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단체전에서 우승해 금메달을 목에 건 안산(20·왼쪽)과 김제덕(17). 사진 연합뉴스
7월 24일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단체전에서 우승해 금메달을 목에 건 안산(20·왼쪽)과 김제덕(17). 사진 연합뉴스

올림픽을 볼 때 한국 선수들의 활약에만 집중하던 때가 있었다. 누구나 그랬고, 그럴 것이다. 나이가 드니 시야가 넓어졌다. 성적과 상관없이 초인(超人)들을 보는 재미가 생겼다. 한계를 뛰어넘는 육체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쌓아 올린 시간을 읽는다. 무엇보다 ‘노(NO) 메달’에 그쳐도 스스로 최선을 다한 자만이 보일 수 있는 웃음이 멋지다.

또 하나 놀랄 때가 있다. 몇몇 개 나라를 빼면, 대부분의 선수가 따로 직업이 있다는 것. 프로 선수나 대기업 스폰서를 받는 스타 선수가 아닌 한 본업이 있고, 자아실현을 위해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보면 한국을 비롯, 엘리트 스포츠 정책을 채택하는 나라와 차이점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선수 개인의 플레이에 찬사를 보내는 분위기와 ‘국위 선양’의 이데올로기가 가진 차이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생각은 음악 시스템과 유사성으로 이어진다.

필자는 레드벨벳의 슬기와 함께 ‘슬기로운 음악대백과’라는 유튜브 음악 콘텐츠를 진행한다. 얼마 전 업로드된 콘텐츠에는 이날치가 게스트로 나왔다. 권송희, 이나래, 신유진, 안이호. 이 밴드의 네 소리꾼은 어릴 때부터 국악인의 길을 걸었다. 빠르면 중학교, 늦어도 고등학교 때 국악 엘리트 코스에 들어섰다. 10대 초중반, 보통 사람이면 장래 희망은커녕 가고 싶은 학과도 막연할 때 인생을 거는 선택을 했다. 그런 이날치가 앞에 있었다. 옆에 있는 슬기 또한 10대 초중반부터 SM에서 연습생으로 트레이닝받기 시작했다. 둘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꿈을 정하고 10대를 바쳤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이날치의 소리꾼들은 국악 학교라는 정규 교육 울타리에서 기량을 키운 반면, 슬기는 SM이라고 하는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어 데뷔의 꿈을 꿨다는 점에서 다르다.

근대 교육은 예술 엘리트 교육을 만들어냈다. 어릴 때부터 명인에게 레슨받고, 관련 학교에 진학한다. 유수의 클래식 콩쿠르에서 수상하는 청년들이 대부분 그런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현대의 대중예술에는 그런 ‘영재 코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에 관련 학과가 있다는 점은 같지만 10대에는 모두 취미의 영역에 머문다. 친구들끼리 밴드를 결성해서 동네에서 활동하는 전통적인 방법이 있었고, 지금은 유튜브에 자신의 연주 및 노래 영상을 올리며 소셜미디어(SNS) 스타를 기대한다. 20세기 초반 팝이 탄생한 이후, 큰 흐름에서 달라진 적이 없다.

예외가 있다면 가족 단위에서 이뤄진 훈육일 것이다. 마이클 잭슨을 배출한 잭슨 파이브가 대표적이다. 부업 뮤지션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자식들을 모아 음악 활동을 시키면서 시작해 마이클 잭슨과 재닛 잭슨 등 자식들을 스타로 키워낸 사례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다운타운에서 노래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발탁, 정식으로 데뷔하던 시대가 있었다. 조용필, 김현식 같은 가수들이 그렇게 스타가 됐다. 이모의 손에 의해 어릴 때부터 온갖 트레이닝을 받은 후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오른 김완선이 있다. 대중음악 산업은 곧 스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지만 이 시스템 바깥에서는 개인의 재능, 또는 가족 단위의 훈육에 의존해 왔다.


