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오하시 유이가 2021년 7월 도쿄 올림픽(2020 도쿄 올림픽) 여자 개인혼영에 걸린 2개의 메달을 독식했다. 사진 국제수영연맹(FINA)
일본의 오하시 유이가 2021년 7월 도쿄 올림픽(2020 도쿄 올림픽) 여자 개인혼영에 걸린 2개의 메달을 독식했다. 사진 국제수영연맹(FINA)

골프는 오랫동안 백인 스포츠였고 골프장은 백인 남성의 놀이터였다. ‘꿈의 무대’라 불리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에 흑인 선수가 출전한 것은 1975년이 처음이었다. 그때까지 흑인은 오직 캐디로서만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1997년 유색인종으로는 처음 마스터스를 정복한 것은 이런 점에서 극적 사건이었다.

인종 차별보다 더한 게 여성 차별이었다. 2019년 오거스타내셔널 위민스아마추어(ANWA) 대회가 열릴 때까지 여자 선수들은 TV를 통해 마스터스의 남자 선수를 구경하는 데 그쳤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이 흑인을 회원으로 받아 준 것은 1990년이었고 여성 회원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은 2012년이 돼서였다. 한국 여자골프는 백인이 쥐락펴락하던 골프 무대에 뛰어들어 왕조(dynasty)를 구축한 독특한 경우다. 인종과 성의 거대한 성벽을 넘어서자 블루오션의 신세계가 열렸다.

이번 기획을 함께한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일본 수영은 1920년대 ‘우리는 하기 힘들 것’이라고 보았던 종목에서 기대를 뛰어넘는 성취를 이룬 개척자를 따라 잠재력이 꽃핀 개척 시대를 갖고 있다”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과정은 한국 여자골프에도 많은 영감을 준다”고 했다.

일본의 올림픽 4대 전략 종목은 유도, 레슬링, 체조와 수영이다. 이 가운데 수영은 무려 80개의 메달을 일본에 선사한 종목이다. 특히 일본은 평영 부문에서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의 올림픽 전통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해양 국가 일본의 수영 역사는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쓰루타 요시유키가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해병대에 입대한 뒤 본격적으로 수영 훈련을 할 수 있었던 그는 1928년 올림픽 평영 2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면서 우승을 차지했고 4년 뒤 올림픽에서 평영 200m 2연패를 달성했다. 자유형, 접영에 비해 신체 사이즈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종목인 평영이 일본의 올림픽 효자 종목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이때 싹트기 시작했다.

일본은 1928년 올림픽 이후 수영에 관심을 두게 됐다. 이때까지 전국에 두 개밖에 없던 수영 경기장도 차츰 늘어났다. 하지만 일본 수영장의 수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게 된 계기는 비극적인 사고 때문이었다. 1955년 수학여행 중인 아이치현 초등학생들과 고치현 중학생들을 태운 시운마루호가 다른 배와 충돌해 16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일본 문부성은 전국 학교의 수영 교육과 수영장 시설 확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의 수영장 보유율은 공립학교의 경우 90%에 이른다.

어릴 적 학교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운 학생 가운데 수영 엘리트를 꿈꾸는 선수도 자연스럽게 증가해 현재 일본 수영 엘리트 선수는 12만 명을 넘어선다. 한국의 수영 엘리트 선수가 4000명이 채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다.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수영을 접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에서 자연스레 유망주들이 꽃을 피우는 시스템이 갖춰진 것이다.

