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먼 센톨라 펜실베이니아대 애넌버그 커뮤니케이션스쿨 교수 미국 코넬대 사회학 석사 및 박사, 현 네트워크다이내믹스그룹 연구소장, 전 매사추세츠공대 슬로언 경영대학원 부교수 / 사진 데이먼 센톨라
데이먼 센톨라 펜실베이니아대 애넌버그 커뮤니케이션스쿨 교수
미국 코넬대 사회학 석사 및 박사, 현 네트워크다이내믹스그룹 연구소장, 전 매사추세츠공대 슬로언 경영대학원 부교수 / 사진 데이먼 센톨라

70억 명이 사는 행성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가깝게 연결돼 있다. ‘몇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는 예측은 사실이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모두 알 것 같은 초연결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데 소셜 네트워크(SNS)에서 그저 이름만 ‘아는 사람’과 그물처럼 끈끈하게 연결된 ‘친한 사람’은 사회적 효용면에서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정한 소셜 네트워크 분야의 석학 데이먼 센톨라(Damon Centola)는 그 차이가 사회 변화에 엄청난 격차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약한 유대’는 바이러스가 퍼지듯 소식을 빠르게 전파하지만, 혁신이나 메가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것은 소셜 네트워크 변두리의 끈끈한 ‘강한 유대’라는 것.

20년 넘게 소셜 네트워크 과학을 연구해온 사회학자는 “기업과 사회 활동가들도 더 이상 소셜 스타에 목매지 말고 보통 사람이 모인 특별한 장소에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로 재직 중인 데이먼 센톨라를 최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데이먼 센톨라가 쓴 책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에는 ‘왜 어떤 것은 한철 유행으로 끝나고, 어떤 것은 세상을 바꾸는 메가 트렌드로 부상하는지’가 정밀하게 기술돼 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겉으로 보면 인플루언서가 시장과 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착시인가.
“소셜 네트워크 스타들은 섣불리 혁신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캠페인, 행동이 급속도로 퍼져나갈 때, 그 위에 올라타서 상승 작용을 더할 뿐이다. 달아오른 현상에 반짝이는 도장을 찍는 트렌드 인증 효과라고나 할까. 가령 사람들은 2009년 4월 오프라 윈프리가 자신의 토크쇼에서 수백만 시청자가 보는 가운데 첫 번째 트윗을 올렸고 그 효과로 사용자가 2800만 명으로 불어난 거라고 알고 있다. 아니다. 트위터의 성장세는 당시 정점을 향해 갔고 오히려 그 후 더 느려졌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진짜 질문은 ‘이 아이디어가 어떻게 성장해서 유명 인사들조차 거기에 관여하기를 원하게 되었는가?’로 말이다.”

어떻게 성장했나.
“트위터는 타 지역으로 훌쩍 건너가지 않고 순전히 강한 유대가 있는 친구 네트워크를 따라가면서 성장했다. 단순한 전염이 아니라 복잡한 전염이었다.”

단순 전염과 복잡한 전염은 어떻게 다른가.
“단순한 전염은 말 그대로 바이러스와 같은 전파다. 전염된 사람과 접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바이럴 동영상, 소문, 뉴스, 채용 공고⋯, 입소문으로 퍼지는 건 다 단순한 전염이다. 소문을 퍼뜨리려면 연결이 많은 개인을 전염시키면 된다. 반면 복잡한 전염은 바이러스처럼 전파되지 않는다.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운동, 혁신, 구매 행동의 변화는 내 주변의 이웃, 동료, 친구 등에 의해 반복적인 강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비로소 각성된다. 즉 가치관과 결부되지 않은 단순한 전염은 빠르게 사방으로 튀는 불꽃 형태로 전파되지만, 도전과 가치 판단이 필요한 복잡한 전염은 그물 형태로 촘촘하게 연결된 믿을 만한 네트워크에서 그 효용이 확인된 이후에 전파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선량한 목적으로 사회 정의를 전파하려는 노력이 왜 실패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성공시킬 수 있는 직관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다.”

혁신의 성공과 실패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힘이 작동했나.
“지난 10년간을 통틀어 가장 강력했던 사회 변화 중 하나인 ‘아랍의 봄’을 예로 들어보자. 2011년 1월, 혁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아스마 마푸즈라는 사회운동가가 있었다. 마푸즈는 이른바 인플루언서였다. 수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었다. 2011년 1월 초, 마푸즈는 SNS를 통해 1월 18일에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에서 정권 반대 시위를 열 것을 예고하며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나 충실한 팔로어들 몇 명만 참여했을 뿐이었다. 마푸즈의 강력한 인기도 대중을 혁명으로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가 2011년 1월 25일에 또다시 시위를 열 것을 예고하자, 불과 일주일 만에 수십만 명으로 참가자가 폭증했다. 그사이에 교사, 상인, 부모, 학생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혁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거다. 한마디로 침묵의 임계점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친구, 가족을 주축으로 SNS를 통해 모였다. 그렇게 독재 정권이 무너졌다.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 국민이 베를린 장벽 시위 현장에 몰려든 것도 친구와 가족이 함께 가담했기 때문이다.”

