 왜 음악을 부탁하겠나. 나는 그 과정을 밴드의 협업에 적용했다. 그러면 좋은 작업이 안 나올 수가 없다. 충돌은 있지만 목표는 같으니까.”

들어보면 이 모든 게 축적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엔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음악까지 장영규 타이틀이 나와서 놀랐다.
“어쩌다 보니 단계별로 끊김 없이 나오고 또 나오는 중이다.”

소통의 기쁨이 정말 크겠다.
“속도와 반응이 너무 빨라 당황스러울 정도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야기보다 그림이 먼저 그려졌다. 젤리 괴물, 무기 등 다른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이라 이경미 감독에게 비주얼 디렉터를 소개해줬다. 나는 판타지를 음악적으로 어떻게 도와줄까, 빠져들어 가게 할까를 많이 연구했다.”

‘보건교사 안은영’도 이날치 음악만큼이나 중독성이 강하다. 자연스러운 중독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미소 지으며) 나는 음악의 화성이 아니라 구조에 매력을 느낀다. 작업 방식도 화성보다 구조에 많은 신경을 쓴다. 리듬으로 구조를 설계하는데, 거기서 중독적인 흥이 터진다. ‘수궁가’의 한 대목인 ‘범 내려온다’도 5분 정도의 곡에 ‘범 내려온다’라는 후렴구가 수십 번이 나온다. 멤버들이 이렇게 많이 반복해야 하냐고 했는데 나는 이만큼은 해야 한다고 했다. 나를 믿으라고. 영화 음악도 화성보다 리듬을 중시하는 감독들이 나를 많이 찾았다. 특히 2000년대 초에 작업했던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는 지금도 많은 분이 찾아 듣고 있다. ‘전우치’ 작곡가가 이날치에 있대…. 이렇게 계보를 찾으며 즐거워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전우치’가 이날치의 상위 개념으로 있더라.”

장영규에게 리듬이란 무엇인가.
“나는 리듬에서 시작해서 리듬으로 끝난다. 음악을 섞기 시작할 때 발생하는 리듬이 있다. 그건 장르로서의 리듬이 아니라 소리 안에 이미 들어 있는 리듬이다. 그게 충돌하면서 새로운 리듬이 만들어지는데 나는 그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가령 드럼을 칠 때 리듬과 자동차 바퀴의 리듬, 인쇄기 돌아가는 리듬 등 그런 걸 음악적으로 정리하고 새롭게 배열시키는 게 관심사다. 판소리 리듬도 정말 이상하다. 말이 나오는 대로 흐른다. 소리꾼 4명이 어우러지면서 5박을 4박으로 좁히기도 하고, 끼워 넣기도 한다. 그렇게 신비한 엇박이 만들어진다. 악보도 없고, 글자로 표시해 가면서 간다. 규칙이 없는데 또 규칙이 있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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