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불특정식당’의 단호박 퓌레와 꽈리고추 퓌레를 곁들인 돼지 안심. 사진 조선일보 DB
제주 ‘불특정식당’의 단호박 퓌레와 꽈리고추 퓌레를 곁들인 돼지 안심. 사진 조선일보 DB

제주도는 요즘 음식·외식으로 가장 주목받는 지역 중 하나다. 자연 속에서 보다 느린 템포로 살고 싶다는 이들이 서울 등 대도시를 떠나 제주로 이주한 지 오래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며 해외여행이 막혀 갑갑해진 이들이 국내에서 가장 이국적인 땅, 아니 섬 제주로 몰렸다. 식당과 카페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음식의 수준과 다양성이 서울 버금가게 높아지고 넓어졌다.

제주 외식업의 발전은 현재까지 크게 3단계로 나눠 볼 수 있을 듯하다. 옥돔·돼지고기 등 제주 특산물을 육지 사람들 입에 맞춰 조리한 음식이 1차 물결이었다면, 삶은 돼지고기를 도마에 올려 먹는 ‘돔베고기’, 제주 말로 ‘몸’이라 부르는 해조류 모자반을 돼지고기 육수에 끓인 ‘몸국’ 등 제주 토박이들이 본래 먹던 향토 음식이 2차 물결이었다. 현재 거세게 몰아치는 제주 외식업의 3차 물결은 ‘제주식 파인다이닝(fine dining·고급 외식)’ 아닐까. 제대로 배우고 수련한 셰프들이 제주의 식재료를 활용해 자신만의 요리 세계를 창작하는 파인다이닝을 어렵잖게 맛보게 됐다.

‘불특정식당’은 제주식 파인다이닝의 전형을 만들어가고 있는 곳이다. 제주도의 전통적 중심인 제주시나 신흥 관광 중심지 서귀포시 양쪽으로부터 한참 동쪽으로 떨어진 성산읍, 거기서도 삼달리라는 외진 시골 마을에 있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찾아갔는데도 식당을 지나칠 뻔했다. 낡은 감귤선과장 건물을 개조한 흰색 단층 건물은 2차선 도로변에 붙어있지만 간판이 작은 데다 출입구도 길 쪽이 아닌 건물 측면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보인다.

이곳은 레스토랑이 아닌 와인바(wine bar)를 표방한다. 단지 음식만 먹기보단 와인이나 위스키 등 주류와 함께할 때 상승효과를 내도록 설계됐다. 음식과 술이 어우러졌을 때 더욱 맛있다는 뜻이다. 저녁에는 1인당 음료를 적어도 1잔씩은 반드시 주문해야 하며, 아동은 동반이 불가하다. 저녁 한 끼를 먹어보니 술을 곁들이지 않을 거면 굳이 이 외진 곳에 있는 식당에 찾아올 필요는 없을 듯하다. 점심에는 음료를 주문하지 않아도 되며, 중학생(14세) 이상은 입장 가능하다.

작고 낮은 문을 고개 숙여 들어가면 의외로 넓은 공간이 나온다. 15명가량이 앉을 수 있는 ㄷ 자형 바 테이블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4인 테이블 4개가 더 있다. 식당은 100% 예약제로 운영된다. 예약한 손님이 모두 오면 식사가 시작된다. 정해진 메뉴는 없다. 다양한 요리 경력을 가진 요리사들이 만드는 음식은 한·중·일·양식 등 어떤 스타일인지 특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상호가 ‘불특정’이다. 그날그날 가장 좋은 재료로 변화무쌍한 요리들을 오마카세 스타일로 낸다. 식사에 앞서 와인을 주문하기로 했다. 7~8가지 코스로 구성되는 디너에 한 잔으로는 부족할 듯하여 병으로 시키기로 했다. 종업원이 우리를 식당 한 편에 있는 와인 진열대로 안내했다. 이곳은 종이나 태블릿 PC로 된 와인 리스트가 없다. 진열대가 거대한 와인 리스트다. 앞면이 통유리이고 안에는 에어컨이 설치된 진열대 안에 와인 80여 종이 늘어서 있었다. 손님이 직접 눈으로 보면서 와인을 선택하는, 독특하면서도 재미난 시스템. 추천에 따라 프랑스 부르고뉴산 샤블리 화이트와인을 골랐다. 잠시 뒤 종업원이 와인을 우리 자리 앞으로 가져와 코르크를 뽑고 잔에 따랐다.


