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 프로 골퍼 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
최경주 프로 골퍼
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

지난 9월 최경주 선수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프로 골프(PGA) 챔피언스 투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바람이 유난히 심한 캘리포니아 페블비치(파72)에서 버디 5개와 보기 1개로 4언더파 68파를 기록했다. 22년 전, 한국인 최초로 PGA 투어에 진출하며 코리안 탱크의 위력을 증명해왔던 그가, 이제 50세 이상만 출전하는 시니어 투어에서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탱크는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 넘어야 할 산을 정확히 넘어가는 중이다. 한국 골프의 레전드, 최경주를 만났다. 여주에서 열린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을 위해 잠깐 귀국한 그와 짧은 안부를 주고받은 후, 본격적인 인터뷰는 출국 후 줌으로 진행했다.


최경주 선수가 골프 스윙을 하고 있다. 사진 최경주재단
최경주 선수가 골프 스윙을 하고 있다. 사진 최경주재단

최근 페블비치에서 열린 PGA 챔피언스 투어에서 우승을 했다. 어떤 곳인가.
“아름다운 곳이다. 그만큼 난코스이기도 하다.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코스를 만들다 보니 한 홀도 방심할 수 없었다. 홀마다 여긴 티샷, 저긴 아이언샷 등 메시지가 분명하고 바람의 방향도 수시로 바뀌었다. 태평양의 가장자리에 있다 보니 스윙을 할 때마다 독특한 바다 냄새가 코끝에 전해졌다.”

시니어 대회에 한국인 최초로 진출했고 또 우승했다. 계속해서 역사를 쓰고 있다. 51세의 나이에 여전히 정상의 플레이어로 사는 기분이 어떤가.
“22년 동안 PGA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건 축복이다. 게다가 이번이 201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이후 10년 만에 우승을 했다고 하더라. 하하. 오십이 넘어 챔피언스 투어로 오니 나이 먹은 사람들과 싸우는 맛이 또 있다. 젊을 때는 젊은 부딪힘이 있다면, 오십이 넘어가면 파도가 바위를 때리며 서로에게 스미듯, 싸움의 맛이 달라진다. 다 우승해본 분들이라⋯.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젊을 때 노력과 50대의 노력은 어떻게 다른가.
“젊을 땐 무작정 연습량을 늘렸다. 나이 들고부터 에너지를 최소화해서 짧은 시간에 힘을 쓰려고 한다. 3개월 전부터 좋아하던 와인도 끊고 탄수화물을 조절하면서 몸을 만들고 있다. 몸을 깨끗하게 만들고 동시에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공을 많이 들인다.”

챔피언스 리그에 나이 제한은 없나.
“없다. 최고령자인 버나드 랑거가 64세다. 아직 70대는 없다. 내가 51세이니 아직 20년은 더 해야 한다. 갈 길이 멀다. 한국 골프에서 가장 앞에 있다 보니, 내가 가는 길이 후배들이 갈 길이다.”

그를 보고 있으면 인간의 몸이 피와 살과 뼈가 엉킨 게 아니라 마치 모래와 잔디와 진흙이 퇴적되어 온 것만 같다. 퍼팅 그린에 앉아 물끄러미 홀을 바라볼 때나 호쾌하게 장타를 쳐올릴 때나 최경주는 골프라는 스포츠가 가진 독특한 힘과 겸손을 보여준다.

