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나 템플턴의 ‘그녀가 말했던 것’ 표지. 사진 김진영
디아나 템플턴의 ‘그녀가 말했던 것’ 표지. 사진 김진영

“학교 안 가는 애들 사진집이네.” 손님의 말이 들려왔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책은 디아나 템플턴(Deanna Templeton)의 ‘그녀가 말했던 것(What She Said·2021)’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학교 밖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새로이 마주치는 것에 심장이 떨리고 그만큼 감정도 요동치는 시기를 우리는 한번쯤 겪는다. 파고는 각자 다르지만, 물결의 높이를 비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시기를 겪으며 우리는 나에 대해, 타인에 대해, 인생에 대해 배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디아나는 16세 때 LA의 펑크 문화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유스컬처, 서브컬처를 담아 온 사진가다. 대표적으로 ‘Scratch My Name On Your Arm(2011)’에는 유명 스케이트 보더나 서퍼의 사인을 몸이나 속옷에 받는 유스컬처에 관한 5년간의 작업이 담겼고, ‘The Swimming Pool(2016)’에는 자신의 집 야외 수영장에 친구들을 초대해 이들이 옷을 벗고 수영하는 모습을 8년간 담은 작업이 담겼다.

디아나가 3세 연하 남편인 에드 템플턴(Ed Templeton)과 만난 일화도 재미있다. 디아나는 18세 때 친구인 앤과 학교를 빼먹고 LA에서 열린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공연장을 갔다. 앤의 연인인 제이슨과 제이슨의 친구인 에드도 학교에 가는 대신 이곳을 찾았다. 커플이었던 앤과 제이슨 덕에 디아나와 에드는 친해질 수 있었다. 그로부터 3년 후 두 사람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에드는 현재 사진가이자, 스케이트 보더로 활동하고 있다.

디아나의 사진을 보다 보면, 그에게 익숙한 문화와 정서에 한발 다가갈 수 있다. 디아나는 사진집 제목을 영국의 록밴드 ‘더 스미스(The Smiths)’의 곡 ‘What She Said’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는 이 곡이 자신의 10대 시절을 대변하는 듯하다고 말한다. 이 곡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그녀가 말하는 건 슬픈 내용이었지. 그러자 그녀는 모두에게 거부당했어. 행복한 척하기 위해 백치가 되어야만 했어.”

자신의 슬픔과 고민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어려웠던 10대, 디아나는 수많은 일기와 메모를 적었다. 때로는 부모님이 그것을 봐줬으면 해서 책상 위에 보이도록 올려두었지만, 부모님은 그에게 무관심했고 자식을 방치하다시피 했다. 그런 그에게 출구는 음악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밴드 공연을 보러 다니고 전단을 모았다.

스물한 살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삶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고 그는 말한다. 부모님의 집에서 나왔고, 일기, 메모, 연애편지, 공연장 티켓, 전단은 상자에 담겨 옷장 깊숙이 어딘가에 놓였다. 그리고 오랜 기간 잊혔다.

그가 이 박스를 다시 열게 된 건 ‘그녀가 말했던 것’이라는 사진집을 본격적으로 구상하면서부터였다. 미국, 유럽, 호주, 러시아 등 여러 나라의 거리 곳곳에서 10대 소녀들의 모습을 담던 그는 이들의 모습에서 문득 자신의 10대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순간 나는 너무나 놀라운 점을 깨달았다. 인물 사진을 찍기 위해 내가 다가갔던 여성 대부분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이유가 있어 이들에게 끌림을 느꼈던 것이다. 이들은 내가 이들의 나이였을 때 나의 모습이거나 아니면 내가 되고자 열망했던-아름답고 강하고 독립적이고 거친-그런 모습이었다.”

사진 속 인물들은 그의 말대로 때로는 우울하고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며 반항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개성 있는 옷차림에 에너지가 넘치고 자유분방한 모습이기도 하다. 디아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무관심한 부모 밑에서 방황했던 자신의 10대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서 “(10대들에게서) 나에게도 존재했던 비슷한 고민, 절망 등을 보았고, 10대 여성의 보편성 같은 것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현재 모습은 자신의 과거 모습이기도 하며, 자신의 과거 경험은 이들의 현재 경험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디아나는 이 책에 10대 소녀들의 인물 사진을 담는 것뿐만 아니라, 상자 안에 담아 두고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자신의 10대 시절 이야기를 꺼내 보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그녀가 말했던 것’에는 디아나의 인물 사진 작업과 그가 10대이던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쓴 일기와 메모가 교차돼 담겨있으며, 중간중간 음악에 빠져 10대를 보냈던 그가 모아 둔 밴드 공연 전단이 담겨 있다. 연애, 음악, 외모에 대한 불만, 자살 충동, 유언장, 자기혐오 등 디아나가 오랜 시간 상자 안에 넣어두었다 꺼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일기와 메모들을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보여주려고 보관해두었던 것 같다. 아이가 자신에 대해 낙담하게 되는 때가 오면, 나의 10대 시절 글을 보여주며 ‘나도 그랬었어. 그러니 너도 나처럼 극복해갈 수 있을 거야’라고 알려주려고 말이다. 나는 아이를 갖진 않았지만, 나의 힘들었던 과거를 공유하는 것이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중략) 요동치던 시기에서 살아남아 성인이 된 사람으로서, 이 책이 터널 끝에 빛이 있다는 점을 전달할 수 있길, 그리고 그 나이에 삶이 얼마나 강렬하게 느껴졌는지를 회상하면서 젊음을 되돌아볼 때, 우리 모두가 웃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디아나에게 ‘그녀가 말했던 것’이라는 책은 그의 다른 어떤 작업보다 분명 가슴 저미는 지점이 있었을 것이다.

인생에서 떠나 보내온 시기, 특히 너무나 힘들고 안 좋았던 시기를 우리는 덮어두는 경향이 있다. 10대 시절 손목에 그은 상처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그. 그는 이 책을 통해 따뜻한 용기를 내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디아나 템플턴은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 10대 소녀들의 사진을 담았다. 사진 김진영
디아나 템플턴은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 10대 소녀들의 사진을 담았다. 사진 김진영
디아나 템플턴은 10대 소녀들의 인물 사진을 찍으며 자신의 10대 시절을 떠올렸다. 사진 김진영
디아나 템플턴은 10대 소녀들의 인물 사진을 찍으며 자신의 10대 시절을 떠올렸다. 사진 김진영
디아나 템플턴은‘그녀가 말했던 것’에 자신이 10대 시절 쓴 일기와 메모를 담기도 했다. 사진 김진영
디아나 템플턴은‘그녀가 말했던 것’에 자신이 10대 시절 쓴 일기와 메모를 담기도 했다. 사진 김진영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