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은 에비앙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10개를 잡아 10언더파 61타로 메이저 대회 한 라운드 최소타 타이 기록을 세웠다. 36홀 최소타 기록(127타)도 작성했다. 하지만 5타 차 선두로 나섰던 마지막 라운드에서 초크 현상에 시달리며 다 잡았던 우승컵을 놓쳤다. 사진 AFP연합
이정은은 에비앙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 10개를 잡아 10언더파 61타로 메이저 대회 한 라운드 최소타 타이 기록을 세웠다. 36홀 최소타 기록(127타)도 작성했다. 하지만 5타 차 선두로 나섰던 마지막 라운드에서 초크 현상에 시달리며 다 잡았던 우승컵을 놓쳤다. 사진 AFP연합

만약 이정은(25)에게 마지막 라운드에서 더도 말고 딱 1타만 줄이면 우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려줄 수 있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이 열리는 프랑스 에비앙 르뱅의 에비앙 골프리조트(파71)에는 아이언으로도 쉽게 투온이 가능한 마지막 18번 홀을 비롯해 타수를 줄이기 쉬운 파5홀이 4개나 있어 중압감이 큰 상황이라 하더라도 마음먹고 1타만 줄이겠다고 달려들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냈을 것 같다. 코스는 이정은과 리오나 매과이어(아일랜드)가 각각 2라운드와 4라운드에서 메이저 대회 한 라운드 최소타 기록인 10언더파 61타를 기록했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난도가 높지는 않았다.

7월 25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네 번째 메이저 대회인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총상금 450만달러)은 5타 차 선두로 마지막 라운드를 나섰던 이정은의 가슴 아픈 역전패로 막을 내렸다. 이날 타수를 줄이지 못한 이정은은 7타를 줄인 이민지(호주)에게 연장에서 패했다. 이정은에 앞서 LPGA 투어에서 5타 차 선두로 나섰던 경우 우승 확률은 84.5%였다. 그렇다고 이정은이 경험이 부족한 선수도 아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6승을 거두었고, 여자골프에서 가장 권위 있는 US여자오픈도 우승했다. LPGA도 “이정은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바칠 것이다. 그는 2년 만에 영어를 구사하며, 흐름을 놓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간다. 심지어 TV 인터뷰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그는 이미 고난을 경험했고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둘 다 극복한 선수다”라고 높게 평가하며 우승을 예상했었다.


전설적 지도자 페닉 “클럽 숫자나 상표에 집중하고 생각 없이 스윙하라”

전반 9홀에서 이정은이 흔들리는 모습은 심리적인 OB(아웃오브바운즈)가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3~5번 홀 3연속 보기와 8·9번 홀 연속 보기는 평소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실수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골프를 치는 모습이 불편해 보였다. 올해 백스윙을 교정하면서 샷을 하기 전 반복하는 프리샷 루틴이 평소보다 길었고, 퍼팅은 반복해서 오른쪽으로 살짝살짝 빗나갔다.

그는 전반에 잃은 4타를 후반에 만회했지만, 연장으로 끌려가 다 잡았던 우승컵을 이민지에게 내줬다. 2019년 US오픈 우승 이후 2년 1개월 만에 LPGA 두 번째 우승이 다가오자 부담 때문에 ‘초크(choke·목 졸림, 질식)’ 현상이 발생한 것처럼 보였다. 초크 현상은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선수가 목이 졸리는 것 같은 부담을 느끼며 수행 능력이 형편없이 떨어지는 현상으로, 전문가도 초보자 수준이 될 수 있다.