골퍼로서도 전설이지만,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골프 레슨도 귀에 쏙쏙 박히더라. 가령 퍼팅할 때 에너지 전달은 일정하니, 목측 거리를 계산해서 리드미컬하게 시계추처럼 백스윙을 하라거나, 스윙의 정석을 그립, 앵글, 스피드, 파워, 균형으로 순차적으로 설명한다거나…, 골프 코칭이 마치 수학이나 철학 레슨처럼 들렸다.
“복잡한 설명이 왜 필요한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습을 정리해서 들려준 거다. 아무리 골프를 잘해도 프로를 능가할 수는 없다. 논리에 맞으면 단순하다. 주니어 골퍼도 전문 선수도 놓치고 가는 게 있다. 자기가 치는 공이 어떻게 가는지 몸으로 알아야 한다. 몸으로 느껴야 다음 샷을 할 수가 있다. 스윙은 시계추와 같다. 갔으니까 오고 온 만큼 가는 거다. 반복할수록 몸의 기억이 정확해지고 정확해지면 재밌어진다. 그 궤도가 몸에 붙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공은 어떤가.
“공은 둥글다. 절대로 똑바로 나가지 않는다. 뱅그르르 돌면서 날아간다. 스핀이 있어야 바람의 저항을 뚫고 간다. 골프는 자기 갈 길 가겠다는 공을 상대하는 작업이다.”

제 갈 길 가겠다는 공을 어떻게 상대하나.
“클럽 헤드의 무게를 알고 정확히 때리면 원하는 곳에 공을 놓을 수 있다.”


프로 골퍼 최경주. 사진 최경주재단
프로 골퍼 최경주. 사진 최경주재단

그 무게와 힘의 원리를 어린 시절 아버지께 배웠다고 했다.
“어릴 때 마을에서 상수도 파이프 묻는 공사를 하면 집집마다 사람을 차출했다. 큰아들이니까 내가 대표로 나가서 도랑을 팠다. 젊고 힘이 좋으니 곡괭이로 땅을 얼마나 세게 찍었겠나. 그때 아버지가 그러셨다. 빨리하는 것보다 한 번 칠 때 힘을 정확하게 줘라. 곡괭이 무게를 이용해서 툭툭 쳐야 잘 들어간다고. 그 말씀이 지금껏 남아서 공을 칠 때, 공의 무게에 맞는 순간적인 힘을 쓴다. 그러면 작은 스윙으로도 웬만한 거리를 낼 수 있다.”

서울에서 매끈하게 자랐으면 몰랐을 것을 완도 촌에서 다양한 굴곡을 만나다 보니 하나둘 대처법을 알게 됐다고 했다. 어쩌면 골프와 인생은 닮았다. ‘코스는 있는 그대로, 볼은 놓인 그대로, 플레이한다’라는 골프의 대원칙을 생각할 때마다 인생 플레이어들도 겸허해진다. 사방이 내 시야를 넘어서는 곡면이고 사각인데, 불평도 꼼수도 허용하지 않는다니! 바람이 불어도 도랑을 만나도, 있는 그대로, 놓인 그대로, 도망도 못 가고. 어쩌면 그 ‘단순한 직면’이 가장 어렵다.

축구나 야구는 함께하는 팀이 있고 수영이나 달리기는 명확하게 그어진 자기 레이스가 있지 않나. 팀워크도 라인도 없는 골프는, 18홀을 따로 또 같이 엎치락뒤치락하며 가는데, 걷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나.
“기왕이면 남 생각, 점수 생각을 안 하려 한다. 그런 생각 안 해도 자기 컨트롤이 되고 덜 흔들린다. 하다 보면 본인 실수를 회피하고 싶어서 남 핑계 대고 캐디 핑계를 댄다. ‘바람이 공을 움직여서, 캐디가 시선을 거슬리게 해서, 옆 사람이 움직여서⋯’라고. 평상시에 그런 맘을 품고 있으면, 찌꺼기가 수면을 헤집고 부글부글 올라온다. 그래서 평소에 마음을 깨끗하게 닦아놓지 않으면 힘들다.”

남 탓 말고 내 탓은 어떤가. ‘잘 안 될 것’이라는 자기 불안, 실패에 대한 예감이 압박감을 부추기는 경우도 많다.
“선수라면 누구나 압박과 불안을 겪는다. 경기 중에 세 번 정도 마음이 엎치락뒤치락 한다. 시작하기 전에도 오고, 부담을 가진 홀 근처만 가도 긴장도가 훅 올라간다. 그런데 그것도 특별한 비법이 없다. 사전에 샷을 더 많이 준비하고, 잠을 푹 자고, 연습과 대비를 더 많이 하는 거다. 나는 실수가 생길 땐 바로 마음을 고쳐 먹는다. ‘얼마나 더 좋은 게 오려고 이런가’라고.”

