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규는 ‘독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KPGA투어의 레전드 최광수의 아들로 프로 데뷔 당시 화제를 모았다. 사진은 2005년 최광수가 한국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모습. 사진 한성아카데미
최형규는 ‘독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KPGA투어의 레전드 최광수의 아들로 프로 데뷔 당시 화제를 모았다. 사진은 2005년 최광수가 한국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모습. 사진 한성아카데미

3월 30일 발표한 여자골프 세계랭킹에서 10위 이내 한국 선수는 네 명이었다. 세계 1~3위를 고진영(26), 박인비(33), 김세영(28)이 차지했고, 김효주(26)가 9위에 이름을 올렸다.

1998년 박세리(44)가 US여자오픈에서 ‘맨발 투혼’으로 우승한 이후 한국은 끊임없이 스타 선수를 배출하는 세계 여자골프의 젖줄이자 최강국이 됐다.

박세리는 세계 무대에 도전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데이비드 레드베터 아카데미에서 골프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세계 정상의 선수가 되기 위해선 미국에 있는 세계 정상의 코치에게 배워야 한다는 공식이 생겼다. 한국 여자 선수들은 당시 세계 3대 스윙 코치라 불리던 부치 하먼, 행크 헤이니, 데이비드 레드베터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의 큰 고객이었다. 선진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통해 효과적으로 배운다는 평도 있었지만, 언어와 문화 차이로 인한 소통의 문제, 지나치게 비싼 비용 등 불만도 적지 않았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큰 변화가 생겼다. 박인비의 남편이자 스윙 코치인 남기협(40)처럼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프로 출신들이 외국 지도자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어려서 해외 전지훈련을 통해 미국 아카데미의 시스템을 경험했고, 선수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을 바탕으로 실전적인 코칭 기법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상으로 KPGA투어 프로 생활을 일찍 접고 지도자로 명성을 날리는 안성현(40), 이시우(40) 등도 이런 사례다.

그동안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국의 골프 아카데미들이 한류와 K 컬처가 성장했던 것처럼 아시아를 시작으로 세계 시장의 주목을 받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지난해부터 세계 1위 고진영의 코치로 활동하는 최형규(34)는 “K 코칭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다.

그는 ‘독사’라는 별명으로 KPGA투어의 한 시대를 풍미한 최광수(61)의 아들이다. 최형규는 2007년 KPGA투어에 데뷔해 한국 골프 100년 사상 처음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프로골프 대회에서 경쟁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큰 기대를 모았으나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접고 4년 전부터 골프 코치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고진영 외에도 KLPGA투어의 스타 플레이어인 이정민과 임희정, 김지영, 인주연, KPGA투어에서 뛰는 박효원 등 프로골퍼 11명을 지도하면서 ‘핫’한 코치로 떠올랐다.

30~40대의 KPGA투어 프로 출신 코치들의 공통점은 미국의 유명 골프 아카데미에서 직접 배워본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최형규도 중·고등학교 시절 거의 매년 겨울 미국으로 전지 훈련을 떠나 유명 아카데미에서 레슨을 받았다. 그는 유명 코치들이 선수에게 레슨하는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최형규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 PGA투어 대회를 가보면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선수들이 연습하고 있다. 그때 코치와 선수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무대 뒤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코치의 존재가 참 멋있었다. 골프는 혼자 하는 외로운 스포츠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다. 내 스윙을 교정하는 것보다 다른 선수들은 어떤 레슨을 받는지, 코치들이 어떤 걸 말하는지를 더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지도자의 길로 접어든 것 같다.”


최형규 코치(오른쪽 빨간 색 상의)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이정민과 스윙 동작을 협의하고 있다. 가운데는 함께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재미교포 케니 김. 사진 한성아카데미
최형규 코치(오른쪽 빨간 색 상의)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이정민과 스윙 동작을 협의하고 있다. 가운데는 함께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재미교포 케니 김. 사진 한성아카데미

일찍이 골프 코치의 길 걷는 프로 출신 늘어

그처럼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 일찌감치 골프 코치의 길을 전문 영역으로 삼는 투어 프로 출신 코치들이 늘고 있다.

샷 측정 장치인 트랙맨 등을 바탕으로 데이터에 바탕을 둔 코칭은 일반 주말 골퍼에게까지 확산하고 있다. 그는 여기에 골프 코칭은 팀으로 일할 때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2017년 처음 아카데미를 세우고는 혼자 했지만 2019년에 재미교포 골퍼 출신인 케니 김과 협업하기 시작하면서 코칭 스태프 4명을 보강했다. 환자의 상태를 놓고 전문의들이 모여서 다양한 토론 끝에 진단을 내리고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것처럼 골프에서도 이런 협업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수와의 소통은 코칭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스윙에서 나오는 문제점은 단순한 동작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선수가 기량을 쌓아온 과정과 심리적인 상황, 건강 상태, 몸의 균형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고차방정식이기 때문이다.

고진영은 “성적이 잘 나오더라도 몸에 무리가 가는 스윙은 오래 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스윙을 바꾸기로 했다”고 했다. 최형규는 “이미 세계 1위에 오른 선수의 스윙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다만 백스윙 때 지면 압력 패턴이 앞쪽 발끝에 쏠려서 어깨 회전이 충분하지 않고 공을 찍어 치는 경우가 많았다. 스윙 중에 밸런스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하며 스윙 궤도를 인사이드 아웃으로 바꾸는 기본 훈련을 오래 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고진영과 최 코치가 중점을 두고 훈련하는 내용은 몸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스윙 파워를 키우는 자연스러운 체중 이동을 익히는 것이다.

갈수록 골프의 흐름이 장타 능력을 키우는 데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다. “내게 오는 선수들도 모두 비거리에 대한 관심이 많다. 하지만 최근 난조에 빠진 로리 매킬로이가 브라이슨 디섐보의 장타를 의식하다 스윙 메커니즘을 잃고 말았다고 후회하는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나는 거리를 많이 내는 선수가 쇼트게임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스윙 파워를 높이면서도 몸이 움직이는 순서인 스윙 시퀀스가 밸런스를 잡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오전 7시에 한성 CC에 있는 아카데미로 출근한다. 저녁식사 후에는 선수들의 시합 영상을 보고, 외국 코치들의 코칭기법을 연구하면서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선수들과 3승을 이뤄냈는데 코로나19로 대회장에 가지 못했다. 올해는 18번홀에서 함께 트로피를 드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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