9번 홀(파5)에서 두 번째 샷을 그린 옆에 갖다 놓아 버디 기회를 만들고도 어프로치 실수와 3퍼트로 보기를 한 건 평소의 이정은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실수였다. 결국 우승을 놓치게 된 가장 뼈아픈 순간으로 꼽을 수 있다. 이정은은 경기 후 이렇게 돌아봤다. “전반에 워낙 샷과 퍼트가 안 돼서 보기가 많이 나왔던 것 같다. 충분히 실수하지 않을 수 있는 곳에서 실수를 많이 했다. 후반 들어 스윙 리듬이나 퍼팅 스트로크에 신경을 쓰면서 분위기를 잠시 바꿨다. 마지막 세 홀 버디를 만들어서 연장전에 간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연장에서 진 것도 아쉽지만, 한국 팬들에게 태극기 내려오는 걸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그게 좀 아쉽다.”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던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했던 것일까? 이정은은 3라운드를 마치고 “US 여자오픈 우승 때는 뒤에서 쫓아가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에는 선두여서 조금 떨릴 것 같다. 두 번째 우승을 굉장히 기다리고 있다. 오늘과 같이 경기할 것이다. 내 백스윙과 리듬, 또한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정은은 마지막 라운드에 심리적인 OB를 내면서 무너졌다.

자신감과 전략이 부족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한덕현 중앙대 의대(스포츠정신건강의학) 교수는 “5타 차 선두를 어떻게 4라운드에서 활용할 것인가, 전략을 세우고 구체적인 경기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 가정했던 것처럼 매홀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가 아니라 우승하기 위해 필요한 스코어에 맞춘 보다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해야 했다는 이야기다. 이정은은 한 번 경기가 풀리지 않자 자신의 경기력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얼굴에 불안감을 드러내고 스윙 동작에 치중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진 것.

미국의 하비 페닉(1904~95)은 바이런 넬슨과 톰 카이트, 벤 크렌쇼, 캐시 위트워스 등 레전드들을 지도한 전설적인 지도자다. 그는 제자들에게 경기 중 클럽에 붙어 있는 한 숫자, 글자, 혹은 상표에 집중하고 생각 없이 스윙하라고 주문했었다. 이렇게 하면서 생각 없이 경기에 집중하게 되고, 자신의 행동을 분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스포츠심리학자인 밥 로텔라 박사도 저서 ‘골프, 자신감의 게임(Golf is a Game of Confidence)’에서 골프는 결국 마음의 게임이고, 자신을 믿고 머리를 써서 해야 하는 운동이라고 설파했다.


쭈타누깐 정상급 골퍼 만든 ‘미소 루틴’

‘태국의 박세리’라 불리는 에리야 쭈타누깐(26)이 ‘미소 루틴’으로 심리적 불안을 극복하고 정상급 골퍼가 된 것도 참고할 만하다. 쭈타누깐은 2016년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마지막 3개 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며 우승컵을 리디아 고에게 헌납한 적이 있다. 그에 앞서 2013년 초청 선수로 출전한 혼다 타일랜드 때는 2타 앞서다 18번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범해 박인비에게 우승컵을 내줬다. 골프 여제 안니카 소렌스탐의 스승인 스웨덴 출신의 피아 닐슨과 린 메리어트는 쭈타누깐에게 미소 루틴을 권했다. 쭈타누깐은 2016년부터 약 3년간 샷을 하기 전 입가를 말아 올리며 웃는 미소 루틴으로 역전패의 상처를 씻었다.

김인경(33)은 2012년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현재 ANA 인스퍼레이션)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30㎝ 파 퍼트를 놓치고 연장에 끌려가 패한 뒤로 ‘비운의 골퍼’란 꼬리표가 따라다녔지만, 이겨냈다. 김인경은 자신의 방식으로 깊은 상처를 치유했다. 여가에는 기타와 피아노를 즐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랜드캐니언이나 발리, 국내 사찰 등지로 명상 여행을 떠난다. 김인경은 “명상을 하고 눈을 뜨면 놀라운 세상이 펼쳐진다”고 했다.

한 교수는 “스윙이나 우승에 대한 아무런 생각 없이 경기할 때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떠오르는 생각을 안 하게 만들 방법이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생각을 바꿀 수 있고, 많은 생각의 양을 줄일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이 후반에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자신의 리듬과 실력을 회복한 경험은 앞으로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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