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와인 수입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더니 2021년에는 더 증가해 지난해 11월 통계에 따르면 수입액이 무려 76%나 늘었다고 한다. ‘홈술’이나 ‘혼술’에는 역시 와인이 제격인 걸까.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와린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와인과 어린이의 합성어로 와인 초보자를 뜻하는 말이다.

필자의 주위에도 호기심에 마셨다가 의외로 입맛에 맞아 와인에 진심이 됐다는 사람이 제법 많다. 그런데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와인이 어렵다는 것이다. 책이나 인터넷을 찾아보면 보디감이 묵직하다는 둥 커피와 초콜릿 향이 난다는 둥 설명이 장황한데, 왜 본인이 마실 땐 와인 맛이 다 거기서 거기인 건지. 혹시 자신의 감각이 둔해서 그런 건 아닌지 궁금해한다.

와인은 무턱대고 마시기보다 맛보는 방법을 알고 즐기면 훨씬 이해가 빠르다. 간단한 테이스팅 기술 몇 가지만 익혀도 얼마든지 와린이 탈출이 가능하다.


입에 머금고 와인의 단맛, 신맛, 떫은맛, 보디감 느끼기

우선 와인을 마실 때 곧바로 삼키지 말고 잠시 입에 머금은 채 와인이 입안 구석구석 닿도록 우물거리는 습관부터 들여 보자. 와인의 맛과 향이 훨씬 더 잘 느껴진다.

우리 입은 와인에서 단맛, 신맛, 떫은맛, 보디감을 느낀다. 레드 와인은 대부분 단맛이 없고 드라이하다. 간혹 약간 달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대게는 향이 진하고 달콤해서 맛이 달다고 착각하는 경우다. 화이트 와인은 레드 와인에 비해 단맛이 나는 것이 많지만 이 역시 드라이한 것이 대다수다.

신맛은 침샘에 느껴지는 자극으로 강도를 구분하는데, 신맛이 강하면 침샘이 시큰하면서 입안에 계속 침이 고인다. 평소 그다지 시지 않다고 느꼈던 와인을 침샘의 반응을 자세히 관찰하며 마셔 보자. 의외로 강한 자극이 느껴질 수 있다. 달콤한 풍미와 신맛의 균형이 좋아 그동안 신맛을 못 느꼈던 것이다. 잘 만든 와인일수록 그런 경우가 많다.

떫은맛은 와인의 타닌 성분에서 나오는데, 엄밀히 말하면 맛이 아닌 질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타닌을 자주 접한다. 커피나 녹차에서 느껴지는 씁쓰름하고 텁텁한 맛이 바로 타닌이다. 타닌은 주로 레드 와인에 있다. 와인을 마실 때 잇몸과 혀가 마르는 느낌이 강할수록 타닌이 많은 와인이다. 그런데 와인의 타닌도 여러 가지다. 실크처럼 매끄러운 것이 있는가 하면 벨벳처럼 포근한 것도 있고 스판덱스처럼 짱짱한 것도 있다. 레드 와인을 즐기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타닌의 질감이 구분되기 시작한다. 이때가 바로 레드 와인에 사로잡히는 순간이다. 빠져나오기 힘든 마성의 매력이다.

보디감은 와인을 머금었을 때 입안을 채우는 양감이다. 우유의 경우 지방을 전혀 빼지 않은 전지유가 지방이 없는 탈지유에 비해 훨씬 더 묵직하다. 맥주도 카스는 가볍고 기네스는 묵직하다. 보디감의 차이가 확연하다. 와인도 자주 마시다 보면 보디감을 구분하는 기준이 내 안에 자연스레 생긴다. 입맛이 섬세해진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든다.