마크 트웨인은 “골프는 산책 잘하고 기분 망치는 운동”이라고 했다. 쓸데없는 걱정을 대체할 자기만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혹시 플레이할 때 점수를 안 보고 홀에만 집중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가.
“점수를 놓고 보면 머리가 복잡하다. 리더 보드(골프에서, 파를 기준으로 각 경기 선두 그룹 선수들의 성적을 표시하는 게시판)를 보면서 그에 맞춰서 잘하는 선수도 있지만, 나는 홀에 집중하는 게 효과가 좋다. 이 순간 그 홀을 잘 끝내는 데만 최선을 다한다. 첫 홀에서 보기 나오면 안 좋은 스타트라고들 하는데, 나는 ‘첫 보기는 살림 밑천’으로 생각한다. 버디로 시작한 게임이 방심해서 잘못 끝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나. 오히려 첫 보기는 리듬만 잘 타면 금방 회복되고 결과도 좋다.”

개척자 기질은 누구에게 물려받았나.
“역시나 아버지다. 아버지는 농부이자 어부였다. 나는 큰아들이라 곁에서 농사일과 뱃일을 거들었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있다. ‘남들 안 가는 곳에 큰 물고기가 있다. 바다엔 네 것 내 것 없으니, 부지런한 놈이 임자’라고. 먼저 나가 푯대 꽂고 그물 친 놈이 장땡이다. 그래서 남들이 바람분다고 안 나갈 때 나를 데리고 바다에 나가셨다. 아버지하고 함께 더 멀리 더 깊게 가보면서 점점 배포가 커졌다. ‘죽을 것 같아도 죽지는 않는구나. 해보면 되는구나’라고.”

그런 경험에 비하면 ‘서울 가서 골프해보자’는 훨씬 쉬운 결정이었다고 했다. 골프에 미친 17세 소년은 소 판 돈으로 선생님들 양복을 해드린 후, 다니던 완도의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서울 가서 비싸게 팔리고 싶었다’고 했다. 63빌딩도 눈뜨고 지나가면 돈 내는 줄 알던 촌놈이 그렇게 2000년 미국 PGA 투어 한국인 1호 골퍼가 됐다.

동양인에 키도 크지 않은 당신이 어떻게 그 백인 중심의 치열한 전쟁터에서 자기 기세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억울하고 화가 나도 나는 그 분풀이를 다 공에 했다. 하하. 그리고 필드에서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악수할 때 상대의 손을 꽉 잡는다. 뼈가 아플 정도로.”

30년 넘도록 골프를 쳐보니, 그 매력이 뭔가.
“매일매일 다르다는 거다. 아침 다르고 오후 다르고, 어제·오늘·내일이 다르다. 그때그때 새롭게 적응할 뿐. 그게 재밌다.”

때로는 인생의 룰이 나한테만 불의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필드에서는 어떤가.
“골프는 스스로가 심판이 될 때가 많다. 공이 처박힐 때는 손대고 싶은 유혹도 든다. 하지만 단 한 차례도 공에 손을 댄 적이 없다. 오히려 자진 신고해서 억울하게 벌타도 받았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결국 어느 입을 통해서든 밝혀지게 돼 있다. 작은 것에 흠집 나면 큰 것을 잃는다.”

골프 룰은 공평하다고 생각하나.
“지켜야 하니 지키는 거다. 그거 자체가 훈련이다. 부정적 요소를 따지기보다 모든 선수가 지키면서 엔조이하는 게 현명하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골프를 치게 될까.
“물론.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이 걷기와 골프다. 장수하려면 골프 해야 한다. 골프를 하면 인생을 더 잘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최경주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믿음이 있는 사람, 믿음을 주는 사람 그리고 끝이 좋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