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밸리 골프장에서 매년 5월 열리는 그린콘서트는 넓은 잔디밭을 모두가 함께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해 20년간 세계 각국 팬이 몰려오는 글로벌 K팝 축제로 성장했다. 함께 행사를 진행하고 사회를 보는 이종현씨와 박미선씨는 “코로나로 2년간 중단됐던 꿈의 무대를 내년에 다시 연다는 꿈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민학수 기자
서원밸리 골프장에서 매년 5월 열리는 그린콘서트는 넓은 잔디밭을 모두가 함께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해 20년간 세계 각국 팬이 몰려오는 글로벌 K팝 축제로 성장했다. 함께 행사를 진행하고 사회를 보는 이종현씨와 박미선씨는 “코로나로 2년간 중단됐던 꿈의 무대를 내년에 다시 연다는 꿈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민학수 기자

한국의 골프장은 외딴 섬이다. 배 대신 차를 타고 오는 것만 다를 뿐이다. 그들이 골프 클럽과 공을 갖고 그들만의 놀이를 하다 떠나는 섬이다. 회원제 골프장은 그렇다 쳐도 대중(퍼블릭) 골프장까지 진짜 대중은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지역 주민이건 아니건 다른 이들은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기를 바라는 듯 길고 긴 진입로부터 구석구석 높은 경계 상태를 유지한다. 지역 주민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미국이나 영국의 퍼블릭 골프장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이나 영국 등 유럽에는 워터 해저드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는 특이한 곳도 있고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을 지역 주민의 사랑방으로 공개하는 곳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2000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서원밸리 골프클럽에서 막을 올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전인 2019년까지 20년간 지속한 ‘그린콘서트’는 한국 골프의 ‘그린 혁명’이었다. 회원제 골프장 한 홀을 콘서트 무대로 내주고 회원제 골프장 옆 퍼블릭 코스 9홀을 주차장 삼았다.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었다. 골프와는 아무 상관없던 가족들이 잔디를 밟으며 즐거움을 나누고 외국 한류 팬들이 수천 명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서원밸리 자선 그린콘서트는 한 해 수만 명 인파가 몰리고 전 세계 K팝 팬들이 찾아오는 글로벌 축제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무슨 비결이 있는지 배워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제1회 그린콘서트를 기획하고 사회를 맡았던 시인 출신 언론인 이종현 레저신문국장과 2008년부터 함께 진행을 맡았던 인기 코미디언 출신 방송인 박미선씨는 가장 외딴 섬이던 한국의 골프장에서 쏘아 올린 ‘그린 혁명’의 산증인이다. 이들은 지난 8월 나란히 서울시의회 의장상을 받았다. 이종현씨는 그린콘서트 기획과 연출, 진행 등 일인 다역을 맡았고, 인기 방송인 박미선씨는 12년 동안 출연료를 받지 않고 그린콘서트 사회를 봐온 공로가 인정됐다. 이들에게 그린콘서트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한국 골프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인정받으며 오랫동안 그린콘서트 팬과 즐거움을 나누었던 이들은 ‘유쾌 DNA’를 공유한 듯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나갔다.

박미선씨는 그린콘서트를 ‘꿈의 무대’라고 불렀다. 그의 말이다. “잔디를 생명처럼 여기는 골프장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합창하고, 심지어 골프장 잔디 위에 주차까지 한다는 건 평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 꿈 같은 무대이고, 평소라면 도저히 한 무대에 불러 모을 수 없는 20~30팀의 아이돌 그룹과 가수들이 무보수 공연을 한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니 꿈 같은 무대다. 지금은 우리 사회자들과 공연 기획사 매니저들이 함께하는 모임까지 생겼다. 돈 한 푼 생기지 않는 일에. 정말 꿈 같은 일이다.”


서원밸리 그린콘서트 무대에는 중학생 시절 아이유, 방탄소년단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던 시절의 BTS(사진), 워너원, 비스트, 에이핑크, 마마무, DJ DOC, EXID, 비투비, 틴탑, 엠블랙, 빅스 등 지금은 세계 무대를 휩쓰는 K팝 스타들이 섰다. 그것도 재능 기부 형식으로 무료 출연했다. 사진 민학수 기자
서원밸리 그린콘서트 무대에는 중학생 시절 아이유, 방탄소년단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던 시절의 BTS(사진), 워너원, 비스트, 에이핑크, 마마무, DJ DOC, EXID, 비투비, 틴탑, 엠블랙, 빅스 등 지금은 세계 무대를 휩쓰는 K팝 스타들이 섰다. 그것도 재능 기부 형식으로 무료 출연했다. 사진 민학수 기자

