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피리앤 아웅이 6월 17일 일본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미얀마 군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미얀마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피리앤 아웅이 6월 17일 일본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미얀마 군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미얀마의 한 축구 선수가 일본 정부에 난민 지위 신청을 한 모양이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전에 참가하기 위해서 일본에 체류 중이던 미얀마의 국가대표팀 골키퍼 피리앤 아웅 선수가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귀국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 일본 정부에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 지바현에서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국가를 제창할 때 세 손가락만을 이용해서 경례를 한 이후 줄곧 대표팀 스태프들에 의해서 감시를 받아왔다고 한다. 검지와 중지, 약지 세 손가락만으로 하는 이 경례를 ‘세 손가락 경례(Three-finger salute)’라고 한다. 미국 영화 ‘헝거 게임’ 시리즈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피리앤 아웅 선수 역시 지난 2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미얀마 군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세 손가락 경례를 한 것이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공개된 자리에서 그보다 먼저 세 손가락 경례를 한 미얀마인이 있다. 아웅산 수지 정권에서 임명한 유엔 주재 미얀마 대사 초 모 툰이 그 주인공이다.

초 모 툰은 지난 2월 말 유엔 총회에서 미얀마 군사 쿠데타를 비판하면서 국제 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한 뒤, 세 손가락 경례를 했다. 군사정권에 대한 불복종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당연히 그는 경질됐고 군사정권은 새 대사를 임명했다.

초 모 툰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두려움도 있었다. 미얀마 국민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민주주의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것을 걸었다.” 그는 단지 ‘많은 것을 걸었다’고 말했지만, 두 사람의 행동은 죽음을 각오한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용기였을 것이다.

초 모 툰 대사의 불복종 선언 이후 많은 미얀마 외교관이 그의 뒤를 따랐다. 피리앤 아웅 선수의 세 손가락 경례도 중계 화면에 잡혔고,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급속히 퍼졌다. 미얀마 현지 시위 현장에서도 시민들이 이 동작을 따라 하며 반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대체 그게 뭐길래 사람들은 이렇게 손가락 하나로 목숨까지 거는 것일까. 나무 위에 살면서 열매를 채집하며 살던 우리 조상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사바나초원에 발을 디뎠다. 직립보행의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인류의 열 손가락은 이동을 위한 노동에서 해방되면서 엄청난 자유를 만끽한다.

유인원과 달리 인간의 손은 물건을 힘있게 움켜쥐는(power grip) 단순한 동작에서부터 정확하게 잡는 것(precision grip)까지 가능하다. 돌도끼를 던지고 열매를 따먹는 단순한 일부터 도구를 만들고, 세밀화를 그리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복잡한 신경 수술까지 척척 해낸다.

이렇게 노동에 사용되던 손가락들은 점차 제각기 나름의 상징을 갖게 됐다. 알다시피 엄지손가락을 하나만 치켜세우는 행동을 우리는 ‘엄지척(thumbs-up)’이라고 한다. 멋있다, 좋다, 오케이 등을 상징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엄지를 치켜세우느냐, 내리꽂느냐에 따라 검투사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했다. 물론 문화에 따라서 엄지는 남근을 상징하는 외설의 상징이기도 하다. 엄지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넣고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행동은 ‘남녀 간의 섹스’를 상징한다. 


기독교 도상학(christian iconography)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 손가락은 ‘축복’을 상징한다. 예수의 손가락 세 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나타내고, 나머지 두 손가락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내려온 예수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상징한다. 사진은 알브레트히트 뒤러의 ‘구세주’. 사진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기독교 도상학(christian iconography)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 손가락은 ‘축복’을 상징한다. 예수의 손가락 세 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나타내고, 나머지 두 손가락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내려온 예수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상징한다. 사진은 알브레트히트 뒤러의 ‘구세주’. 사진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둘째 손가락인 검지는 일반적으로 뭔가를 가리키는 역할을 하는데, 비판적인 내용과 함께 사용하면 위협, 비난 혹은 ‘지적질’이 된다. 이때의 둘째 손가락은 긴 칼이나 비수를 대신하는 위험한 상징물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엄지와 검지를 모으면 오케이 사인이 되고, 검지와 중지 두 개만 올리면 ‘승리’의 상징이 된다.

셋째 손가락인 중지 역시 외설적인 의미를 띠는 경우가 많다. 다른 손가락을 모두 움켜쥐고 중지만 치켜세울 때, 중지는 남근을 상징하고 양옆의 굽혀진 손가락은 고환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행동은 상대방을 모욕하는 ‘엿 먹어라(fuck you)!’ 뜻을 갖게 된다.

넷째 손가락은 해부학적으로 다른 손가락에 비해 움직임이 둔하기 때문에 독립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넷째 손가락에 약혼반지나 결혼반지를 낀다. 스스로 서로의 독립성을 제한하고 서로에게 순종한다는 서약이다. 다섯째 손가락 역시 서로 손가락 고리를 만들면 ‘연대’와 ‘순종’을 의미하면서 약속을 할 때 주로 사용한다.

세 손가락 경례가 ‘저항’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손가락 세 개를 한꺼번에 사용할 때에는 어떤 상징이 있을까. 기독교 도상학(christian iconography)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 손가락은 ‘축복’을 상징한다. 예수의 손가락 세 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나타내고, 나머지 두 손가락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내려온 예수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상징한다.

단순히 숫자 3을 의미하는 경우에도 문화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독일 사람은 엄지, 검지, 중지 3개를 사용하는 데 반해, 미국인은 검지, 중지, 약지를 사용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연출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란 영화가 있다. 영화에서 독일군 장교로 변장한 연합군 장교들이 카페에서 맥주 3잔을 추가 주문하다가 손가락을 잘못 놀리는 바람에 이를 눈치챈 독일군들에 의해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많은 사상자가 생기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손가락은 각각 혹은 함께 사용될 때마다 저항, 축복, 숫자 등 제각기 다른 의미와 상징을 띤다. 인류학자들은 우리를 ‘상징의 동물’ 혹은 ‘상징의 인간’이란 뜻으로 ‘호모 심볼리쿠스(homo symbolicus)’라고도 부른다.

요즘 많은 한국인은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시민들의 저항을 지켜보면서 이를 자연스레 12·12 군사 쿠데타와 5·18에 투사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과잉 투사다.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던 아웅산 수지 여사는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의 인종 탄압을 외면하여 국제적 공분을 산 적도 있지 않은가. 미얀마 군부의 배후에는 중국이 있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도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잡다단한 성격을 띠는 미얀마 사태를 우리의 과거에 비추어 민주 대 독재, 민간 대 군부, 정의 대 불의의 이분법적인 단순 흑백논리로 바라보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폭력을 반대하고 인권을 존중하자는 뜻에서는 다들 한 마음인 것 같다. 세 손가락 경례의 상징에도 본능적으로 깊이 공감할 만큼 우리는 뿌리 깊은 호모 심볼리쿠스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