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가 만든 쇼핑 카트 ‘셀프 브레이킹 트롤리’에는 충돌 방지 시스템을 적용했다. 사진 포드
포드가 만든 쇼핑 카트 ‘셀프 브레이킹 트롤리’에는 충돌 방지 시스템을 적용했다. 사진 포드

요즘은 뜸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신차 출시 행사 땐 자동차 업체들이 기자들에게 선물을 나눠줬다. 작은 USB부터 우산, 명함지갑, 배낭, 와인 잔, 점퍼까지 선물은 다양했다. 하지만 대체로 하도급 업체에서 받은 제품에 브랜드 로고만 박아 넣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쓸 만한 제품이 많진 않았다. 가방은 한두 달 안에 지퍼가 고장 나기 일쑤였고, 지갑은 가죽이 금세 벌어졌다. 그러나 가끔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 부서에서 직접 만든 제품도 있었다. 그런 건 품질이 꽤 좋았다. 나도 10년 전쯤 피아트에서 받은 점퍼를 하나 갖고 있는데, 아직 멀쩡해 사무실에서 잘 입고 있다.

자동차 회사에서 차만 만드는 건 아니다. 요즘 자동차 회사는 라이프스타일 부서를 따로 두고 관련 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거의 모든 회사가 옷이나 가방, 시계, 선글라스 같은 패션 아이템을 판다. 포르셰는 포르셰디자인이라는 회사를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런 라이프스타일 제품 말고 새로운 걸 만들기도 한다. 대체로 브랜드의 기술력을 알리기 위해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드는 경우도 있다.

2019년 4월 포드가 신기한 쇼핑 카트를 소개했다. ‘셀프 브레이킹 트롤리(Self-Braking Trolley)’라는 이름이 붙은 이 쇼핑 카트는 여느 대형마트 쇼핑 카트보다 디자인이 예쁘다. 바닥에 삼각형 판이 놓인 것도 다르다. 그런데 포드가 이런 걸 왜 만들었을까? 이유는 이름에 있다. 셀프 브레이킹, 그러니까 스스로 멈추는 카트란 뜻이다. 포드의 충돌 방지 시스템을 얹은 이 카트는 센서가 사람과 물체를 인지해 부딪힐 것 같으면 자동으로 멈춘다. 포드 엔지니어들은 차에 얹히는 충돌 방지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런 쇼핑 카트를 선보였다. 엉뚱하지만 ‘신박한’ 아이디어다. 이런 쇼핑 카트가 있다면 통로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아이들이 카트에 부딪혀 다칠 염려는 없을 것이다.

포드가 이런 독특한 아이디어를 제품에 접목한 건 이뿐이 아니다. 2018년 12월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노이즈 캔슬링(소음 차단) 하우스를 공개했다. 포드의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적용한 하우스다. 원리는 간단하다. 하우스 안에 있는 마이크로폰이 시끄러운 소리를 감지하면 오디오 시스템이 반대되는 주파수를 내보내 소음을 상쇄한다. 포드가 이런 반려동물 하우스를 생각한 건 TV를 통해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를 지켜보는 주인 옆에서 폭죽 소리로 괴로워할 반려동물을 걱정해서다. 하지만 이 하우스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반려동물 말고 내가 들어가 자고 싶단 거였다. 그러면 천둥 같은 남편의 코 고는 소리도 들리지 않을 테니까.


시트로앵은 렌즈는 없고 둥근 안경테가 네 개나 있는 멀미 방지 안경 ‘씨트로엥(SEETROEN)’을 선보였다. 사진 시트로앵
시트로앵은 렌즈는 없고 둥근 안경테가 네 개나 있는 멀미 방지 안경 ‘씨트로엥(SEETROEN)’을 선보였다. 사진 시트로앵
닛산이 2018년 선보인 자율주행 로봇 ‘피치 R(Pitch-R)’은 축구장에 선을 그린다. 사진 닛산
닛산이 2018년 선보인 자율주행 로봇 ‘피치 R(Pitch-R)’은 축구장에 선을 그린다. 사진 닛산

자율주행 탑재해 스스로 이동하는 의자에 로봇까지 선보여

엉뚱하기로 치면 닛산도 포드 못지않다. 닛산은 2016년 2월 ‘인텔리전트 파킹 체어(Intelligent Parking Chair)’를 공개했다. 닛산의 자동주차 기술을 적용한 의자인데 사람이 앉지 않을 땐 의자가 스스로 정해진 위치로 이동한다. 의자 안에 목표 위치를 나타내는 시스템이 있어 사무실이나 방 천장에 달린 4대의 카메라가 의자에 목적지로 가는 경로를 전송하면 이 경로를 받아 원래 있던 위치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이러면 회의가 끝나고 나서 여기저기 널브러진 의자를 제자리에 두느라 애쓸 필요도 없다.

자동주차 시스템을 미리 체험하고 기술력을 알리기 위해 독특한 의자를 만든 닛산은 2018년에는 신기한 자율주행 로봇을 공개했다. ‘피치 R(Pitch-R)’이란 이름의 이 로봇은 닛산의 진보된 자율주행 기술인 프로파일럿 기술을 담고 있는데, 4대의 카메라와 위성항법 시스템(GPS), 충돌 방지 시스템을 챙겨 스스로 움직이며 잔디밭에 정확히 흰색 선을 그린다. 그러니까 축구장에 있는 선을 그리는 로봇인 거다. 닛산은 5명씩 팀을 이뤄 하는 실내 축구 경기장은 물론 11명씩 팀을 이뤄 하는 일반 축구 경기장서도 정확히 그릴 수 있다고 자랑했다. 경기장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남짓이다. 이 기특한 로봇은 평평하지 않은 곳에서도 선을 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장애물을 피하며 그리는 것도 가능하다. 재충전할 수 있는 배터리팩을 갖춰 몇 시간이고 선을 그리게 할 수도 있다.

같은 해 7월 시트로앵은 독특한 안경을 출시했다. 렌즈는 없고 둥근 안경테가 4개나 있는 ‘씨트로엥(SEETROEN)’은 멀미 방지 안경이다. 안경테 안에 들어 있는 파란 액체가 얼굴의 움직임에 따라 수평을 유지하면서 눈에 전달되는 신호와 귀의 균형 감각을 일치시켜 멀미를 줄여준다. 눈으로 보이는 움직임을 귀의 평형감각 기관에서 느끼는 움직임과 비슷하게 느끼게 해 멀미 증상을 줄여주는 거다. 시트로앵은 멀미가 시작되려고 할 때 안경을 10~12분간 쓰고 있으면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앞에 소개한 제품들과 달리 이 안경은 실제 판매도 했는데 값은 99유로(약 13만원)였다. 2019년 시트로앵은 브랜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씨트로엥19 모델도 출시했다. 초기 모델과 달리 파란 안경테가 특징인데, 여전히 안경테는 4개이며 안경테 주변에 파란색 용액이 들어 있다. 값도 99유로로 이전 제품과 같다.

자동차 회사가 차만 만들라는 법은 없다. 엉뚱한 상상이 때론 기발한 제품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노이즈 캔슬링 하우스는 포드가 아니라면 다른 곳에서라도 꼭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밤잠 설치는 사람이 나뿐은 아닐 거다. 인텔리전트 파킹 체어는 맛집 앞에서 순서를 기다릴 때도 요긴하겠다. 실제로 닛산은 사람이 일어나면 한 칸씩 앞으로 움직이는(빈 의자는 맨 뒤로 간다) 인텔리전트 파킹 체어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의자가 있으면 사람이 일어날 때마다 일어나 앞쪽 의자로 옮기는 번거로움을 덜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