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해마다 연말이면 와인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리스트가 발표된다. 바로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Top 100’이다. 와인 스펙테이터는 1976년에 창간된 세계적인 와인 전문잡지다. 이들이 매년 12월 특집호에 발표하는 100대 와인 리스트는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10위 안에 든 와인은 우리나라에서도 순식간에 품절 사태를 빚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린다. 2021년 어떤 와인이 영광을 차지했을까. 영예의 주인공들을 만나기 전에 선정 기준부터 알아보자.

와인 스펙테이터는 매 호 와인 평가를 싣는다. 이들이 2021년에 평가한 와인은 약 1만2500종, 이 중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 받은 5000여 종이 후보에 올랐다. 100대 와인은 이들을 다시 가성비, 접근성, 엑스 팩터(X-factor)를 기준으로 심사해 뽑은 리스트다. 가성비는 가격 대비 품질이다.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이 좋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따라서 초고가 와인은 이 조건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2021년 100위 안에는 50달러(약 6만원) 미만이 58종이나 될 정도로 합리적인 가격의 와인이 많다. 접근성은 구매 용이성이다. 아무리 훌륭한 와인이어도 구할 수 없다면 그림의 떡 아니겠는가. 아쉬운 점은 와인 스펙테이터가 미국 회사여서 미국 시장이 기준이라는 점이다. Top 100에 우리나라에 수입되지 않는 와인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마지막으로 엑스 팩터는 소비자의 관심을 끌 만한 특별한 점을 말한다. 신생 와이너리가 출시한 우수한 와인이나 전통적인 와이너리가 선보인 새로운 와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2021년의 경우 Top 100에 처음 이름을 올린 와이너리가 70곳이 넘는다. 이 리스트가 유명 와이너리의 잔치에 그치지 않고 새 와이너리의 화려한 데뷔 무대도 되는 것이 바로 이 엑스 팩터의 작용이다.


1. 도미누스 에스테이트, 도미누스 2018(1위) 2. 샤토 피숑 롱그빌 콩테스 드 라랑드 2018 (2위) 3. 하이츠 셀라, 마르타스 빈야드 2016 (3위) 4. 레 끼우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2016(5위) 5. 루이 라투르, 코르통 샤를마뉴 2018 (6위) 6. 샤토 레오빌 푸아페레 2018(7위) 7. 카발로또, 바롤로 브리꼬 보스키스 2016(8위)
1. 도미누스 에스테이트, 도미누스 2018(1위)
2. 샤토 피숑 롱그빌 콩테스 드 라랑드 2018 (2위)
3. 하이츠 셀라, 마르타스 빈야드 2016 (3위)
4. 레 끼우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2016(5위)
5. 루이 라투르, 코르통 샤를마뉴 2018 (6위)
6. 샤토 레오빌 푸아페레 2018(7위)
7. 카발로또, 바롤로 브리꼬 보스키스 2016(8위)

미국인 사로잡은 각기 각색의 와인

그럼 이제 가장 화제가 되는 Top 10 와인을 만나보자. 이 중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와인은 4위와 9위를 제외하고 총 8종이다. 1위는 어떤 와인이 차지했을까. 도미누스 에스테이트(Dominus Estate)의 도미누스 2018년산이다. 이 와인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명품 와인 샤토 페트뤼스(Château Pétrus)의 소유주 크리스티앙 무엑스(Christian Moueix)가 만들었다. 그는 프랑스인이지만 나파 밸리에 매료돼 1981년부터 도미누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카베르네 소비뇽이 주 품종인 이 레드와인은 힘과 우아함을 모두 갖췄다. 잘 익은 과일의 달콤함이 삼나무, 담배, 향신료 등 다양한 풍미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2024년부터 음용 적기가 시작되므로 지금 구입한다면 셀러에 보관했다 마시기를 추천한다.

