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그스테이크. 사진 조선일보 DB
햄버그스테이크. 사진 조선일보 DB

경양식(輕洋食)은 ‘가벼운 양식’이라는 뜻이다.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로 출발해 본 요리인 메인 코스에서 정점을 찍고 후식인 디저트로 식사를 마무리하는 정통 서양 코스요리를 일품요리 중심으로 간소화한 한국식 서양요리를 말한다.

경양식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크다. 일본에서 ‘요쇼쿠(洋食)’ 또는 ‘와요쇼쿠(和洋食)’라고 부르는 일본풍 양식이 일제강점기에 전해졌다. 해방 이후 한국식으로 변형 발전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먹는 경양식이 됐다. 쌈장과 풋고추, 김치가 딸려 나오는 기사식당 왕돈가스가 한국화한 경양식의 전형이랄 수 있다.

경양식집은 1980년대 전성기를 맞는다. ‘칼질 좀 한다’는 고급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먹었다는 뜻으로 여전히 사용되는데, 1980년대 경양식집에서 모처럼 가족 외식을 하거나 청춘 남녀가 데이트하면서 생겨난 표현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경양식집은 고급 레스토랑으로 여겨졌고, 과소비의 진원지로 기사화되기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양식은 분식집에서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음식으로 가격과 이미지가 떨어진다. 경양식집은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걸었다.

쇠락해가던 경양식은 2020년대 들어 재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최근 레트로(retro·복고) 내지는 뉴트로(newtro·새로운 복고)의 영향으로 경양식이 유행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경양식’을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물만 5만7000여 개, ‘#경양식돈가스’를 검색하면 4만2000여 개일 정도. 10~20대는 새롭고 낯설어서 열광하고, 40~50대는 반갑고 그리워서 다시 찾는다.

서울 충무로 ‘그릴데미그라스’는 경양식의 재기를 이끄는 식당이다. 지난 2012년 경복궁 인근인 팔판동에 처음 문 열었다가 최근 지금의 오리엔스호텔 지하로 옮겼다. 팔판동에 문 열 때부터 따지면 9년이니 풋내기는 아니지만, 쉰 살 넘은 노포(老鋪)가 수두룩한 경양식계에선 팔팔한 젊은이다. 식당 분위기와 음식에서 이 젊음이 느껴진다. 고급스럽다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평균적인 경양식집과 비교하면 세련되고 현대적이고 깔끔하다.


새우튀김. 사진 조선일보 DB
새우튀김. 사진 조선일보 DB
‘그릴데미그라스’의 비프커틀릿. 소고기 안심을 사용해 부드럽다. 사진 조선일보 DB
‘그릴데미그라스’의 비프커틀릿. 소고기 안심을 사용해 부드럽다. 사진 조선일보 DB

단출하지만 정석적인 경양식의 맛

메뉴는 1장에 모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단출하다. 함박스테이크(햄버그스테이크)와 비후까스(비프커틀릿), 새우후라이(새우튀김), 그라탕, 채끝스테이크가 전부. 경양식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음식 중 하나인 오므라이스는 아예 없다. 김재우 오너셰프는 “주방 인력이 주방장과 저 둘밖에 없어서 오므라이스까지 하기 힘들다”며 “한가한 날 손님이 원하면 해드리지만, 메뉴판에 있으면 ‘있는데 왜 안 해 주냐’고 할까 봐 넣지 않았다”며 웃었다. 돈가스도 없다. 김 셰프는 “돈가스는 많이들 파니 비프커틀릿만 팔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햄버그스테이크와 비프커틀릿, 새우튀김을 주문했다. 잠시 뒤 종업원이 동그란 접시를 들고나왔다. 크림수프가 담겼을 거란 예상과 달리 오목한 접시 중앙엔 감자·달걀 샐러드가, 접시 테두리에는 동그란 롤빵이 손님 숫자에 맞춰 놓여 있었다. 표준 표기는 샐러드지만 ‘사라다’라고 해야 정확하게 감이 올 듯하다. 잘게 다진 감자와 달걀을 각각 마요네즈에 버무렸다. 부드러운 롤빵을 갈라 버터나 잼처럼 발라 먹는다. 샐러드는 마요네즈가 과하지 않고 적절해 느끼하지 않으면서 고소했다. 크림수프 대신 나오는 롤빵과 샐러드처럼 이 식당의 음식은 일반적인 경양식집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일본의 요쇼쿠도 아니다. 한국식과 일본식의 경계에 있다고나 할까. 김 셰프는 “직장을 그만두고 경양식집을 열기로 마음먹고 일본에 가서 경양식을 많이 먹으며 공부했다”고 했다. 그가 오랫동안 먹어온 한국 경양식에 일본에서 배운 요쇼쿠가 더해지면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그만의 경양식을 만들어냈다.

롤빵을 다 먹었을 때쯤 햄버그스테이크와 비프커틀릿, 새우튀김이 나왔다. 달걀프라이 곱게 올린 두툼한 햄버그스테이크를 나이프로 가르자 노른자가 스르르 흘러내리며 접시에 깔린 짙은 갈색 데미글라스(demi-glace) 소스와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햄버그스테이크를 데미글라스와 노른자에 찍어 입에 넣었다. 부드러우면서 입안이 흥건해질 만큼 육즙이 풍부했다. 햄버그스테이크는 소고기·돼지고기·빵가루 등을 섞어 빚는데, 소고기 비율이 다른 경양식집보다 높은 듯했다. 음식 가격이 다른 경양식집에 비해 비싼 편이나, 더 좋은 식재료를 쓰기 때문인 듯하다. 김 셰프는 “소·돼지·닭고기 모두 국산 냉장만 쓴다”며 “냉동·외국산은 새우튀김에 들어가는 새우뿐”이라고 했다.

비프커틀릿은 얇고 손바닥만 한 소고기 튀김 2장이었다. 돈가스나 비프커틀릿이 일반적으로 커다랗게 한 장으로 나오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가격이 비싸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에나 사용하는 국산 안심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입 크기로 썰어서 별도 그릇에 담겨 나온 소스를 찍어 입에 넣었다. 소고기를 튀기면 질기기 십상인데, 안심이라 그런지 야들야들 부드러웠다. 유일하게 냉동을 쓴다는 새우튀김도 바삭한 튀김옷 속 탱탱한 식감이 훌륭했다.

원두커피를 공짜로 주기는 하지만, 식사를 마무리할 달콤한 디저트류가 없다는 점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릴데미그라스(Grill Demiglace)

분위기 경양식집처럼 낡고 어둡고 노후하진 않지만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처럼 부담스럽지도 않다. 친구·가족·직장 동료·애인 등 누구와 친목·회식·데이트 등 어떤 목적으로건 와서 먹을 수 있을 듯하다.

서비스 체계적이고 물 흐르는 듯한 서비스는 아니나, 부담 없이 편안하다. 단골들은 “인당 얼마에 맞춰서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추천 메뉴 함박스테이크 2만원, 비후까스 2만6000원, 새우후라이 2만원

음료 경양식집치고 특이하게 소주를 판다. 와인이나 맥주도 물론 갖추고 있으나 음료·주류 리스트가 방대하거나 체계적이진 않다.

영업시간 점심 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30분, 저녁 오후 6~10시. 월요일 휴무

예약 권장

주차 호텔 주차장 이용 가능

휠체어 접근성 다소 불편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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