핵심이 뭔가.
“중복성 그리고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갑자기 뒤집히는 점이라는 뜻으로, 엄청난 변화가 작은 일에서 시작돼 폭발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의미).”

중복성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사람들은 가까운 이들로부터 지속적인 신호를 받을 때, 그들과 협응하기 위해 자신의 태도를 바꾼다.”

책에서 보면 당신은 말콤 글래드웰이 주목한 ‘티핑포인트’를 약간 다른 방식으로 변주하고 있는 듯한데.
“내가 말하는 ‘티핑포인트’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바꾸지 않고서는 서로 협응할 수 없는 지점을 의미한다.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 2016년의 미투 운동 부상⋯. 이러한 사회 변화들은 수십 년 동안의 노력과 저항이 거의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일단 티핑포인트에 도달하면서 갑자기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

올해 초에 나는 프랑스의 여성 하원의원이자 유엔 세대평등포럼 사무총장인 델핀 오(Delphinge O)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가 “여성 의석이 30%가 넘기 시작하자 문화와 정책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수치다”라고 해서 놀랐다. 당신이 그 ‘뉴 노멀’의 시작점을 25~30%라고 수학적으로 정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사실이다. 25%만 확보하면 집단의 문화를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한 군집에서 여성의 수가 티핑포인트 수치에 이르면 은밀한 차별은 있어도 성을 바탕으로 공개적으로 상대를 폄하할 수 없다. 특히 정부와 기업의 임원들은 타인과 협응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국민과 소비자의 눈치를 살핀다.”

독일 정부가 성공시킨 ‘1000개의 지붕’ 태양에너지 캠페인도 인상적이었다. 마을 단위로 눈에 띄게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하도록 유도했더니, 그 효과가 전국적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티핑포인트를 이해하는 데 시사점이 큰 듯하다.
“이 또한 강한 유대의 힘이다. 에너지 소비 행동에 영향을 미친 것은 환경 보호 인센티브도 절약되는 돈도 아니었다. 오직 이웃의 행동 관찰이었다. 마을의 이웃이 지붕에 태양광 전지판을 달자, 줄줄이 이 지속 가능한 새 습관을 채택했다. 그리고 넓은 가교를 통해 한 공동체에서 다음 공동체로 흘러갔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전략은 이 혁신이 뿌리내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를 찾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네트워크 가장자리의 소규모 소셜 클러스터가 티핑포인트를 유발하는 시작점이 된 것이다.”

우문이지만 왜 인간은 각자 독자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걸까.
“인간이라는 종(種)의 존재 방식 자체가 ‘소셜’이다. ‘고독하고 이성적인 행위자’라는 개념은 계몽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가설일 뿐이다. 그것이 ‘인간 행동’의 모델로는 유익했을지 몰라도, ‘인간성’ 모델로는 궁극적으로 틀렸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상호 의존성은 존재하지만, 우리 인간은 상호 의존성을 최상의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는 특별한 동물이다. 언어로 소통하는 기초 능력부터 태양계를 관찰하는 복잡한 능력까지, 인간의 경험은 근본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는 능력과 연결돼 있다. 인류 문명의 기반을 이룬 사람도 타인과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다.”

디지털 지도를 보면,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조차 자신이 정착해서 사는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의외였다. 온라인은 장소의 제약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왜 오프라인처럼 관계를 맺는 걸까.
“이유는 ‘동류 선호’ 때문이다. 모든 상호작용에는 일정한 소통 상대가 필요하고, 대부분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다. 이러한 ‘유유상종(類類相從)’ 패턴은 온라인도 다르지 않았다. ‘같은 부류와 어울리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온·오프라인 상관없이 비슷한 형태의 소셜 네트워크 구조를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잘 모르는 수천 명의 친구에 둘러싸이는 것보다, 결속력이 강한 소수의 친구와 교류하는 게 더 낫다는 데 동의하나.
“그렇다. 넓게 퍼져나가는 약한 유대의 네트워크 속에 있으면 분명 경제적 이득과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 약한 유대가 너무 많은 것은 사회적 자본의 빈곤을 상징한다. 사람은 균형이 필요하다. 성장과 안정의 균형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는 네트워크에 강한 유대가 많은 것이다. 동류와 교류가 많은 소셜 네트워크 속에 사는 사람은 더 오래 살고 성공의 감정을 누리며 사는 경향이 있다. 결국 우리 삶에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연결의 수가 아니라 연결의 패턴이다.”

바야흐로 ‘얼마나 많은 친구와 연결돼 있는가’보다 ‘얼마나 강하고 빈번하게 결속되어 있는가’가 중요한 시대. 센터(중심부)의 ‘센’ 인간보다 ‘가장자리 인간들’의 시대가 왔다. 개인의 행복에 포커스하든, 사회 혁신의 관점으로 보든 다르지 않다.

어쨌든 인간은 작은 단위의 군집에서 서로의 격려를 통해 더 나은 규범,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다정한’ 로컬 애니멀(animal)이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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