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가옥에서만 판매하는 특별 한정판인 색동 모티브의 익스클루시브 컬렉션.
구찌 가옥에서만 판매하는 특별 한정판인 색동 모티브의 익스클루시브 컬렉션.

럭셔리 브랜드란 무엇인가? 고상하고, 고급스러우며, 귀족적인 클래식함이 먼저 떠오른다면, 그건 어느새 40~50대가 되어버린 X 세대(1965~80년생)적 고정관념이다.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의 럭셔리는 다르게 정의된다. 고급스럽기보다는 ‘쿨(cool)’해야 하며, 클래식하기보다는 ‘힙(hip)’해야 한다.

그럼 ‘쿨’하고 ‘힙’한 럭셔리는 무엇일까? 현재의 구찌를 보면 된다. 5월 29일, 구찌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이태원에 구찌 국내 플래그십 스토어(브랜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매장) 2호점 ‘구찌 가옥’이 오픈했다. 이 스토어를 방문한 기성세대들은 혼돈에 빠졌을 것이다. 명품 매장은 40대 이상이 들어가는 것이 당당하며, 10~20대들은 혼자 들어가기보다는 부모를 따라 들어가는 것이 익숙하다.

그러나 ‘구찌 가옥’은 다르다. 기성세대들은 ‘자신의 나이대가 들어가도 되는 매장일까’라는 어색함을 느꼈을 것이고, 10~20대들은 ‘구찌 가옥’의 오픈 홍보 캠페인 문구처럼 ‘헬로 구찌’ 하며, 격렬하게 환영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10~20대들은 “쿨한데, 힙한걸, 내 ‘스탈’이야”라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매장 외관부터 내부 디자인, 매장에 전시된 제품까지, 모두 젊은 세대의 럭셔리 취향을 마스터한 최초의 명품 플래그십 스토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먼저 한국의 전통 주택을 의미하는 ‘가옥’을 플래그십 스토어의 이름으로 명명한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전 세계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구찌 베벌리힐스’ ‘샤넬 긴자’ ‘에르메스 매디슨’ 등 현지 지명이 붙여진다. 명품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에 ‘구찌 가옥’이란 고유명사를 부여한 것은 전 세계 최초다.

또한 오픈 전 온라인을 통한 티징 마케팅엔 한국 색동 문양 위로 구찌 GG 로고가 새겨진 기와와 한국 전통의 돼지머리 고사상 컨셉트를 사용했다. 구찌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에 맞춰 공개된 오픈 홍보 영상도 연일 화제가 됐다. 구찌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에 맞춰 공개된 오픈 홍보 영상은 연일 화제가 됐다. 현대무용 그룹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와 협업한 ‘헬로 구찌’ 홍보 영상에선 구찌 가옥 오픈에 맞춰 개사된 판소리 대중음악 그룹 ‘이날치 밴드’의 ‘여보 나리’가 신명 나게 울려 퍼진다. “이태리인지 이태원인지 어찌나 좋았던지 안광이 번쩍 생기가 탱천…”이란 재치 넘치는 가사에 대한 MZ 세대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드론을 사용해 원테이크로 촬영한 민속 예술 그룹 ‘연희 집단 The 광대’의 퍼포먼스에 대한 호응도 뜨겁다. 명품 매장 실내에 드론을 띄웠다는 것만 해도 신기한데, 북과 장구를 치고 상모를 돌리는 ‘연희 집단 The 광대’를 쫓아 드론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구찌 가옥’ 내부를 들여다보는 건, 상상 초월의 조합이다.

‘구찌 가옥’의 외관과 내부 디자인도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외부 디자인은 영화 ‘기생충’에 작품이 등장해 화제가 되었던 박승모 작가와 협업으로 완성됐는데,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을 형상화한 것이다. 상상의 숲에서 영감을 얻은 ‘환(幻)’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스테인리스 스틸 와이어의 중첩을 통해 인간의 의지 없이는 사라져 버릴 수 있는 환경의 소중함을 메시지로 담고 있다. 오직 ‘구찌 가옥’에서만 판매하는 익스클루시브 컬렉션(특별 한정판)은 색동을 모티브로 디자인됐다.