왼쪽부터 ‘불특정식당’ ㄷ 자형 바 테이블, 와인 진열대, 건물 옆으로 난 출입구. 사진 조선일보 DB
왼쪽부터 ‘불특정식당’ ㄷ 자형 바 테이블, 와인 진열대, 건물 옆으로 난 출입구. 사진 조선일보 DB

음식과 와인의 완벽한 페어링

오후 6시 30분, 예약한 손님이 모두 자리에 앉자 첫 번째 음식을 ㄷ 자 바 테이블 안쪽에서 요리사가 직접 내왔다. 단호박 퓌레 위에 달걀 수란과 새우를 얹고 파슬리와 커리 가루를 뿌렸다. 수란을 터뜨려 퓌레와 버무려 새우와 함께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단호박의 단맛과 새우의 감칠맛, 달걀노른자의 고소함이 훌륭했다. 다소 비리거나 느끼할 수 있는 음식을 커리와 파슬리가 산뜻하게 잡아줬다. 샤블리 와인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껍질을 벗긴 토마토에 진한 초록빛 허브 오일이 뿌려져 나왔다. 바싹 구운 팽이버섯을 토스트한 빵에 듬뿍 올린 크로스티니, 전복 내장으로 만든 소스를 곁들인 전복구이가 이어졌다. 오븐에 구운 콜리플라워에 이어 오독오독한 식감이 경쾌한 마늘종과 바삭한 빵가루, 짭조름한 올리브를 곁들인 허브 오일 파스타가 나왔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메인 요리로 나온 돼지 안심이었다. 돼지 안심을 수비드(sous-vide)로 속이 부드러우면서도 촉촉하게 핑크빛이 나도록 익혔다. 함께 나온 단호박 퓌레의 달콤함과 꽈리고추 퓌레의 매운맛이 맛의 변주를 이루며 지루하지 않게 접시를 비우도록 도왔다.

디저트는 제주산 애플 망고로 만든 소르베(샤베트)였다. 소르베 위에 라임 제스트(껍질)를 초록빛이 나는 바깥쪽 부분만 얇게 벗겨내 잘게 다져 올렸는데, 새콤달콤한 애플 망고 소르베에 쌉싸름함이 더해지니 맛의 입체감이 더욱 살아났다. 먹고 난 다음 라임 특유의 산뜻한 향이 입과 코안에 맴돌면서 그야말로 산뜻하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7~8가지 코스로 구성되는 저녁이 6만원, 3~4가지가 나오는 점심이 3만5000원이라니 가성비도 뛰어나다. 술을 마셨기에 대리운전을 불러야 했지만 말이다.


plus point

불특정식당

분위기 식당이 있을 법하지 않은 외진 곳에 있는 데다 건물 측면으로 숨긴 듯한 출입구 때문인지 스피크이지(speakeasy) 바 같다.

서비스 격식 차리지 않고 편안하게 손님을 응대하는 듯하나, 음식을 내줄 때 들려주는 설명이나 와인 서빙하는 태도가 매우 전문적이다.

추천 메뉴 점심 3만5000원, 저녁 6만원

음료 와인 80여 종과 위스키가 대부분인 고도주 10여 종을 구비했다. 와인은 지역·가격대를 고루 구비해 손님의 입맛과 사정에 따라 골라 마실 수 있다. 저녁에는 음료를 1인당 최소 1잔 주문해야 한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오미자&배 주스(7000원)를 추천한다.

영업 시간 점심 낮 12시~오후 1시·오후 1시 30분~2시 30분(2부제), 저녁 오후 6시 30분~9시 30분. 연중무휴이나 그때그때 문 닫는 날도 있다.

예약 100% 예약제로 운영된다.

주차 식당 주변이 한적해 쉽게 주차할 수 있다.

휠체어 접근성 식당 출입구 문턱이 꽤 높고 단층 건물이지만 바닥에 단차가 있다.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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