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인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독일 베를린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인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베를린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 앉아 있다. 벌써 한 6년 반 만인가. 필자가 살고 있는 함부르크에서 베를린까지 기차로 불과 한 시간 반 남짓 걸리지만 지난 수년간 한 번도 이곳에 가지 못했다. 아니, 못 했다는 표현보다는 안 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20대 초반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수학하는 기간 내내 솔직히 이 도시에 별로 정감이 가지 않았다. 유럽 하면 알프스산의 하이디가 뛰놀고 멋들어진 고성과 고즈넉한 구도시의 앙증맞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동화 같은 모습을 떠올렸던 터라, 공업 단지처럼 멋들어진 건물을 찾기 힘든 회색 빛의 베를린은 필자에게 있어 좀처럼 유럽다운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 없는 도시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거를 수 없는 중요한 일정이 있어서 기차에 몸을 실었다. 손에 쥔 따뜻한 커피가 미지근해질 쯤 기차는 어느덧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역사 밖으로 나가서 보니 베를린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칼에 손을 베일 것 같은 차갑고 날카로운 직선의 건물들, 세계대전 후 후손들에게 참상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복구하지 않은 참혹해 보이는 유적지, 또 전후 급증하는 거주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급하게 쌓아올린 듯한 건조한 느낌의 건물들까지.

하지만 필자의 마음에는 전과 다른 기운이 스며들었다. 마음을 무겁고 답답하게 하던 예전의 우울한 느낌과는 확연히 다른 다이내믹한 활발한 에너지가 마음을 활기차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사실 필자는 이번 짧은 방문 기간에 음악 단체가 아니라 몇몇 현대 미술 갤러리와의 일정을 위해 이곳에 왔다. 필자가 함부르크에서 계획하는 예술 프로젝트에 음악과 현대 미술의 협업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피아니스트, 하프시코디스트로서 바흐, 모차르트, 쇼팽 등 지난 세기의 음악들을 주로 연주하는 것에 익숙해서일까. 미술 전시를 둘러볼 때도 주로 언급한 작곡가들이 살았던 바로크부터 프랑스 인상주의를 선호했다. 그리고 기껏해야 20세기 중반 추상회화 정도가 친숙했다.

하지만 이번에 베를린의 여러 현대 미술 갤러리를 방문해 우리 시대의 여러 이슈거리가 직접 노출된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표현 방식이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문제들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필자의 눈에는 풍자를 넘어 직접적으로 그것도 꽤나 선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비쳤다. 그래서 그런지 종종 마음의 불편함을 넘어 때로는 불쾌하고 더 나아가 역겹다고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람 당시 느꼈던 역겨움과 불편함, 불쾌함은 어느새 감사함으로 마음에 솟아났다. 작품이 나 스스로를 인간의 본능과 욕망에 정면으로 마주하게 도와주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전위(前衛)적인 표현이 가득한 이런 예술 작품 창작을 위해 마음껏 상상하고 표현하고 또 받아들이는 현지 사회의 분위기도 느껴졌다. 예술이란 각 나라 및 지역의 역사적, 정서적, 환경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하기에 우열을 가릴 수 없고, 상대적인 것이다. 이쯤 되니 음악을 업(業)으로 삼는 한 사람으로서 현재 미술 사조와 더불어 어떠한 음악이 이 도시에 전개되고 있는지 살피게 됐다.

베를린에는 걸출한 작곡가가 많지만, 필자의 머릿속엔 한국 출신인 두 작곡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먼저 윤이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의 작품은 현재 한국에서도 많이 연주되고 있지만, 사실 한국보다 이곳 독일 및 유럽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고 더 자주 연주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끄럽지만 필자도 윤이상 작곡가의 작품을 오스트리아로 유학 와서 유럽인 친구의 연주를 통해 알게 됐다.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에서 태어난 작곡가 윤이상은 베를린에서 삶을 마감했다. 죄르지 리게티, 한스 베르너 헨체, 하인츠 홀리거, 카를 하인츠 슈톡하우젠 등 이름만 들어도 몸에 전율이 돋는 세계 최고의 작곡가 및 연주자들과 교류하면서 유럽 음악계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그는 서양의 최신 작곡 기법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문화 및 음악 소재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동서양의 음악적 조화를 시도했다. 그의 작품을 공부할 당시, 낯선 유럽의 풍경과 고즈넉한 한국의 기와집이 한 번에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국적이면서도 정겨운 느낌이 인상적이다. 현재 베를린에는 윤이상협회가 있으며 그가 살던 집은 그대로 보존되어 그의 음악을 연구하고 연주하며 기리는 기념관이 되었다.

또 한 명의 한국 출신 작곡가는 ‘진은숙’이다.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난 진은숙은 형편이 여의치 않아 교향곡 악보를 베끼면서 공부를 시작해 세계적인 작곡가가 됐다. 2004년 세계 최고 권위의 현대 음악 작곡상인 그라베마이어상 수상, 2005년 아널드 쇤베르크 작곡상 수상, 2007년 하이델베르크 예술상 수상의 경력이 있는, ‘세계 작곡계를 이끌 차세대 5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작곡가다. 그의 작품들도 전 세계 음악 페스티벌과 콘서트 무대에서 자주 연주된다.

필자는 독일에서 그녀의 삶과 작품을 직간접적으로 접할 일이 몇 번 있었다. 독일 국영방송에서는 진은숙의 삶과 음악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으며, 재작년 함부르크시는 최고의 작곡가에게 수여하는 바흐상 수상 기념 연주회에서 바흐상 수상자로 진은숙을 임명했다. 파울 힌데미트, 피에르 불레즈등 전설적인 작곡가들과 함께 이름을 올린 것이다. 필자는 당시 기념 연주에 초대받아 그녀의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었다. 현대미, 조형미 등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느낀 것은 물론이고, 이국 땅에서 같은 고국 출신의 예술가의 숨결이 담긴 작품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고 또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다시 고개를 들어 베를린을 둘러본다. 무채색의 건물은 그대로이지만, 그 무채색 건물을 뒤로하고 여러 국적·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예술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조하는 것이 눈에 띈다. 어느 거리든 활기가 넘치고 다음 세기에 펼쳐질 유럽을 그리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독일인이 ‘베를린은 베를린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베를린은 과거의 유럽을 보여 주는 곳이 아니라, 미래의 유럽을 보여 주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윤이상
‘솔로 오보에를 위한 피리’
연주 하인츠 홀리거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오보에는 서양의 피리라고 할 수 있겠다. ‘피리’라는 단어가 시사하는 것처럼 동양과 서양음악의 조화미를 엿볼 수 있다. 한국 전통 피리 주법이 느껴진다. 한 음이 길게 지속되는 동안 그 음이 미세하게 떨리고 아래위로 움직인다. 다이내믹한 변화 등을 통해 소리 존재 자체에 생명력을 부여하려는 윤이상의 의도가 엿보인다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