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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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시즌이 말 그대로 조용하게 지나갔다. 조용하게 지나간 이유는, 이름도 생소한 수상 작가의 작품이 한국에 단 한 권도 번역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한 작품만이라도 보유하고 있는 출판사가 있었더라면 우리는 압둘라자크 구르나라는 이름을 얼마간 더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럴 때마다 한국의 문학 출판이 서구 중심으로 구성된 협소한 토양 위에서 작은 지도만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

노벨문학상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따라서 견고하고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에게 수여되기 마련인 노벨문학상은 인지도가 높은 연륜 있는 작가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몇 해 전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에서 단 하나 특별한 것이 있다면 63세라는 ‘젊음’이었을 것이다. 그보다 앞서거나 뒤에 받은 작가 중에서 가즈오 이시구로만큼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상한 작가가 있다면 때 이른 나이에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예외적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마흔네 살의 알베르 카뮈처럼.

구르나 역시 오랫동안 자기만의 길을 걸어왔다. 많은 사람이 그 길에 ‘난민’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구르나가 쓴 작품들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 의식은 난민이 겪는 세계의 붕괴라고 한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장편소설 ‘낙원’은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을 비틀어 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소설인 동시에 20세기 영국 소설을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암흑의 핵심’은 탐험을 동경하는 화자인 ‘말로’가 아프리카로 항해하는 이야기로, 그 과정에서 자신의 꿈이 위장된 제국주의적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구르나의 ‘낙원’은 이러한 인식에 남아 있는 서구 중심적 세계관을 다시 한번 비튼다.

노벨문학상은 ‘문학과 사회’에 던지는 하나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밥 딜런을 호명했을 때 모두의 노래로서의 시를, 알렉시예비치를 호명했을 때 체르노빌과 전쟁을, 토카르추크를 호명했을 때 동물과 환경에 대한 경고를 읽지 않을 수 없다. 문학은 가장 내면적이고 나약한 언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사회적 목소리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인간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벨문학상은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 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난민’이라는 닫힌 문을 열어 주는 열쇠. ‘환경’이라는 닫힌 문을 열어 주는 열쇠. 어떤 문학은 어느 작가가 전 생애에 걸쳐 탐구한 결실인 탓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지닌 세계가 호명될 수 있을까. 어떤 난제가 문학의 언어를 열쇠 삼아 닫힌 세계를 열어젖힐까. 기후 위기 쪽으로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인도 출신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의 책 ‘대혼란의 시대’는 기후 위기를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라고 말하며 현대 문학에서 기후 위기라는 현실을 다루지 않는 이유에 대해 분석한다. 그 분석에는 여러 가지 수긍할 만한 것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현대의 소설이 지나치게 일상적인 소재들을 다루는 방향으로 변해 오고 있는 탓에 기후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사회의 변화나 역사의 위기보다는 개인의 위기를 포착하는 방식, 매일의 틈에 난 작은 균열을 포착하는 데에서 현대 소설의 미학이 발전해 왔으므로 기후 위기는 현대 소설의 주제가 되기엔 너무나 큰 현실이자 역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 위기가 도래할 시대의 중심 화두가 되기에 충분하다면, 언젠가의 노벨문학상은 기후 위기라는 소재를 통해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는 내러티브에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솔직히 말하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 같다.

김기창 작가의 소설집 ‘기후 변화 시대의 사랑’은 그 길목에 중요한 역할을 할 작품이다. 말 그대로 기후 변화를 테마로 쓴 10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책인데, 제목은 물론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차용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기후 변화 시대로 정의함으로써 새로운 시대 감각에 접속한 현재를 인식하게 하는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은 ‘완전하고 절대적인 끝’을 상상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상상력의 위기란 끝에 대한 상상력의 위기가 아닐까. 삶에서의 끝은 대체로 다른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시대의 끝과 다른 시간의 시작은 같이 온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렇게 믿으면 조금 덜 절망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나고 보면 정말로 끝이 시작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복할 수 없는 끝을 앞에 두고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세계의 끝을 무서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귀찮은 마음을 이기고 헬스장으로 향하고 몸에 좋다는 음식을 꾸역꾸역 챙겨 먹으며 무리하지 않기 위해 잠을 자두는 것처럼, 숱한 괴로운 죽음을 본 사람들은 자신의 오지 않은 끝을 상상하고 두려워할 수 있다.

기후 위기 문제 앞에서는 ‘두려워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비가역적인 끝에 대한 상상이 필요하다. ‘겁쟁이들’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 평론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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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1978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한양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이런저런 매체에 글을 쓰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2014년 장편소설 ‘모나코’로 38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서 경험한 모욕적인 상황에서 시작된 폭력의 연쇄를 다룬 소설 ‘방콕’을 출간했다. ‘기후 변화 시대의 사랑’으로 또 다른 색깔을 보여 주며 자기만의 서사를 지닌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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