와인 숙성 따라 다채로운 향 느끼기

우리는 와인을 마시면서 동시에 향도 느끼지만 사실 향은 입이 아닌 코가 감지한다. 와인을 마시기 전에 코로 먼저 향을 음미하는 습관을 들여 보자. 와인 잔을 천천히 돌려 잔 안쪽 면에 와인을 고루 묻히면 와인의 증발이 활발해져 잔 속에 향이 한층 더 빨리 생성된다. 이왕이면 큰 잔을 이용하고 와인을 잔의 3분의 1만 채우면 스월링(swirling·잔을 돌리는 것)을 하기도 편하고 잔 속에 향이 가득 담겨 향을 느끼기가 더 쉽다.

레드 와인에는 체리나 딸기, 화이트 와인에는 레몬이나 파인애플 향이 많다. 분명 포도로만 만드는데 와인에서는 다른 과일 향이 나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발효와 숙성의 마법이 아닐 수 없다. 와인의 향은 포도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같은 품종으로 만들어도 생산지와 빈티지(vintage·포도를 수확한 해)에 따라 또 달라진다.

숙성도 향을 변화시킨다. 와인은 생산된 지 얼마 안 된 영 빈티지일수록 과일 향이 신선하고 올드 빈티지일수록 풍미가 복잡해진다. 이를 복합미라 하는데 오래 묵은 화이트 와인에서는 꿀과 견과류, 레드 와인에서는 담배, 가죽, 버섯 등의 풍미가 발달해 우아함이 극에 달한다. 이런 맛에 한 번 매료되면 한동안 올드 빈티지를 찾아 헤매는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


와인 잔 기울여 색 관찰하기

색을 감상하는 것도 와인을 즐기는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다. 맑고 영롱한 빛깔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색에는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와인 잔을 살짝 기울여 가장자리와 중심부의 색을 관찰해 보자.

레드 와인의 가장자리 색은 와인의 나이를 말해준다. 대부분 루비 빛이지만 영 빈티지는 보라색이 감돌고 올드 빈티지일수록 벽돌색이나 갈색을 띤다. 중심부의 색으로는 보디감을 판별할 수 있다. 화이트 와인은 중심부의 색이 물처럼 옅을수록 보디감이 가볍고 노란빛이 진할수록 묵직하다. 오래 숙성된 화이트 와인은 호박색이나 연한 갈색을 띠기도 한다. 레드 와인도 중심부의 색이 옅을수록 가볍고 타닌이 적으며 진할수록 묵직하고 타닌이 많다. 와인을 잘 몰라도 색만 잘 관찰하면 곁들일 음식을 정하기가 쉽다. 묵직한 레드 와인에는 소고기나 양고기처럼 지방이 많은 고기가, 가벼운 레드 와인에는 닭고기 같은 가금류가 잘 맞는다. 화이트 와인은 주로 해산물이나 채소와 즐기지만, 보디감이 묵직한 것은 닭고기나 돼지고기와 더 잘 어울린다.


테이스팅 기술 익히기 위해 스타일 다른 와인 비교하기

테이스팅 기술을 빨리 익히고 싶다면 스타일이 대비되는 두 와인을 나란히 놓고 비교 시음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레드 와인 중에는 프랑스산 피노 누아(Pinot Noir)와 호주산 시라즈(Shiraz)가 비교하기 좋은 한 쌍이다. 피노 누아는 가볍고 딸기나 라즈베리 등 과일 향이 상큼하며, 시라즈는 묵직하고 검은 자두나 블랙베리처럼 과일 향이 달콤해 차이가 극명하다. 화이트 와인은 뉴질랜드산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과 미국산 샤르도네(Chardonnay)를 비교해 보자. 소비뇽 블랑은 가볍고 풀 향이 신선하며, 샤르도네는 묵직하고 파인애플과 복숭아 등 과일 향이 풍성하다.

피아노를 배울 때 처음엔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지만 꾸준히 연습하면 어려운 곡도 연주하게 되는 것처럼 와인도 테이스팅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점점 더 잘 느끼게 된다. 사람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다른 맛을 보여주는 와인은 그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테이스팅은 그 사연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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