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추곶의 거친 파도. 사진 최갑수
용추곶의 거친 파도. 사진 최갑수

울진이라고 하면 으레 ‘오지’를 생각한다. 고속도로가 닿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더욱이 높은 산으로 막혀 있어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야 하니 큰맘을 먹지 않고서는 울진으로 여행을 간다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울진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가깝다. 영동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를 이용해 7번 국도를 따라 내려가면 4시간이 채 소요되지 않는다.

경상북도 울진 여행의 시작은 죽변항이다. 예로부터 화살을 만드는 재료였던 소죽(小竹)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죽변등대가 자리한 야트막한 산에는 소죽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겨울 울진의 주인공은 단연 대게다. 죽변항에는 이맘때쯤 대게가 넘쳐난다. 어부들은 새벽부터 바다로 나가 대게 그물을 걷어 올린다. 울진 대게의 본거지는 후포항에서 23㎞ 떨어진 왕돌초(王乭礁). 3개의 거대한 봉우리가 남북으로 54㎞, 동서로 21㎞ 규모로 형성된 수중 암초다. 울진 사람들은 ‘동해의 심장’이라 부른다. 이곳에서 잡힌 대게는 살이 실하고 특유의 맛과 향이 강해 인기다.

죽변항이 활기를 띠는 시간은 오전 7시부터. 대게잡이 배가 줄지어 들어오고 상인과 경매인들이 몰려든다. 선착장에는 대게가 부려진다. 대게는 4열 5행으로 모두 20마리씩 한 분대를 만들어 사열하듯 늘어서 있다. 게다가 반드시 뒤집어서 놓는다. 그러지 않으면 바다로 도망가 버린다.

‘사열’을 마친 대게는 곧바로 경매에 부쳐진다. 경매인들은 종을 치며 대게가 줄지어 널려 있는 경매장을 돌아다닌다. 대게 상인들은 경매인들을 쫓아다니며 대게를 산다. 이 모든 과정은 순식간에 시작됐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난다. 값이 매겨진 대게가 아이스박스에 담겨 차에 실려 가기가 무섭게 다른 배가 대게를 부려놓는다.

대게 가운데 으뜸은 박달게다. 박달나무처럼 속이 단단하게 들어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집게다리에 원산지, 상호, 전화번호가 적힌 명찰을 차고 있는 놈을 고르면 속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값이 비싸다. 대게를 고를 때는 우선 몸보다 다리가 긴 것을 택해야 한다. 먹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들어봐서 다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싱싱하며 다리가 붉은빛을 띠고, 게 뚜껑에 검은 딱지가 많이 붙은 것일수록 영양가가 높다. 또 같은 크기라면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속이 알차다는 뜻이다.

대게는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고 쪄서 먹기 때문에 특별한 맛집이 없다. 대게만 잘 고른다면 여느 집이나 그 맛이 비슷하다. 대게를 주문하면 20여 분 후에 커다란 쟁반에 대게를 담아온다. 손님 앞에서 종업원이 대게를 손질해 준다. 대게를 다 먹고 난 후 맛보는 대게 매운탕과 게 껍데기에 담은 볶음밥도 별미다.

울진의 또 다른 겨울 별미는 곰치국이다. 밤샘 작업을 한 뱃사람들이 아침 해장국으로 먹던 곰칫국은 ‘물곰탕’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시원한 국물 맛에 겨우내 추위에 꼬였던 창자가 기지개를 켠다. 곰치는 동해안에서 고루 잡히지만 울진 근해에서 잡히는 놈이 크고 맛있어 몸값도 비싸다. 버릴 것도 없다. 머리와 껍질, 내장, 등뼈, 알 등이 탕 재료에 들어간다. 회로 먹어도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7번 국도를 따라가다 만난 어촌. 사진 최갑수
7번 국도를 따라가다 만난 어촌. 사진 최갑수
죽변 해변. 사진 최갑수
죽변 해변. 사진 최갑수
용추곶의 일출. 사진 최갑수
용추곶의 일출. 사진 최갑수

가슴 시원한 바다 드라이브

죽변항에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죽변등대 아래쪽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는 SBS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세트장이다. 드라마의 주인공 현준과 현태의 집과 교회당, 선착장, 대나무 숲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바닷가 작은 마을은 1910년에 세워진 하얀 등대까지 어우러져 이국적인 정취가 그만이다. ‘세트장이 거기서 거기지’ 하고 가보지 않는다면 아까운 그림 하나 놓치는 셈이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이국적이고 아름다워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엽서에나 나올 것 같은 주황 지붕의 예쁜 교회당이 서 있고 아래쪽에 아담한 집이 자리 잡고 있다. 교회당과 집 뒤편으로는 드넓은 바다가 아득히 펼쳐진다.

사진만 찍고 후다닥 떠나기에는 풍경이 정말 예쁘다. 선착장에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갈매기가 앉았다가 날아가고 파도가 밀려온다. 하늘은 푸르고 바다도 푸르다. 수평선을 따라 고깃배가 지나간다. 힘껏 심호흡해본다. 가슴속으로 맑고 차가운 바닷바람이 가득 들어찬다.

내친김에 바다를 더 보기로 했다. 죽변항에서 917번 지방도를 따라 망양정까지 간다. 멋진 해안도로 드라이브 코스다. 차창 왼편으로 드넓은 바다가 내내 펼쳐진다. 해안을 할퀴는 파도가 거세다. 갯바위마다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서 있다.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바닷가로 내려가 빈 백사장을 걸어본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망망대해. 바위에 때리는 파도가 장관이다.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울진 바다 경치를 감상하기에는 관동팔경 중 하나인 망양정과 월송정이 좋다. 망양정은 조선 숙종이 ‘관동 제일의 누’라는 친필 편액을 하사할 정도로 해안선과 바다의 풍광이 일품이다. 월송정은 관동팔경 중 가장 남쪽에 있다. 고려 시대에 처음 지어진 오래된 누각인데 신라의 화랑들이 소나무 숲에 모여 달을 즐겼다 해서 월송정이라 이름 붙었다. 송강 정철이 ‘정자 위에서 바라보는 송림과 명사십리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우거진 송림과 명사십리의 황홀한 풍취가 가히 명승지로 손꼽힐 만하다.

울진 여행에서 온천욕을 빼놓을 수 없다. 덕구온천은 국내 단 한 곳뿐인 자연 용출 온천. 원탕에 직접 연결돼 있으니 수질만큼은 최상이다. 응봉산 줄기에서 종일 솟아 나오는 온천은 그 온도 그대로 탕을 찰랑찰랑 채운다. 온천수는 42.2℃의 약알칼리성으로 피부에 좋은 탄산수소나트륨과 칼륨, 탄산 등이 많이 함유되어 근육의 피로를 푸는 데 탁월하다. 온정면의 백암온천은 유황이 다량 함유된 국내 유일의 방사능천으로 피부병, 신경통, 부인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신라 때 한 사냥꾼이 창에 맞은 사슴을 쫓다가 날이 저물어 찾지 못했는데, 다음 날 따뜻한 물이 샘솟는 곳에 누워 있는 사슴을 찾으면서 온천을 발견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1997년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영동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를 이용해 동해까지 간 뒤 7번 국도를 타고 바다를 끼고 울진으로 가는 것이 좋다. 돌아올 때는 봉화와 영주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이 동선을 따른다면 불영사에 가볼 수도 있다.


▒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최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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