일본이 수영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수영 영법의 기술 혁신이었다. 일본 수영이 주목한 것은 한 번 팔을 휘저을 때마다 전진하는 거리를 의미하는 ‘스트로크당 거리’였다. 당시 수영계는 몸의 회전을 최소화하는 게 기록 단축을 위해 중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일본은 오히려 어깨를 살짝 회전시키는 것이 스트로크 거리를 늘려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에 일본 수영은 신체적 조건이 뛰어난 서구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 킥 스타일도 집중 연구했다. 앞으로 나가는 추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킥 스타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에하타 히데코가 평영 200m 금메달을 획득했다. 마에하타의 금메달에는 스트로크 거리와 킥 스타일에 대한 연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쓰루타와 마에하타의 금메달은 스포츠를 통한 ‘탈아입구(脫亞入歐)’ 신화 창조에 목말라 있던 일본 사회에서 수영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두 선수의 금메달이 모두 평영에서 나오면서 평영은 일본 수영의 전략 종목이 됐다. 지금까지 일본이 올림픽 수영 부문에서 획득한 금메달 22개 중 12개가 평영에서 나왔다.

쓰루타와 마에하타 이후 일본 수영은 간간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냈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이 때문에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과학적 훈련과 기술 혁신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 같은 약점을 극복한 선수가 1988년 서울 올림픽 배영 100m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스즈키 다이치였다. 그는 매우 긴 거리를 잠수해 양손을 앞으로 뻗은 상태에서 돌핀 킥을 시도하는 ‘바살로’ 기술로 일본 수영의 부활을 알렸다. 이후 기타지마 고스케가 2000년과 2004년 올림픽에서 각각 2관왕(평영 100m, 200m)에 오르면서 평영의 황제가 됐다. 기타지마는 일본 수영 선수 가운데 최초로 심리, 체력 등 전문 코치를 포함한 전담팀인 ‘팀 기타지마’의 지원을 받았다. 그는 이들 스태프의 도움으로 그의 전매특허인 돌핀 킥을 과학적으로 적용시켜 기록 향상에 활용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기타지마가 턴 이후 돌핀 킥을 자주 구사하자 수영 최강국인 미국 선수단이 공식 항의를 하고 나섰다. 기타지마 돌핀 킥의 위력을 방증하는 대목이었다. 국제수영연맹은 ‘턴 동작 이후 단 한 번의 돌핀 킥만 허용한다’라는 규정을 만들어 절충했다. 내용적으로는 기타지마의 턴 이후 돌핀 킥이란 신기술을 보호해 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 일본 수영의 강세 종목은 평영에서 개인혼영으로 바뀌고 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 하기노 고스케는 남자 400m 개인혼영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오하시 유이가 여자 200m와 400m 개인혼영에서 우승하며 2관왕에 올랐다.

접영, 배영, 평영, 자유형 순서로 이어지는 개인혼영 경기는 만능선수가 아니라면 좋은 기록을 낼 수 없는 종목이다. 특히 평영은 자유형, 접영, 배영이 주 종목인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하는 종목이다. 평영 강국 일본이 개인혼영을 전략 종목화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디어의 지속적인 관심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수영 발전의 버팀목 중 하나다. NHK의 일본 수영에 대한 관심은 특별하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 방송의 첫 해외 스포츠 중계가 수영이기 때문이었다. 1949년 일본의 수영 영웅 후루하시 히로노신은 미국에서 펼쳐진 대회 자유형 1500m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고 이 결과를 라디오 생중계로 들었던 일본인은 감격했다. 이후 NHK는 주요한 국내외 수영 대회 중계를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골프를 즐기는 이들이 크게 늘었지만 고비용 구조로 생활 스포츠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2020년 한국여자오픈 연습 그린에서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 사진 민학수 기자
골프를 즐기는 이들이 크게 늘었지만 고비용 구조로 생활 스포츠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2020년 한국여자오픈 연습 그린에서 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 사진 민학수 기자

골프도 생활 스포츠 만들자

한국 여자골프는 맨발 투혼으로 상징되는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과 100여 년 만에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부활한 리우 올림픽에서 박인비가 금메달을 따면서 국민적 자긍심을 일깨우는 스포츠가 됐다. 스크린골프와 코로나19로 인한 골프 특수 이후 더 많은 사람이 즐기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기엔 턱없이 비싼 고비용 스포츠의 한계가 발목을 잡는다. 많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골프에 어릴 때부터 누구나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생활 스포츠의 날개를 달아준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일본 수영이 먼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