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운 모습을 간직한 운주사 대웅전. 사진 최갑수
신비로운 모습을 간직한 운주사 대웅전. 사진 최갑수

전남 화순 운주사는 갈 때마다 신비롭게 느껴지는 절이다. ‘천불천탑’으로 알려져 있다. 양식이나 형태가 독특한 석불과 석탑이 절 곳곳에 있는데, 1000년이 넘는 세월을 지켜온 석불과 석탑은 누가, 왜 세웠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경내에 있는 호떡탑, 항아리탑, 동냥치탑, 실패탑 등은 흔히 우리가 보는 반듯하고 아름다운 탑과 거리가 멀다. UFO를 닮은 탑도 있고, 항아리를 닮은 탑도 있다. 부여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을 닮은 모전 계열 신라식 석탑도 있다. 층수도 3, 5, 7, 9층 등으로 다양하고 탑에 새겨진 문양도 독특하다. 탑신에는 절에서 흔히 쓰는 연꽃 문양이 아니라 X, V, ◇, // 같은 기하학무늬가 새겨졌다.

부처의 얼굴은 또 어떤지. 하나같이 크기도 다르고 얼굴 모양도 제각각이다. 홀쭉한 얼굴도 있고 동그란 얼굴도 있다. 코는 닳았고 눈매는 희미하다. 눈, 코, 입이 단순하게 선만으로 처리된 부처의 얼굴도 있다. 어떻게 보면 못생겼고 어떻게 보면 우습게 생겼기도 하다. 근엄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하나같이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보는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베일에 싸인 신비의 절 운주사는 유네스코가 인증한 무등산권 세계지질공원 지질 명소이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세계지질공원을 “경관이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아름다운 장소로, 크기와 범위가 적당하고, 자연과 인문, 사회, 역사, 문화, 전통 등이 결합하며, 지역 주민의 경제적 이익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공원”이라 정의한다. 운주사 지오 트레일은 화산재가 쌓여 형성된 돌로 만든 석불과 석탑을 보며 지질 환경이 어떻게 우리 삶에 스며들었는지 유추할 수 있는데 주차장에서 경내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겹겹이 쌓아 올린 듯한 층상 응회암을 볼 수 있다.

운주사로 들어가는 남쪽 골짜기에서 가장 먼저 구층석탑을 만난다. 탑은 거대한 암반 위에 우뚝 섰으며, 탑신에 기하학무늬가 빼곡하다. 층이 뚜렷해 책을 수백 권 쌓아놓은 듯 보이는 이 바위 앞에 납작한 부처 6좌가 기대어 있다.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이 납작하고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 까닭은 주변에서 채취하기 쉬운 층상 응회암을 그대로 떼어 조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원형다층석탑은 연화탑이라고도 하며, 이색적인 생김새 때문에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탑신이 둥그레서 도넛탑, 호떡탑으로도 불린다. 운주사가 무등산권 세계지질공원 명소로 지정된 이유를 석탑과 석불 주변 암석이 설명해준다.


독특한 모양의 운주사 석불들. 사진 최갑수
독특한 모양의 운주사 석불들. 사진 최갑수

소설 ‘장길산’이 다시 알린 운주사

운주사에는 도선국사의 전설이 얽혀 있다.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세우면 국운이 열릴 것으로 생각한 국사는 도력으로 하룻밤에 석탑 1000기와 석불 1000좌를 세우기로 했다. 그런데 동자승이 장난삼아 닭 울음소리를 내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석불 2좌는 세우지 못했다. 절 서쪽 산비탈 솔숲에 남편불과 아내불이 사이좋게 누웠다. 화순 운주사 와형석조여래불(전남유형문화재 273호)은 각각 길이 12.7m와 10.3m로 국내 와불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전해진다.

운주사 전체를 조망하려면 대웅전 뒤편 산 중턱의 공사바위에 오르면 된다. 여기에서 볼 때 맨 뒤쪽에 우뚝하게 서 있는 구층석탑이 운주사의 중심탑이다. 높이가 10.7m로 운주사에서 가장 높다. 연화탑으로도 불리는 원형다층석탑(보물 제198호)도 보인다.