2015년 데뷔한 JYP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트와이스’. 이들은 1996~99년생으로, 10대 후반~20대 초반일 때 데뷔했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2015년 데뷔한 JYP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트와이스’. 이들은 1996~99년생으로, 10대 후반~20대 초반일 때 데뷔했다.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하지만 1990년대 중반,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이 등장했다. 기획사의 콘셉트와 트레이닝 시스템에 의해 스타를 만드는 이 시도는 H.O.T.를 탄생시켰고 한국의 10대 문화를 일거에 바꿔 놓았다. 물론, 이런 시스템은 미국과 일본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한국 음악 시장이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산업계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아예 초등학교 때부터 트레이닝받게 하는 것. 이 시도의 첫 성공 사례는 보아였다. 초등학교 때 SM에 캐스팅된 보아는 10대 중반의 나이에 데뷔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한국 대중음악계의 오랜 염원이던 일본에 진출해서 성공을 거뒀다. 보아의 사례 이후 스타를 꿈꾸는 어린아이들이 기획사의 문을 두드렸고, 더 빨리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기획사에나 중고등 학생 연습생들이 땀을 흘린다. 정식으로 연습생 계약을 맺으면 학교 수업도 어느 정도 열외가 된다(보통 아이돌 지망생들은 예술고에 진학한다). 오직 데뷔를 위해 모든 걸 바친다.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은가? 한국의 체육 시스템과 같다. 재능 있는 체육 유망주가 국가 대표 상비군으로 뽑히면 선수촌에 입소해서 온종일 체육 훈련을 받고, 프로 리그가 없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은 실업팀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스포츠팀에서 체육 엘리트로 활동하는 것 말이다.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게 곧 국위 선양이며 대중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이라 믿었던 정책에서 나온 시스템이다. 이런 엘리트 체육 정책이 국제 대회에서의 성과로 이어졌듯, 같은 길을 따라온 아이돌 시스템 또한 한국을 넘어 세계로 진출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를 시작으로, 일본을 거쳐 유럽, 그리고 이제는 대중음악 시장의 에베레스트인 미국에서도 정상에 올랐으니 말이다. ‘강남 스타일’ 이후 단 10년도 걸리지 않은 파격적 속도다. 이는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대단한 일이지만 그 성과의 이면에는 ‘성적’에 집중하는 우리의 무의식이 있다.

지금이야 국가 대표가 메달을 따지 못해도 스스로 최선을 다했노라 웃고, 손뼉쳐주지만 메달을 못 딴 선수들이 죄인인 양 침통해하던 모습이 그리 오래된 풍경이 아니다. ‘강남 스타일’이 빌보드 핫100 2위까지 올랐을 때도, 언론에서는 차트가 발표되는 매주 화요일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BTS가 파죽지세를 이어 가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BTS 성공 신화에는 지금껏 빌보드에서 보지 못했던, 미국 시장에 존재하지 않았던 무엇이 있다. 팬덤의 스트리밍 ‘총공(격)’이다. 스트리밍 시대가 일찍부터 시작됐던 한국의 팬덤 문화에서 비롯된 이 새로운 팬덤 문화가 세계 팬덤으로 퍼져나가며 같은 형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즉, ‘음악이 좋아서 음반을 산다’는 전통적 개념이 끝나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기록을 위해 팬덤이 뭉친다’는 집단 사고가 세계 K팝 팬덤의 덕목이 됐다는 얘기다.

이는 비난할 일은 아니다. 단지 음악 시장의 소비자가 달라졌다는 것이며, 음악을 포함한 콘텐츠 산업이 생존과 성장을 위해 지향할 모델이 등장했다는 얘기다. K팝과 K팬덤이 그리고 있는 음악 산업의 새 지형도는 저개발, 압축 성장, 선택과 집중이 만들어낸 K무의식의 발로일지도 모르겠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 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기획 및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