3위에도 나파 밸리 레드와인이 올랐다. 하이츠 셀라(Heitz Cellar)의 마르타스 빈야드(Martha’s Vineyard) 2016이다. 이 와인은 나파 밸리의 와인 명가 하이츠와 포도 명가 메이 가문이 50년 넘게 함께 만들어온 명품이다. 하이츠 셀라를 설립한 조 하이츠는 메이 부부가 생산한 포도 맛에 반해 이 와인을 만들었는데 와인 이름을 메이 부부의 아내 이름을 따서 마르타스 빈야드라고 지었다. 이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의 장점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일 향, 꽃과 향신료 향, 보디감, 타닌 등 모든 요소가 아름다운 밸런스를 이루고 있다.

프랑스 와인도 10위 안에 4개나 들었다. 2위를 차지한 샤토 피숑 롱그빌 콩테스 드 라랑드(Chateau Pichon-Longueville Comtesse de Lalande) 2018은 보르도산 레드와인이다. 이름이 유독 긴 데는 이유가 있다. 피숑 롱그빌 백작이 유산으로 포도밭을 5남매에게 고루 나눠줬는데, 아들 형제가 받은 땅은 샤토 피숑 롱그빌 바롱이 됐고 딸 셋이 받은 땅이 바로 이 와인이 생산되는 샤토가 됐다. 여인들의 손길이 오래도록 머물렀기 때문일까. 이 와인은 보르도 와인 중에서도 섬세하고 우아하기로 유명하다. 2030년부터 음용 적기이므로 지금 구입한다면 셀러에서 꽤 오랜 보관이 필요하다.

7위에 오른 샤토 레오빌 푸아페레(Leoville Poyferre) 2018도 보르도 레드와인이다. 1638년에 설립된 이곳은 원래 샤토 레오빌이라는 거대한 와이너리였는데, 포도밭을 자손들이 나눠 상속받고 일부는 다른 가문이 매입하면서 레오빌 라스카스, 레오빌 바르통, 레오빌 푸아페레로 갈라졌다. 모두 보르도의 명장들이다. 그중에서도 레오빌 푸아페레는 진한 과일 향과 묵직하고 부드러운 질감으로 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지금 구입한다면 셀러에서 2~3년 숙성시켰다 마실 것을 추천한다.

6위에는 부르고뉴 와인이 올랐다. 루이 라투르(Louis Latour)의 코르통 샤를마뉴(Corton-Charlemagne) 2018인데 10위 안에 든 유일한 화이트와인이다. 코르통 샤를마뉴는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샤를마뉴의 왕비가 내린 명령에 따라 전통적으로 샤르도네만 재배하는 밭이다. 이 밭에서 생산된 와인은 과일 향이 신선하고 꽃 향과 부싯돌 같은 미네랄 향이 정교하다. 여운에서 길게 이어지는 버터 풍미도 고급스럽다. 10위를 차지한 샤토 드 날리스(Chateau de Nalys)의 샤토네프 뒤 파프(Chateauneuf du Pape) 2018은 프랑스 남부의 따스한 햇살을 담은 듯한 와인이다. 푸근한 보디감에서 블랙베리, 라즈베리, 자두 등 풍성한 과일 향이 화사한 매력을 뽐내며 피어오른다. 지금 마셔도 좋고 2~4년 정도 숙성시켰다 마시면 한층 더 살아난 복합미를 즐길 수 있다.

5위와 8위는 이탈리아 와인에 돌아갔다. 5위에 오른 레 끼우제(Le Chiuse) 2016은 토스카나의 명품 와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를 세계적으로 알린 비온디 산티(Biondi-Santi) 가문의 외손녀가 만든 와인이다. 레 끼우제는 원래 비온디 산티에 포도를 제공하던 농가였지만 1992년부터 직접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농익은 과일의 달콤함과 꽃, 미네랄, 담배 등 복합미가 탁월하고 질감이 실크처럼 매끄럽다. 8위에 오른 바롤로 브리꼬 보스키스(Bricco Boschis) 2016은 피에몬테 지역에서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 카발로또(Cavallotto)가 만든 와인이다. 탄탄한 보디감, 체리와 레드 커런트 등 신선한 베리 향, 타임, 버섯, 민트 등이 자아내는 우아함이 클래식한 바롤로(Barolo) 와인의 전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