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송학농장 재래돼지 뼈등심 스테이크. 사진 조선일보 DB
포항 송학농장 재래돼지 뼈등심 스테이크. 사진 조선일보 DB

“이런 데 식당이 있어요?”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운전하던 택시 기사가 주택가로 접어들자 다시 물었다. 오래된 다세대 주택으로 빼곡한 전형적인 서민 동네인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구석에 지난해 말 ‘어라우즈(Arouz)’가 문을 열었다. 식당 이름은 ‘일깨우다’ ‘불러일으키다’ ‘자아내다’는 뜻의 영어 ‘arouse’의 발음을 적은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기 쉽지 않은 토종 식자재에 대한 무지를 일깨우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감탄을 자아내는 식당이기 때문이다.

이 식당 장준우(36) 오너셰프는 “어떤 재료로도 맛있는 요리를 하는 식당과 재료 고유의 맛을 중시하는 식당으로 크게 나눈다면 후자에 가깝다”며 식자재를 식당의 주인공으로 겸손하게 내세운다. 한국 흑돼지를 유전적으로 복원한 재래돼지, 특수 발효 사료를 먹이며 풀어 키운 토종닭, 여물을 끓여 먹인 화식(火食) 한우, 강원도 영월 유기 토양에서 재배하는 토마토, 선장이 서해에서 직접 잡은 멸치를 배에서 삶아 급속 냉동한 자숙 멸치처럼 어떤 식당이나 시장에서도 보기 힘든 귀한 식자재를 전국에서 어렵게 구해다 요리한다.

택시에서 내려 골목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니 왼쪽으로 식당이 보였다. 다세대 주택 1층을 세련되게 개조했다. 흰색과 통유리로 46㎡에 불과한 좁은 공간을 밝고 답답하지 않게 바꿔 놓았다. 입구와 식당 안 선반에는 세계 각국 와인과 식자재, 요리책이 가득 쌓였다. 내추럴 와인과 식자재 관련 서적이 주로 눈에 띄었다. 주방은 바 테이블로 둘러싸인 개방형으로 요리 연구가의 쿠킹 스튜디오 같기도 했다.

장준우 오너셰프는 기자 출신으로 요리사가 된 평범찮은 이력을 가졌다. 2013년 경제 일간지 기자로 3년을 일하고는 사표를 내고 요리 유학을 떠났다. 2016년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에서 1년간 음식·와인 과정과 실습을 마치고 유럽 10개국 60여 개 도시를 돌며 음식기행을 했다. 2017년 귀국해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라는 책을 펴냈고, 이후 요리사이자 음식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장준우 오너셰프는 “이곳은 레스토랑이라기보다 안주에 특화된 와인 비스트로”라며 “메뉴의 주역은 요리법이나 국적, 스타일이 아니라 식자재”라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 맛보기 힘든, 특히 한국 토종 식자재가 돋보이도록 조리한 음식 그리고 그런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함께 즐기는 새로운 미식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게 그의 목표다. 장 오너셰프는 “대표 메뉴가 따로 없다”고도 했다. 그때그때 재료 수급 상황에 따라 낼 수 있는 메뉴가 달라지고, 같은 메뉴라도 조리법이 바뀌기 때문이다.


홍성 바다담아 홍선장 자숙 멸치 타르타르. 사진 조선일보 DB
홍성 바다담아 홍선장 자숙 멸치 타르타르. 사진 조선일보 DB
어라우즈 식당 내부. 사진 조선일보 DB
어라우즈 식당 내부. 사진 조선일보 DB

뛰어난 식자재로 만든 처음 맛보는 요리

식당 주인은 대표 메뉴가 없다지만, 이미 대표급으로 유명해진 메뉴가 몇 가지 있다. ‘포항 송학농장 재래돼지 뼈등심 스테이크’가 그렇다. 재래돼지 등심을 뼈가 붙은 채로 건조 숙성해 고기 속 감칠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다음 2~2.5㎝ 두께로 큼지막하게 썬다. 뜨거운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구워 은박지로 감싸 잠시 레스팅(resting·고기를 굽고 난 후 실온에 잠시 두고 기다리는 과정)할 수 있는 시간을 준 뒤 먹기 좋게 썰어서 낸다.

두툼한 지방이 붙어 있어서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장 오너셰프는 “꼭 살코기와 함께 먹어보라”고 권한다. 일반 돼지고기 지방처럼 느끼하지 않다. 크림과 버터를 섞은 듯 고소한 맛이 살코기의 감칠맛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흐물거리지 않고 탱탱한 식감도 지방이라 믿기지 않는다. 살도 그동안 먹었던 돼지고기는 뭐였나 싶을 만큼 다르다. 송학농장에서 일주일에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이 8접시뿐이라니 반드시 예약하고 맛보기를 추천한다.

‘홍성 바다담아 홍선장 자숙 멸치 타르타르’는 스페인에서 즐겨 먹는 로메스코 소스(구운 채소와 견과류를 갈아 만드는 소스)를 접시에 깔고, 올리브·샬롯(양파의 한 종류)·케이퍼(꽃봉오리를 이용해 만든 향신료)를 잘게 썰어 머스터드와 안초비로 버무려 얹은 다음 해동해 우려서 소금기를 뺀 자숙 세멸(잔지리멸)을 마요네즈로 버무려 올렸다. 그 위에 감태 가루를 뿌리고 식용 한련화 잎으로 마무리했다. 여기에 연어알을 올릴 때도 있는데, 이는 신선한 연어알이 그날 식당에 있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조아라 토종닭’으로는 크림과 마살라 와인으로 만든 소스를 곁들인 닭가슴살 구이와 닭날개 튀김 두 가지가 요리돼 나왔다. 닭가슴살 구이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가슴살은 흔히 퍽퍽하다고 싫어하지만 제대로 잘 먹고 운동하며 자란 닭의 가슴살은 그렇지 않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줬다.

장 오너셰프가 말한 대로, 이 식당의 주인공은 식자재였다. 아무리 뛰어난 배우를 주인공으로 섭외하더라도 감독의 연출이 받쳐주지 않으면 훌륭한 작품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장준우 오너셰프는 어라우즈라는 무대를 총괄하는 디렉터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영업 제한으로 양껏 맛보지 못하고 아쉽게 식당을 나왔다.


어라우즈(Arouz)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6길 34-27 1층,
010-5152-7501

분위기 편안하고 소박하면서도 세련됐다. 좌석 14개에 불과한 아담한 규모로, 아늑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답답할 수도 있겠다.

서비스 친근하다. 식자재를 앞세우는 식당답게 음식이 나올 때마다 재료와 요리법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고 정확하다.

추천 메뉴 장준우 오너셰프는 “대표 메뉴가 따로 없다”지만, ‘포항 송학농장 재래돼지 뼈등심 스테이크’(100g당 1만8000원)와 ‘홍성 바다담아 홍선장 자숙 멸치 타르타르’(1만8000원)가 대표 메뉴로 알려져 있다.

음료 와인 비스트로를 표방하는 곳답게 와인 리스트가 잘 짜여져 있다.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와인 수십 가지가 수시로 바뀐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내추럴 와인 비중이 높다.

영업시간 원래는 화~금요일 오후 6~11시, 토~일요일 오후 1~11시이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정부의 영업 제한 지침에 따라 영업하고 있다. 팀 예약이 있으면 평일 점심에도 연다. 월요일 휴무.

예약 100%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주차 불가능. 발레파킹 서비스도 물론 없다.

휠체어 접근성 다소 불편하다.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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