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상징과도 같은 폰테 베키오 다리. 사진 안종도
피렌체의 상징과도 같은 폰테 베키오 다리. 사진 안종도

8월 28일(현지시각), 꼭 보고 싶었던 오페라 공연이 있어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 열체크를 하고, 백신 접종 또는 음성 검사 확인서를 일일이 확인하니 마치 공연장이 아닌 기밀 보호 구역에 들어가는 듯한 긴장감도 느껴졌다.

공연장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분주해졌다. 오페라는 보통 일반 콘서트보다 연주 시간이 길어서 공연 시작 전 할 일이 많다. 물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공연 내용도 한 번 살펴야 한다.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다가 이 공간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바로 필자라는 것을 문득 느꼈다. 주변을 둘러보니 관객들 모두 하나같이 편안한 표정과 몸짓에 마치 집 마당 앞에 나온 듯 자연스럽게 보였다.

공연장 좌석을 향해 걸어가며 오늘의 오페라 공연을 위해 설치된 무대장치를 보고 갑자기 대학 때 치렀던 음악사 시험의 한 문제가 문득 떠올랐다. ‘첫 오페라의 탄생 시기와 작품 제목 그리고 그 작품이 탄생한 도시를 말하시오.’ 답은 자코포 페리가 1587년 작곡한 오페라 ‘다프네’, 이탈리아 피렌체였다.

그렇다. 필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오페라 극장에 왔다. 세계에서 오페라가 가장 처음 시작된 도시의 오페라 극장이라, 오랜 전통이 느껴지는 듯했다. 필자가 느낀 관객들의 익숙함과 편안함도 400여 년이 훌쩍 넘는 전통에서 나온 것일까.

피렌체는 오페라가 탄생했을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가 시작하고 꽃피운 도시로도 유명하다. 14세기 피렌체에서는 1000년 가까이 이어진 중세 시대가 마감하고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종교가 인간의 거의 모든 삶을 규정하던 시기에서 삶의 중심이 인간에게로 돌아가는 시대로 변화한 것이다. 피렌체의 르네상스인도 신으로 정의된 세계를 점차 인간의 시선으로 옮겨 놓았다.

르네상스는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부활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삼고 이를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 내려고 했다. 범위도 사상·문학·미술·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회화에서는 원근법이 등장했고 음악 또한 신뿐만 아니라 이것을 듣는 인간도 즐거워할 만한 세속 음악들도 발전해 갔다. 단테 알기에리는 이탈리아어로 쓰인 첫 대작인 ‘신곡’을 발표하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즉 오페라 장르가 탄생할 수 있는 모든 토양이 갖춰졌던 셈이다.

1500년대 후반 피렌체 바르디 후작의 저택에는 음악가, 시인, 학자, 예술 애호가들이 찾아가 토론을 즐겼다. ‘플로렌틴 카메라타’라고 불렸던 이 모임에는 천문학자 갈릴레이의 아버지인 빈첸초 갈릴레이, 우리에게 ‘아베 마리아’로 유명한 줄리오 카치니, 작곡가 자코포 페리, 시인 오타비오 리누치니 등이 참석했다.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고대 그리스의 드라마를 현대 시대에 재현하냐는 것이었다.


자코포 페리 초상화. 사진 위키미디어
자코포 페리 초상화. 사진 위키미디어

그들은 가사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게 고안된 멜로디에 악기의 반주를 덧붙이는 형식(아리아)과 가사를 여러 악센트와 리듬을 통해 의미를 극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형식(레치타티보)을 고안했다. 이들의 고민은 바로 오페라 탄생의 첫 걸음이 됐다. 자코포 페리는 1587년 전 세계 첫 번째 오페라인 ‘다프네’를 작곡할 수 있었다. 리누치니는 다프네의 리브레토(대본)를 맡았다.

이 작품 이후 오페라는 급속하게 인기를 얻고 작품의 수, 작품이 상영되는 도시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그리고 다음 세기까지 유럽 전역의 궁정에는 오페라 극장이 앞다투어 세워졌고 더 나아가 이탈리아 베니스, 독일 함부르크 같은 도시에는 귀족뿐만 아니라 시민 계급을 위한 오페라 극장까지 출연하게 된다. 이후 우리 현대 사회에는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오페라 극장이 지어지며 각 지역 많은 클래식 음악 팬의 가슴을 울리게 되었다.

필자가 착석한 공연장 내부 객석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 조명이 눈부시게 밝아진다. 이윽고 지휘자의 경쾌한 움직임에 맞춰 오케스트라는 서곡을 시작한다. 오늘 상영되는 오페라는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다. 이어서 성악가들이 등장해 멋진 목소리로 아리아를 멋있게 뽑아낸다. 이렇게 피렌체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저녁을 오페라와 함께 아름답게 보내고 있었다.

필자도 그들과 함께 입가에 미소를 지어본다. 다만, 한 가지 물음표를 갖고 공연장을 떠난다. 옛 시대의 사회상과 유머를 담은 오페라의 가사가 더 이상 현대 관객들이 당시의 관객들만큼 이해하고 웃고 울고 하기에는 약간의 정서적 거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현대 사회에서 오페라는 어떻게 우리의 삶과 만나야 할지 한번 고민해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 안종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오페라 ‘오르페오’
연주 조르디 사발, 콩세르 나시옹 외
함께 감상하면 좋은 음반

역사상 첫 오페라인 ‘다프네’는 아쉽게도 현재 음악의 상당수가 유실됐다고 한다. 따라서 공연계에서는 현대 시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가장 첫 오페라는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라고 꼽는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의 사랑 이야기를 소재로 몬테베르디의 작곡, 알레산드로 스트리지오의 대본을 통해 1607년 이탈리아의 만토바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단순히 역사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예술적 표현 또한 뛰어난 작품으로 현대 오페라 극장에도 종종 상영되며 많은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