잊혔던 운주사를 다시 세상에 알린 이는 소설가 황석영이다. 그는 조선 숙종대의 의적을 다룬 소설 ‘장길산’에서 천불산 골짜기의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세우고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면 민중해방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후 운주사는 미륵신앙의 혁명적인 성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는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를 썼다. 2001년 대산문화재단의 초청으로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던 그는 운주사를 돌아보고 감동을 받아 프랑스로 돌아간 후 시를 써서 한국으로 보냈다.

“서울 거리에 / 젊은이들, 아가씨들 / 시간을 다투고 초를 다툰다. / 무언가를 사고, 팔고 / 만들고, 창조하고, 찾는다. / 운주사의 가을 단풍 속에 / 구름 도량을 받치고 계시는 / 두 분 부처님은 / 아뜩 잊은 채 / 찾고 달리고 / 붙잡고 쓸어 간다”


마을숲 거닐며 만끽하는 가을

화순에는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숲이 있다. 동복면 연둔리 둔동마을에 자리한 숲정이로, 지금 가면 가을 정취로 가득하다. ‘숲정이’란 마을 근처 숲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동복 천변 둔동마을 앞에 약 700m에 이르는 숲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1500년쯤 마을이 형성되면서 조성한 것이라고 하니 벌써 500년을 훌쩍 넘었다. 느티나무, 팽나무, 서어나무, 왕버들이 빼곡한데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거닐다 보면 이 땅의 가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

야사리 느티나무도 찾아보자. 이서 커뮤니티센터 앞에 자리하고 있다. 화순군 기념물 제235호. 높이가 35m에 달한다. 수령은 약 400년 내외. 지금은 폐교가 된 이서 분교가 들어서 운동장을 만들 때도 이 나무로 보호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한 그루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두 그루가 사이좋게 서 있다. 100m 남짓 떨어진 곳에 조선 성종 때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 나라에 화가 있을 때는 우는 소리를 냈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이면 당산제를 지낸다.


▒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여행수첩

먹거리 야사리 느티나무 건너편에 ‘누룩꽃이 핀다’라는 빵집이 자리하고 있다. 막걸리로 빚은 누룩으로 스물아홉 시간 저온에서 발효해 빵을 만든다. 메뉴로는 통밀빵, 올리브치즈빵, 소보루빵, 단팥빵이 있다. 화순전통시장 근처에 위치한 봉순이팥죽칼국수에서는 전라도식 팥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걸쭉한 팥죽 속에 쫄깃한 칼국수가 듬뿍 담겨 있다. 싱싱한 바지락과 미역을 넣고 끓인 바지락 칼국수도 팥칼국수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맛. 화성식육식당은 생고기와 머릿고기로 만든 편육이 유명한 집이다. 생고기는 쇠고기를 생으로 먹는 것을 말한다. 두툼한 쇠고기를 마늘 양념한 참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1975년 문을 열었고 화순에서 최초로 ‘백년가게’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오케이사슴목장가든에서는 참숯을 이용해 산닭을 구워 먹을 수 있다. 산닭은 모두 농장에서 직접 키운 것. 노릇노릇 구워낸 닭고기는 담백하면서도 쫄깃하다.

국내 최대 규모 고인돌 유적지 화순에는 지오 트레일이 한 곳 더 있다.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사적 410호)은 국내 최대 규모 고인돌 유적지이자, 무등산권 세계지질공원을 대표하는 지질 명소다. 고인돌 596기가 분포한 이곳에는 덮개돌을 뗀 채석장이 있어 채석과 운반 등 고인돌 축조 과정을 살펴보기 좋다. 이양면 증리에 자리한 쌍봉사는 대웅전, 극락전, 요사채, 해탈문 등 달랑 4채로 이루어진 작은 절집이다. 쌍봉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웅전이다. 3층 목조탑 양식으로 조선 중기에 세워졌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과 함께 국내에 두 개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의 것은 1984년 불엔 탄 것을 복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