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은 소년 카마도 탄지로가 귀살대원이 되어 혈귀라 불리는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사진 IMDB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은 소년 카마도 탄지로가 귀살대원이 되어 혈귀라 불리는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사진 IMDB

당신은 약한 사람인가, 강한 사람인가? 약하다고 느낀다면, 강해지고 싶은가? 어떻게 강자가 될 것인가? 힘이 없어 소중한 것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강해져야 할까? 왜 강자가 되고 싶은가? 만약 당신이 이미 강자라면, 그 힘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쓰고 있는가?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은 소년 카마도 탄지로가 귀살대원이 되어 혈귀라 불리는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목과 팔다리를 칼로 베고 피비린내가 흥건한 데도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빠져들더니, 아예 가족영화가 되어버렸다. 어떤 경우라도 저버려서는 안 될 올곧은 인간 정신의 뼈대를 이 영화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산에서 숯을 구워 팔며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탄지로의 가족은 혈귀에게 몰살당하고 누이동생 네즈코는 혈귀로 변해버렸다. 탄지로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 위해 귀살대원이 된다.

인간을 잡아먹는 혈귀는 악의 화신 키부츠지 무잔, 상현과 하현으로 나뉜 십이귀월들 그리고 일반 괴수로 구분된다. 무잔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십이귀월이 되면 눈동자에 등급을 새기고 그의 피를 나눠 받아 더욱 강력해진다. 혈귀는 신체가 잘려나가도 곧 재생된다. 그들을 소멸시킬 수 있는 건 오직 귀살대의 일륜도와 햇빛뿐이다.

해가 비추는 동안에는 상자 안에 숨어 잠을 자는 네즈코지만 탄지로는 동생이 다른 혈귀와 달리 인간을 가족처럼 지키려는 의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가끔은 네즈코의 도움도 받으면서 탄지로는 혈귀들과 싸움을 거듭해간다. 이후 멧돼지 탈을 쓰고 다니며 동물적 괴력을 발산하는 이노스케, 평소엔 겁쟁이지만 공포 상황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는 젠이츠와 한 팀이 되고 공동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기차에 오른다.

여기까지가 26편으로 구성된 TV 방영분의 내용이다. 본편의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귀살대원을 태운 열차가 달린다. 기차에서 탄지로는 귀살대의 기둥(柱)이라 불리는 고수 검객, 호쾌한 렌고쿠 쿄쥬로를 만난다. 처음 기차를 탄 그들은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처럼 설레지만, 차량 내부에는 뭔지 모를 위화감이 감돈다. 실은 기차에서 사람들이 사라졌고 혈귀의 출현이 의심되어 귀살대를 보냈지만 그들까지 실종, 결국 탄지로 일행과 쿄쥬로가 파견된 것이다.

식인괴물 혈귀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네즈코처럼 이유도 모르고 혈귀가 된 경우도 있지만 가혹한 삶에서 벗어나려는 스스로의 절박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동정할 이유는 없다. 인생이 힘겹다고 모두 악귀가 되지는 않는다. 귀살대원들도 혈귀들 못지않은 원한과 슬픔을 안고 있지만 개인의 복수를 넘어 세상을 지킨다. 네즈코는 혈귀가 됐을지언정 인간을 잡아먹지 않고 인간을 지킨다.

혈귀는 평범한 인간이 빠지기 쉬운 세상의 악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권세와 부와 쾌락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남을 해치며 즐거워하는 현실의 악당들, 자신의 연약함을 원망하다 강자 밑에 들어가 약자들을 괴롭히며 대리 만족하는 비겁자의 단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영원히 최강자가 되지 못한다. 혈귀는 언제나 더 강한 자, 무잔에게 이용되고 버려질 뿐이다.

어둠이 내리자 기차를 장악하고 있던 하현1 엔무가 정체를 드러낸다. 쿄쥬로는 젠이츠, 네즈코와 함께 혈귀의 배 속이 되어버린 열차 안에서 200명의 승객을 지켜내려 온 힘을 다해 싸우고, 탄지로와 이노스케는 기차와 일체가 된 엔무와 대결, 급소를 찾아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괴물들의 혈귀술과 대원들이 쓰는 호흡법의 전술은 만화적 상상력과 애니메이션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판타지로 현란하게 펼쳐진다.

마침내 혈귀들을 물리치고 승객을 안전하게 구했다고 기뻐할 때, 뜻밖에도 상현3 아카자가 그들 앞에 나타난다. 지금까지는 시범경기였을 뿐, 본 게임의 시작이다. 영화의 포커스가 탄지로에서 쿄쥬로로 넘어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문제는 아카자를 대적하기에 탄지로는 부상이 깊은 데다 멀쩡했다 해도 실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 오직 기둥인 쿄쥬로만이 상대할 수 있지만 그 또한 너무 많은 기력을 소모한 뒤였다.

아카자는 조롱하듯 쿄쥬로의 강인함을 아까워하며 유한한 인간의 몸을 버리고 혈귀가 될 것을 제안한다. 쿄쥬로는 혈귀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한다. “나는 혈귀 따윈 되지 않는다. 나는 내 책임을 완수한다. 여기 있는 사람들 누구도 죽게 하지 않겠다!”

영화는 쿄쥬로와 아카자의 대결을 끝까지 숨 가쁘게 몰아붙이며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분명하게 드러낸다. 힘은 약한 자를 위해 써야 한다는 것, 강자가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내일을 위해서라면 죽음조차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인간은 오늘을 남겨준 그 뜻을 소중히 계승하며 또 다른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귀멸의 칼날’은 선과 악의 단순한 대결을 넘어 약함과 강함, 강해지고 싶은 나약한 인간과 약할지언정 자신을 믿는 강인한 인간의 싸움을 그린다. 혈귀란 자신의 나약함을 저주하다 사람이기를 포기한 괴물, 자기 자신을 잃어버려 비참해지고 흉측해진 인간의 이면이다.

‘귀멸의 칼날’은 재미있다. 초식 동물화되어 가면서도 사라지지 않은 폭력의 본능을 해소해주는 동시에 세상을 구하는 영웅 신화에 대한 욕망까지 만족시킨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는 정의의 탄지로!’ ‘렌고쿠 쿄쥬로 포에버’를 되뇌며 주인공들의 용기와 우정을 닮고 싶은 모방 본능에 빠진다.

어른들은 어떨까? 소년 시절을 회상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혈귀가 되어서라도 강자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혹시 이미 혈귀가 된 건 아니겠지?’ 그러다 고개를 젓는다. ‘나는 사람이다. 언제까지나 인간인 채로 살다 인간으로 죽을 것이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가슴 쓸어내리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모처럼 소년 만화를 보고 감동한 마음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싱긋, 웃어보는 것이다.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