“모두 함께하는 잔디밭 만들자” 생각

그린콘서트의 출발은 어땠을까. 이종현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1990년대 중반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에게도 일 년에 한 번쯤 드넓은 골프장 잔디밭을 개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골프장 여러 곳에 제의했는데 서원밸리 골프장을 운영하는 최등규 대보그룹 회장이 모두 맡아서 해달라며 흔쾌히 수락하셨다. 제1회 콘서트는 10월 14일에 열렸는데 나하고 가깝게 지내던 해바라기 유익종을 비롯해 박학기, 강은철 등 세 명이 무대에 섰다. 규모가 작아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 반신반의했는데 서원밸리 회원과 지역 주민 등 1520명이 모여서 함께 가을밤을 즐겼어요. 느낌이 무척 좋았다.” 참가자들을 위한 티샷과 퍼팅 대회, 프로골퍼의 원포인트 레슨, 캘러웨이 등 용품 회사들이 참가해 다양한 경품 이벤트 등도 함께 열자 호평이 쏟아졌다. 하지만 최 회장의 결단이 아니었으면 그린콘서트는 출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이종현씨 생각이다. 자선 콘서트를 위해서는 주말 영업을 포기해야 하고 행사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콘서트장과 심지어 주차장으로 이용한 골프장의 생명인 잔디를 행사 후 원상복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숙제였다. 콘서트 한 회에 최소한 5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자수성가한 기업인인 최 회장은 하루라도 골프장을 가족이 함께 즐기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으로 내준다는 것에 흡족해했다.

한 번 물꼬를 튼 그린콘서트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2회부터는 좀 더 따뜻하고 골프장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줄 수 있도록 콘서트 시기를 5월로 앞당겼다. 1년 만에 배 가까이 늘어난 2500여 명이 몰려왔다. 10회 때는 무려 2만여 명이 콘서트를 보기 위해 서원밸리로 모여들었다. 지난 몇 년간은 4만5000명까지 늘었다. 열흘 전부터 외국에서 온 한류 팬들이 텐트를 치고 기다린다. 지역 일대 교통이 마비되고 안전상의 문제가 생겨서 더 이상은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2019년 기준 20년간 누적 관람객은 무려 44만 명에 이른다.

이렇게 그린콘서트가 글로벌 한류 축제로 성장한 것은 막강한 출연진의 힘이 컸다. 중학생 시절 아이유, 방탄소년단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던 시절의 BTS, 워너원, 걸스데이, 비스트, 에이핑크, 마마무, DJ DOC, EXID, 비투비, 틴탑, 엠블랙, 빅스 등 지금은 세계 무대를 휩쓰는 K팝 스타들이 이 무대에 섰다. 첫해 인기 가수 세 명이 섰던 무대가 한 해 30팀의 아이돌 그룹과 가수가 나서는 초대형 야외 콘서트로 성장한 것이다.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과 야외 행사를 진행해본 박미선씨는 그린콘서트의 독특한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조연이다. 워낙 대단한 가수들이 무대에 서고 그분들을 보기 위해서 팬들이 모인 거니까. 그런데 다른 콘서트에서는 볼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재능 기부이고 무료 콘서트인데도 탁 트인 자연과 자선 무대라는 분위기 때문인지 모두 더 열심히 한다. 그걸 팬들도 안다. 그러니 호응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인근 군부대가 많으니까 군인들도 많다. 이들은 곧 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어서인지 더 열심히 ‘칼 박수’를 치면서 흥을 돋운다. 팬의 입장에서 무대를 지켜보는 맛이 있다면 사회를 보는 입장에선 무대를 바라보는 팬들의 열기를 지켜보는 맛 이 있다. 그 맛이 정말 꿈 같다.”

자선 그린콘서트는 매년 이벤트 행사로 모은 자선기금에 서원밸리 골프클럽 회원들, 대보그룹에서 낸 성금을 합쳐 ‘사랑의 휠체어 보내기 운동본부’와 파주시 광탄면의 파주보육원에 보내왔다. 콘서트가 열리지 못한 지난 2년 동안에도 자선기금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가끔 부부끼리 골프를 함께한다는 이종현씨와 박미선씨는 라운드 중에도 내년 5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열 서원밸리 자선 그린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박미선씨는 “얼마나 많은 팬이 기다리실까. 특히 해외에 있는 분들은 몸살이 난 것 같다”라고 했다. 이종현씨는 “그린콘서트에 참가하고 더 큰 스타로 발돋움한 분들이 꼭 참석하겠다고 해 정말 내년이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한국 골프장 풍경을 바꿔 놓은 ‘그린콘서트 정신’이 일부 탐욕의 화신처럼 비치는 골프장들까지 확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