구찌가 10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이태원의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은 매장의 정식 이름이 공개되면서부터 화제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올드하다’는 이미지와 함께 젊은 세대에게 외면받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인 럭셔리 브랜드에 미래를 어떻게 바꿔가야 할지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좌) 매장 1층 화면에 구찌 가옥 고사상을 디지털로 재현해 놓았다. (우) 구찌 가옥 내부. 사진 구찌코리아
(좌) 매장 1층 화면에 구찌 가옥 고사상을 디지털로 재현해 놓았다. (우) 구찌 가옥 내부. 사진 구찌코리아

중후한 이미지 혁신한 파격 변신

구찌도 처음부터 ‘쿨’하고 ‘힙’한 럭셔리 브랜드는 아니었다. 여러 번의 위기를 맞았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미국계 디자이너 톰 포드가 낡은 구찌를 현대적이고 섹시한 브랜드로 부활시켰지만, 그가 은퇴한 후 11년간 구찌는 다시 침체기에 빠졌다. 그러나 2014년 말 컨설턴트 출신의 마르코 비자리가 최고경영자(CEO)로 온 지 5년 후, 구찌는 처음으로 샤넬 매출을 추월할 만큼 재기에 성공했다.

그 비결은 비자리의 안목이다. 비자리는 외부에서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대신 12년간 구찌 디자이너로 일해왔던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과감하게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미켈레는 당시 침체에 빠졌던 패션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꽃, 나비, 벌, 새 등을 이용한 현란한 컬러와 문양에 르네상스의 다양성과 풍부함, 또한 독특한 ‘긱 시크(세련되면서도 괴짜답고 독특한 매력의 패션 스타일)’와 미켈레만의 ‘맥시멀리즘(미니멀리즘에 반대되는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과장된 경향)’은 세계 패션 트렌드를 뒤흔들었다.

화려한 것들을 한곳에 섞어 신선한 새 디자인을 완성하는 미켈레의 디자인도 뛰어났지만, 구찌의 거침없고 모험적인 마케팅이 없었다면 MZ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구찌는 오래 지속하는 럭셔리 브랜드가 되기 위해 부모의 명품이 아닌 다음 세대의 명품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MZ 세대의 럭셔리가 되기 위해 광고, 디지털 마케팅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브랜드 리포지셔닝’에 들어갔다.

X 세대나 MZ 세대 모두 ‘플렉스(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뽐내고 과시하는 행위)’를 위해 명품을 소비한다. 그러나 ‘플렉스’를 위해 선택하는 기준이 다르다. MZ 세대는 ‘특이하고, 신선하고, 남다른’ 것, 그리고 ‘신나고 재미있는’ 경험을 ‘플렉스’하고 싶어 하는 ‘펀슈머(상품을 재미로 소비하는 사람)’다. 예를 들어 구찌는 부모님의 명품 같을 수 있는 GG 로고를 GUCCY, GUCCIFY 등으로 변형해 자기만의 언어구사법을 좋아하는 MZ 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미켈레의 괴짜적인 맥시멀리즘과 믹스 앤드 매치도 MZ 세대를 열광케 했다. 명품이지만 기성세대와 다르게 입고 세련되면서도 시대를 초월한 괴짜 같은 ‘긱 시크’가 MZ 세대가 원하는 럭셔리 패션이다.

체험 마케팅도 구찌 브랜드를 내세운 모바일 게임 ‘테니스 클래시’로 큰 인기를 끌었고, 가상현실(VR) 등을 기반으로 한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서비스 개발과 참여에도 구찌가 가장 적극적이다. 제페토에 ‘구찌 빌라’를 론칭하며 옷, 가방, 액세서리 제품 60여 종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재미있고 신나는 체험을 추구하는 MZ 세대뿐 아니라 그 이후 세대까지 준비하고 있다.

2020년 이후 구찌는 국내외의 브랜드 조사에서 ‘MZ 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로 샤넬, 루이비통, 프라다, 에르메스를 앞질러 왔다. 심지어 ‘It’s Gucci!’라는 말이 ‘멋지다, 괜찮다, 좋다’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로 등극했다. 무엇보다 이태원의 구찌 가옥은 지금 MZ 세대가 생각하는 럭셔리의 정점을 보여주며, 동시에 새로운 럭셔리 시대를 열어주는 게이트가 되고 있다. 자존심 높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의 100년 헤리티지, 수천 년 역사의 한국의 문화, K팝과 힙합 문화, 판소리와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성의 메시지를 담은 아트피스로서의 매장 디자인, 디지털 마케팅 등 수많은 시대와 상상 초월의 요소들이 혼합되어 조화를 이룬다. 그 혼란스러운 조화가 MZ 세대의 ‘뉴 럭셔리’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_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