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올림픽 선수 단복. 사진 코오롱 FnC 캠브리지 멤버스
한국의 올림픽 선수 단복. 사진 코오롱 FnC 캠브리지 멤버스

올림픽 개막식은 세계 최대의 패션쇼와 같다. 세계 주요 컬렉션만큼 주목받고 이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도쿄올림픽 개막식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난관 속,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무관중으로 개최됐다. 그럼에도 103번째로 입장한 한국 선수들의 비취색 단복은 검은색, 남색, 흰색이 주를 이루는 단복 퍼레이드 속에서 빛을 발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단 ‘팀코리아’의 도쿄올림픽 개막식 단복은 코오롱 FnC 캠브리지 멤버스에서 디자인했다. 개막식 퍼레이드에서 단연 눈에 뜨인 단복의 비색(엷은 청색)은 고려청자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안감에는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를 모티브로 한 문양을 넣어 우리 민족의 기상을 담아냈고, 소매에는 태극의 붉은색과 푸른색 자수가 담겼다. 하얀 팬츠는 조선백자의 순백색을 담은 것이고, 남성 선수의 스트라이프 타이와 여성 선수의 프티 스카프(petit scarf·작은 스카프)는 태극 색깔을 표현했다. 시상용 단복, 트레이닝 단복과 신발, 모자, 백팩 및 여행 가방 등 총 17개 품목으로 구성됐고, 모두 일본의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쾌적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땀과 수분을 잘 흡수하고 빠르게 건조되는 기능성 원단이 사용됐다.

노스페이스가 제작한 트레이닝 단복은 ‘지속 가능성’ 정신을 담아 제작됐다. 제주에서 수거한 100t의 플라스틱병 등을 재활용한 노스페이스의 ‘K-에코 테크’를 통해 완성한 고기능 친환경 옷이다. 아울러 총 13개 품목에 재활용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 원단 등이 사용됐다.


호불호 갈린 각국 올림픽 선수 단복

이처럼 올림픽 공식 단복은 자국을 대표하는 역사, 문화, 전통, 정신, 철학을 함축적으로 담는다. 이번 올림픽에서 크게 인기를 얻은 개막식 단복은 미국 선수 단복이다. 가장 미국적인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랠프 로런이 디자인했다. 성조기의 남색, 흰색, 붉은색을 조화시켰는데, 올림픽 단복을 ‘쿨(cool)’하게 뒤바꿨다는 호평을 받았다. 랠프 로런은 일반적인 재킷과 셔츠, 타이의 착장 규칙을 벗어나, 남색 재킷, 스트라이프 티셔츠, 청바지 그리고 남녀 구분 없이 성조기 프린트의 프티 스카프 착장을 선보였다. 성조기의 삼색을 담은 스트라이프 벨트도 전체 스타일에 세련된 포인트가 됐다. 랠프 로런의 올림픽 단복은 일상에서도 근사한 캐주얼 슈트룩으로 주목받았다.

그에 비해 허드슨 베이가 디자인한 캐나다 선수의 개막식 단복은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그라피티(graffiti·낙서 같은 벽화) 문양의 청재킷을 단복으로 사용한 것은 거리 예술과 패션으로 유명한 도쿄에 영감받아 젊음과 기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허드슨 베이 홈페이지에는 ‘개성 있다’는 반응과 함께 ‘최악이다’라는 반응이 동시에 올라와 있다.

이탈리아 국민 디자이너 조르조 아르마니가 작업한 이탈리아 선수의 개막식 단복은 공개 이후 계속 혹평 세례를 받고 있다. 아르마니는 이탈리아 국기를 일본 일장기의 원형 모양으로 디자인해 넣었는데, 두 나라의 화합이라는 의미를 담았지만 비디오 게임 ‘팩맨’ 캐릭터를 연상시킨다는 악평을 받았다.

헝가리 단복은 아예 기모노 스타일로 디자인됐다. 기모노 단복을 디자인한 헝가리 패션 브랜드 누부(Nubu)는 헝가리 국기의 붉은색, 흰색 녹색의 삼색을 헝가리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브러시 질감의 문양으로 담고 헝가리 국기가 휘날리는 느낌을 기모노 느낌에 조화시켰다고 설명한다.

중국 단복도 역시 호불호가 갈린다. 영화 ‘와호장룡’의 미술을 담당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팀 입(Tim Yip·중국명 葉錦添)이 디자인했는데, 중국 국기의 붉은색을 중심으로, 여성 선수의 단복 드레스 밑단에 명나라 시대에서 영감받은 양귀비를, 남성 선수의 셔츠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의 오성 문양을 담았다. 매년 자국민으로부터 혹평받았던 이전 단복에 비해 중국의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이 담겼다는 호평이 나왔다.

개최국인 일본의 단복은 자국 스포츠 브랜드 아식스와 정장 브랜드 아오키가 제작했다. 아식스는 일장기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선 라이즈 레드’를 메인 색으로 삼아 일본 전통문화를 표현하는 그래픽 문양을 넣었다.


1. 미국의 올림픽 선수 단복. 사진 랠프 로런 인스타그램2. 캐나다의 올림픽 선수 단복. 사진 허드슨 베이 3. 이탈리아의 올림픽 선수 단복. 사진 아르마니4. 헝가리의 올림픽 선수 단복. 사진 누부
1. 미국의 올림픽 선수 단복. 사진 랠프 로런 인스타그램
2. 캐나다의 올림픽 선수 단복. 사진 허드슨 베이
3. 이탈리아의 올림픽 선수 단복. 사진 아르마니
4. 헝가리의 올림픽 선수 단복. 사진 누부

각국 대표 브랜드·디자이너가 작업

올림픽 단복은 각 나라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담아야 한다. 그러므로 통상 각국을 대표하는 국민 브랜드나 디자이너가 책임진다. 해당 국가에 대한 뿌리 깊은 이해 없이는 좋은 디자인이 창작되기 어렵다.

그래서 올림픽 때마다 대표 선수 단복 패션이란 종목이 소리 없는 자존심 경쟁을 펼친다. 한국 대표팀의 올림픽 단복 역사도 한국 패션사와 같다. 1936년 처음 독일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했을 때는 태극 문양을 단 단복조차 입을 수 없는 일제 강점기였다.

현재와 유사한 정장 스타일의 단복은 1960년대 말에 처음 제작됐다. 이전까지는 백의민족의 상징인 흰색 하의를 맞춰 입고 가는 정도였다.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 때는 금메달을 소원하는 노란색 단복을 입기도 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올림픽 때는 역시 금메달의 염원을 담은 붉은색 바탕에 황금빛 노란색이 배합된 단복을 입었다. 당시 레슬링 국가대표 양정모가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태극 문양이 사용된 건 1980년대부터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하늘색 상의와 흰색 하의에 태극선 소품이 사용됐다. 그 후로 하늘색, 남색, 흰색, 태극 문양 등이 대한민국의 상징이 됐다.

올림픽의 역사와 함께 각국 대표 선수의 단복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개막식과 폐막식에 입는 단복도 정장 스타일을 벗어나 자유로워졌고, 기능성 소재 역시 점점 첨단화돼가고 있어, 각국이 최신 기술력을 경쟁하고 있다. 최근엔 기능성뿐 아니라 전 세계의 공통 화두인 친환경과 지속 가능성 소재와 제작 방식을 담는 것이 중요한 테마가 됐다.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다음 번 올림픽에서 올림픽의 참뜻이 빛나는 더욱 화려한 패션 축제를 기대해본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 노트(K_note)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