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날이다. 섬진강이 굽이치는 하동군 악양면 최참판댁 마당에도 모락모락 봄이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 이우석
완연한 봄날이다. 섬진강이 굽이치는 하동군 악양면 최참판댁 마당에도 모락모락 봄이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 이우석

너른 은모래밭이 펼쳐진 섬진강 하구엔 하동 땅이 있다. 지리산 자락 아래로 크게 굽이치는 말 없는강은 고운 모래를 실어나르며 국내 유일의 강 모래톱을 깔았다.

“축축이 젖은 모래는 여인네 살갗처럼 부드러웠다.” 소설가 박경리가 ‘토지’에서 섬진강 모래밭을 묘사한 글이다. 섬진강의 원래 이름도모래가람(다사강·多沙江)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 서정적 풍경은 봄날이면 더욱 근사하다.

옥빛 바다 다도해와 지리산 연봉들을 바라볼 수 있는 금오산을 차로 올라보면 하동을 품은 땅의 지세가 얼마나 명당인지 금세 알 수있다.

지리산 끝자락 형제봉(1115m)에선 앞서 언급한 섬진강의 유려한 곡선과 은모래밭이 내려다보인다. 수채화 팔레트를 닮은 악양의 논밭이파릇한 색을 발하며 풍경에 서정성을 더한다.

산정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어 쉽게 오를 수 있다. 등산로로 가면 3시간은 족히 걸린다. 산길 임도를 따라서 오르면 길가엔 신록이피어나는 중인 차밭도, 층층 들어앉은 작은 농가도 볼 수 있다.

이른 아침에 산을 오르면 더욱 좋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꽤 있는 날엔 물안개가 피어오르며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안개는 산 중턱에목걸이처럼 걸려 한 폭의 산수화를 연출한다. 그야말로 그림 같은 곳. 이곳이 하동이다.

신선봉에서 뻗은 줄기는 섬진강과 만나 땅으로 꺼져 든다. 300m 능선에 고소산성이 있다. 산성 밑에는 하동의 새로운 전망 좋은 명당으로자리잡은 해발 150m의 스타웨이 스카이워크가 있다.

스타웨이는 이름처럼 별 모양으로 만든 데크 스카이워크다. 평사리 들판과 구재봉을 바라보는 삼각형 전망대가 좋다. 반대편에는 광양 다압면너머로 멀어지는 산 그림자를 조망할 수 있다. 내부에는 전망 좋은 카페가 있어 맛난 음료와 케이크를 맛보며 쉬어갈 수도 있다.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람’ 노랫말처럼 화개장터엔 봄이 단단히 들었다. 화개장터가 유명했던 것은 수운 덕이다. 남해에서 해산물이섬진강을 타고 거슬러 오르고 올라 내륙 깊숙한 땅의 산물과 만난다. 제수가 한 장터에서 해결된다. 물자도 사람도 몰렸다. 한때 영호남의교역장으로, 조선 5대 장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상인보다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장터는 깨끗하고도 활기차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인간 삶과만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이치다.


형제봉 산정에서 섬진강을 보면 인간과 자연의 역사가 보인다. 사진 이우석
형제봉 산정에서 섬진강을 보면 인간과 자연의 역사가 보인다. 사진 이우석
어둠이 내려와도 은모래의 창백한 빛은 가릴 수 없다. 사진 이우석
어둠이 내려와도 은모래의 창백한 빛은 가릴 수 없다. 사진 이우석
무량원식당에선 하동에 어울리는 토속음식, 청국장을 맛볼 수 있다. 사진 이우석
무량원식당에선 하동에 어울리는 토속음식, 청국장을 맛볼 수 있다. 사진 이우석

평화로운 봄날, 따뜻한 마을 골목

이제 곧 벚꽃 망울이 터지고 찻잎을 따는 계절이다. 연분홍과 연두색이 ‘봄 내려온다’를 외치면 하동에 많은 발걸음이 몰릴 때다.

악양 평사리 들판 역시 ‘새풀옷’으로 갈아입고 ‘그린 카펫’처럼 길손을 맞는다. 평사리 전망 좋은 곳에 들어앉은 최참판댁은 실제 정승집은아니다. 박경리 소설 ‘토지’ 속 공간을 재현한 곳이다. 실제 모델인 ‘조씨 고가’를 밑바탕으로 지었다. 1998년 생겨났으니 이제 시간의 때가묻어 더욱더 자연스럽다. 최참판댁 앞마당에서 내려다보는 평화로운 들판도 산정 못지않게 근사하다.

최참판댁으로 오르는 길은 일본 인기 관광지 유후인의 마을 골목처럼 다정다감한 모양새다. 대봉감 등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챙기며 둘러보는 맛도좋다. 최참판댁 옆에는 멋들어진 한옥 체험관도 있고, 주변엔 박경리문학관과 매암차문화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 체험거리가 있어 일정이 더욱더풍요롭다.

하동 여행을 보다 깊숙이 들어가 즐기려면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악양면장 출신 조문환 대표가 이끌고 있는 주민공정여행 기업‘놀루와’는 여행자가 하동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고 누릴 수 있는 상품을 개발했다.

‘섬진강 달마중’ ‘평사리 슬로워크’ ‘논두렁 축구 대회’ 등 이벤트를 통해 ‘진짜 하동’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하동의 특산차를 경험할 수 있는 ‘차마실’ 콘텐츠도 있다. 이래저래 풍요롭고 여유가 있는 곳이다. 산 고을, 강변 마을 하동 땅은.


▒ 이우석
놀고먹기 연구소 대표,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여행수첩

둘러볼 만한 곳 옥종면 일대엔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하며 지낸 자취가 남은 ‘백의종군로’가 있다. 옥종면 정수리를 시작으로 덕천강변 문암리 일대 등을 지난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권율 부대에 합류하기 위해 충무공은 백의를 입고 합천으로 향하는데 하동과 진주, 산청을 거쳐 갔다고 ‘난중일기’에 적었다. 이를 토대로 생겨난 봄날의 길을 걷는다.

먹거리 청국장 맛이 좋은 무량원식당이 있다. 직접 띄운 청국장을 팔팔 끓여 산채와 함께 차려낸다. 그리 짜지 않고 구수한 향이 식욕을 돋운다. 한옥이라 토속적인 상차림의 맛이 더 좋게 느껴진다. 지리산대박터고매감은 갖은 나물을 조물조물 무쳐낸 산채비빔밥을 잘하는 집이다. 곁들여내는 나물 찬도 신선하고 참기름 향도 좋다. 카페가 함께 있어 커피도 파는데 식후에 커피 한잔과 함께 바라보는 경치는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