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K-POP스퀘어 미디어 대형 전광판에 2022년 임인년(壬寅年)을 상징하는 흑호(黑虎) 미디어아트가 상영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K-POP스퀘어 미디어 대형 전광판에 2022년 임인년(壬寅年)을 상징하는 흑호(黑虎) 미디어아트가 상영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2021년 우리의 소원/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소!/ 2022년 범 내려온다!/ 모범, 대범, 비범 아니고/ 일상의 평범/ 어서 와 평범!”

이것은 시가 아니다. 지난해 연말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있는 K-Pop 스퀘어 미디어에서 상영되고 있는 동영상의 카피다. 올 3월 말까지 계속 상영할 모양인데 호소력 있는 영상이다. 신축년을 상징하는 소가 퇴장하고 임인년을 상징하는 호랑이가 등장하는 모습을 그렸다. ‘소’와 호랑이 즉 ‘범’의 운을 살려 코로나19 시국에 지친 시민의 마음을 달래면서도 우리의 소망을 잘 담았다.

평범한 일상. 이 말이 이렇게도 귀하고 감사한 것인지 우리는 정말 예전엔 미처 몰랐다. 코로나19라는 돌림병이 천하 강산을 휩쓴 지도 어언 2년이 지나고 있다. 이 흉흉한 세월이 하루빨리 지나가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온 인류의 간절한 소망일 것이다.

대략 이런 취지의 말을 위에서 말한 동영상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 글과 동영상을 본 어떤 페이스북 친구가 묻는다. “진짜 검은 호랑이가 있어요?” 오행상으로는 임인년(壬寅年)의 인(寅)은 호랑이를 뜻하고, 임(壬)이 북방의 검은색을 상징하기 때문에, 동영상 속의 호랑이도 검은 호랑이로 묘사된 것을 보고 한 말이다. 나는 다른 말 없이 인도의 숲에 7~8마리 서식하고 있다는 기사를 링크해 보여줬다. “아, 원래 있군요!”

전통적으로 우리는 ‘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라고 하여 흰 호랑이를 높이 쳤지만 검은 호랑이도 있다. 사실 포유동물의 털 색깔은 멜라닌 색소에 의해 정해진다. 멜라닌에는 검은색, 갈색의 유멜라닌과 빨간색, 노란색의 페오멜라닌 두 종류가 있다. 이 두 색소가 어떤 비율로 배합되느냐에 따라서 백호, 흑호가 정해진다. 백호는 페오멜라닌 색소가 부족한 것이고, 흑호는 유멜라닌 색소의 과도한 배합으로 생겨난 것이다.

우리 인류는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살아남거나 번식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과 구별되게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본능 중의 하나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지해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들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본능’이다.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 바람과 구름과 비 등을 비롯해서 각종 동식물 등의 요소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삶과 행동에서도 의미를 찾거나 부여하려고 한다. 이때 의미를 상징이란 말로 바꿔도 좋다. ‘호모 심볼리쿠스’ 즉 인간은 상징을 만드는 존재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먼 조상들은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을 지켜보고, 또 조류의 흐름을 오랜 시간 관찰했다. 그 과정에서 하루보다 더 큰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게 됐고, 그것들을 개별적인 단위로 하는 역법(曆法), 즉 캘린더까지 만들었다. 태양의 운동을 위주로 하는 태양력, 달의 움직임을 따른 태음력 등이 그런 결과물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각종 캘린더는 다양하게 활용됐다. 서양에서는 별자리에 인간의 생년월일을 배당하기도 한다. 양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사자자리 등이 그것이다. 동양에서는 시간과 방위에 12동물을 대응시키는 경우가 생겨났다. 이를 십이지(十二支)라고 하는데 쥐, 소, 범, 토끼 등 12가지 동물이 여기에 해당한다.

잘 알다시피 필수 요소들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본능은 각 동물의 특성을 가지고 해당 연도나 그해에 태어난 사람의 운명을 설명하려는 데까지 확대된다. 고대에 시작된 이런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인도 여전히 사자좌에 태어난 사람은 이렇고, 호랑이띠의 운명은 저렇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가.

유럽인에게 호랑이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가 페르시아제국을 무너뜨리고 인도까지 동방 원정을 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유럽에 호랑이가 처음 유입된 것은 기원전 19년 인도의 사신이 로마 황제에게 호랑이를 헌상했을 때였다. 다만 유럽인에게 비친 호랑이의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인 편이다.

반면 동양인에게 호랑이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다. 특히 우리 한국인은 예로부터 십이지 동물(Zodiac Animal) 중에서 호랑이를 으뜸으로 친다. 호랑이는 동물의 왕으로서 강인한 생명력과 에너지를 상징한다. 용맹함과 보호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은 먹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고고한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시베리아 호랑이, 아무르 호랑이로 불리는 호랑이를 우리 민족은 ‘백두산 호랑이’라고 따로 불러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민족의 정기를 지닌 백두산이 ‘신령한 산(靈山)’이라면 백두산에 사는 호랑이는 ‘신령한 동물(靈物)’이라고 본 것이다.


임인년, 범이 코로나19 물고 가버렸으면…

조선시대 그림에는 호랑이를 산신령(山神靈)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호랑이가 위엄 있고 신비로운 존재였고, 그런 호랑이의 위용을 빌려서 나쁜 것을 물리치고(辟邪) 안전하게 보호도 받고 싶은 소망을 담은 것 같다. 나중에는 호랑이가 산신의 위치에서 격하되어 호랑이를 거느린 백발노인의 시종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호랑이의 상징성까지 변한 것은 아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폰태너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회의 신화, 미술, 종교에 동물 상징의 표현이 풍부하다는 것은 동물이 인간 행동에 미치는 본능적이고 정서적인 강력한 영향력을 인정하는 것이다.”

조상들에게 호랑이는 신령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이중의 상징성을 띤 영물이었지만, 오늘날은 좀 사정이 다르지 않을까? 아마 호랑이가 멸종 위기에 놓인 희귀동물로 보호받고 있는 데다가, 법적으로 금지되어서 그렇지, 요즘 사람 중에는 법적으로 허용이 된다면 호랑이를 기꺼이 반려동물로 받아들일 사람이 제법 많을 것이다. 

옛날 가장 큰 욕 중 하나는 ‘호랑이가 물어 갈 놈’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호랑이를 잡는 군대인 착호군(捉虎軍)이라는 별도의 직제가 있을 만큼 호랑이로 인한 우환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민가에 침입해 사람을 해치는 일이 빈번해서 체제 안정을 위협할 정도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가장 무서운 것의 대명사로 ‘호환마마(虎患媽媽)’라는 말까지 생겨났겠는가. ‘호환’이란 호랑이 때문에 생긴 걱정거리라는 뜻이고 ‘마마’는 천연두를 말한다.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천연두는 오늘날의 코로나19와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무서운 감염병이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임인년 새해에는 범이 내려와서 마마를, 아니 코로나19를 물고 가버렸으면 좋겠다. 동영상의 문구처럼 정말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