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그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활약한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혹독한 연습과 자기 관리로 유명하다. 사진 조선일보 DB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그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활약한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혹독한 연습과 자기 관리로 유명하다. 사진 조선일보 DB

대형서점에 가보면 ‘행복’에 관한 코너가 따로 있다. 행복에 관한 책들이 네댓 개 이상의 서가에 즐비하다. 신간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왜 그럴까. 이것을 의약에 비유하자면, 전문가들이 내놓은 행복을 위한 진단과 처방전이 신통치 못하거나, 환자들이 전문가의 처방이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저마다 다른 느낌과 견해를 갖고 있다. ‘당신은 행복한가요’라고 물었을 때 아마도 백인백색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더구나 행복은 노력하는 것에 비례해서 척척 쉽게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붙잡지 않는 손에만 내려앉는 천국의 새’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말이다.

예전에 나는 예술의전당 안에 있는 모 국립예술단체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때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이 국립발레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부임해 왔다. 내가 일하는 건물에 국립발레단을 비롯해서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등 여러 예술단체의 스튜디오가 있었다. 당시 나는 이런 회원 단체들의 이해관계를 거중 조정하는 단체를 총괄하고 있었다. 자연히 거의 매일 같은 건물에서 단원들을 지도하는 강수진 단장과 마주쳤다. 우리 단체가 단체장들의 정례 오찬을 겸한 회의를 주재했기 때문에 업무적으로도 강수진 단장을 자주 만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뜬금없이 강수진을 거론하는 것은 당시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의 그녀와 교류하면서 ‘행복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취임식장을 가득 메운 하객들 앞에서 강수진의 부임 일성은 이랬다. “내가 보기에 여성 단원들은 기본적으로 잘하고 있는데, 남성 단원 중에는 부족한 이가 좀 있다. 그런 사람은 알아서 조금 일찍 나오든지, 아니면 퇴근 후에 남아서 더 연습해야 할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한국적인 풍토에서는 발레계의 선후배들이 운집해 있고, 특히 직전 단장이 참석한 자리에서는 하기 어려운 직설이자 고언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가 어렸을 적부터 외국에 오래 나가 있었고, 또 외국인과 결혼한 사람이라, 한국적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탓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녀가 이런 서구적인 마인드로 한국의 젊은 단원들과 소통을 잘할 수 있을 것인가 다소 걱정이 됐다. 아니나 다를까 단체장들의 오찬 모임을 위해 연락하면 다른 단체장들은 시간도 조금 여유 있게 비워두고, 메뉴도 다양하게 여러 음식도 맛보면서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모임을 하기를 원했다. 강수진은 달랐다. 평소 시간이 아깝다며 집에서 준비해온 샐러드나 식빵 등으로 간단히 요기하는 그녀는 한사코 예술의전당 안에 있는 레스토랑을 고집했다.

한발 양보한 게 예술의전당 인근 도보 5분 거리 안에 있는 식당이었다. 다행히 연습벌레인 그녀의 스타일을 잘 아는 다른 단체장들이 이를 이해했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없었다. 지독한 연습으로 일그러진 ‘강수진의 발’ 사진은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녀가 빡빡한 스케줄에 쫓기며 발레에만 묻혀 사는 무미건조한 사람은 아니다. 예술가적 감성도 풍부하고 유머 감각도 탁월하다. 한번은 내가 단체 간의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다소 강하게 밀어붙인 적이 있었다. 그녀는 회의가 끝나고 티타임에 내 생일을 물었다. “역시 제 예상대로 사자자리군요!” 그러고는 사자자리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성격이라는 등, 한참을 이야기했다. 일을 조금 유하게 처리해 달라는 메시지를 에둘러 전한 것이다. 그녀가 소통과 공감 능력도 좋다는 말이다.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로 유명한 데즈먼드 모리스는 그의 저서 ‘행복론’에서 행복의 유형을 17가지로 나눈다. 목표의 행복(달성자), 경쟁의 행복(승자), 협동의 행복(조력자), 유전적 행복(친족), 육욕의 행복(쾌락주의자), 대뇌의 행복(지식인), 리듬의 행복(댄서), 고통의 행복(마조히스트), 위험의 행복(위험 무릅쓰는 사람), 선택의 행복(일상사 무시하는 사람), 정적의 행복(묵상자), 독실한 믿음의 행복(신자), 소극적 행복(고통 겪는 사람), 화학적 행복(약물 복용자), 공상의 행복(몽상가), 희극의 행복(웃는 사람), 우연의 행복(행운아) 등이 그것이다.

이런 행복의 유형 중에 강수진은 어디에 해당할까? 내가 보기엔 그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유형은 아마도 ‘목표의 행복’일 것이다. 목표의 행복은 모리스에 의하면 새로운 기획,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 기대하고, 그러한 일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유형이다. 소녀 시절부터 오로지 발레만을 향해 한눈팔지 않고 정주행하고 있는 그녀의 심플한 스타일을 보면 딱 그렇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아시아인 최초 입단, 역시 아시아인 최초의 종신 단원 자격 획득, 세계 유수 발레 콩쿠르 우승 등, 그녀의 피눈물 나는 연습과 승부 근성의 결과를 보면 ‘경쟁의 행복’도 그녀가 속하는 유형이다. 발레리나로서 당연히 ‘리듬의 행복’은 느낄 것이다.

단장이자 예술감독으로서 역시 유명 발레리노였던 남편 툰치 소크멘과 함께 단원들을 지도하는 ‘협동의 행복’, 자식(친족)을 대신하는 반려견과 함께 ‘유전적 행복’, 일상사에 초연해 심플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느끼는 ‘선택의 행복’도 강수진에게 해당할 것 같다.

강수진의 경우처럼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이 부합할 때 행복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많은 전문가는 행복은 돈이나 권력, 지위, 명예 등의 외적인 조건이나 수단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단점까지도 사랑하는 마음, 타인과 사물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사코 자신의 상황과 인간의 본성을 합치시키려 하지 않는다. 반대로 지나친 ‘기대’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행복과는 멀어지는 길을 택한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지나친 목표는 기대치만 높여 목표의 행복이 아니라 목표의 불행을 초래한다. 자신의 타고난 능력이 강수진에 비할 바가 아닌데, 자신의 집안이 현대 정주영 창업주의 집안이 아닌데, 자꾸 자신보다 나은 다른 사람의 외적 조건과 비교하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한다. 타인이나 사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지 못한다.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남의 평가에만 극도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신과 타인을 믿지 못한다.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물을 차갑게만 대하니, 어떤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타인에 대한 신뢰감, 아주 사소한 것 하나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행복의 시작인데 말이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