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016년 리우 올림픽 여자 체조에서 시몬 바일스를 앞세워 무려 네 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최강국의위치를 차지했다. 사진은 당시 바일스의 연기 모습. 사진 셔터스톡
미국은 2016년 리우 올림픽 여자 체조에서 시몬 바일스를 앞세워 무려 네 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최강국의위치를 차지했다. 사진은 당시 바일스의 연기 모습. 사진 셔터스톡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듯 나비처럼 날아오르고 어떤 환경에서도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는 앳된 소녀들의 신비로운 모습. 올림픽 인기 종목 중 하나인 여자 체조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자유를 표현하는 예술로 비친다. 하지만 요정이 노니는 듯한 이런 장면을 빚어내기 위해서는 0.001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치밀한 구성과 혹독한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여자 체조의 주도권을 놓고 이념 전쟁의 양대 세력을 대표하는 구(옛)소련과 미국이 지금까지도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번 기획을 함께한 이종성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혹독한 훈련량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여자 체조에서 먼저 성공을 거둔 것은 어린 유망주를 모아 기계적인 반복이 가능할 정도로 집중 훈련하는 구소련과 동유럽의 엘리트 스포츠 모델이었다”며 “2000년대 여자 체조의 패권을 잡은 미국 시스템의 바탕에도 이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후유증도 심각했다”고 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른 올가 코르부트는 여자 체조 선수로 서구 미디어를 통해 ‘요정’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최초의 선수였다. 키 155㎝, 몸무게 38㎏인 17세 꼬마 요정의 깜찍한 연기는 여자 체조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코르부트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루 운동에서 텀블링 동작 이후에 자신의 몸을 플로어에 던지는 듯한 기술을 가미해 관객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그녀가 ‘체조 요정’으로 불린 이유는 신기의 기술을 선보이고서 터져 나오는 천진난만한 미소였다. 이와 같은 ‘스마일’은 구소련 여자 체조 선수들이 훈련을 통해 학습하는 부분이었다. 조그마한 빈틈도 놓치지 않으려는 소련 여자 체조의 디테일한 접근 방식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코르부트의 코치는 “항상 웃어라. 그렇지 않으면 관중은 너의 (연기를 보며) 고된 훈련 과정을 떠올릴 것이고 너에 대한 환상도 사라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심판들에게 높은 예술 점수를 얻기 위해서라도 활짝 웃는 표정을 잊지 말라는 의미였다.

1952년 헬싱키 대회부터 1980년 모스크바 대회까지 올림픽 여자 단체 8연패를 차지한 구소련 여자 체조의 비밀은 공산주의 스포츠 시스템을 통한 완벽한 기술 추구에 있었다. 구소련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체조 유망주들을 이른 나이부터 주요 거점 스포츠 클럽으로 불러들여 집중적인 훈련을 시켰다. 이는 구소련의 다른 모든 종목에 해당하는 부분이었지만 특히 여자 스포츠 부문에서 큰 효과를 봤고 그 가운데 대표적 종목이 체조였다.

구소련 선수들의 체조 훈련은 혹독했다. 흠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때까지 고된 훈련은 반복적으로 계속됐고 이 훈련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선수는 곧바로 또 다른 유망주로 교체됐다. 이 때문에 구소련에서는 “체조 선수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코르부트의 등장은 여자 체조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발레리나와 같은 여성미를 보여주는 여자 체조 선수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대신 사춘기에 채 접어들지 않은 앳된 표정의 소녀 체조 선수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들은 과거 여자 체조 선수들보다 더 키가 작았고 가냘픈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구소련의 여자 체조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루마니아 출신의 체조 요정 나디아 코마네치의 등장으로 빛을 잃기 시작했다. 코마네치는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구소련의 한국계 체조 스타 넬리 킴과 경쟁했다. 두 선수 모두 몬트리올에서 올림픽 체조 역사상 처음으로 10점 만점 연기를 선보였을 정도로 구소련과 루마니아의 경쟁은 치열했다. 루마니아의 화려한 등장은 여자 체조 왕조가 구소련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루마니아의 카로이 코치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심판들이 구소련 선수들에게만 후한 점수를 줬다는 이유로 판정에 불만을 제기했다. 공산권의 지배자 소련의 눈치를 봐야 했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은 카로이 코치에게 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루마니아 정부의 이 같은 결정에 반기를 들었던 카로이 코치는 그의 부인과 함께 1981년 미국으로 망명해 세계 체조의 중심축을 동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시켜 놓았다.

그는 구소련을 위시한 동유럽이 독점해 왔던 여자 체조 기술을 미국에 이식시켰다. 동유럽 스타일의 혹독하고 반복적인 훈련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음식 섭취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카로이 코치는 1984년 LA 올림픽에서 미국 여자 체조를 세계 정상으로 이끌었다. 그전까지 그저 그런 미국의 대학 스포츠 종목 중 하나였던 여자 체조는 이때부터 인기를 끌게 됐다.

특히 LA 올림픽을 빛낸 미국의 체조 여왕 메리 루 레튼의 자유분방한 연기와 무대 매너는 여자 체조의 인기를 한층 더 높였다. 마치 미국 대학 스포츠 경기에서 치어리딩을 하는 듯한 그녀의 연기는 카로이 코치로부터 터득한 완벽한 기술과 어우러지면서 미국식 여자 체조 스타일의 원형이 됐다.

선수를 기계처럼 다루는 카로이의 훈련 방식은 미국에서 자주 문제가 됐다. 하지만 구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전유물이었던 여자 체조에서 계속 나온 미국의 올림픽 금메달 덕분에 비난의 목소리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올림픽 금메달의 마법이었다.

미국 여자 체조는 2004년부터 지난 2020년까지 여자 체조 개인 종합 부문에서 모두 금메달을 석권했다. 2012년과 2016년 올림픽에서는 여자 단체까지 휩쓸었다. 특히 2016년 리우 올림픽 여자 체조에서 미국은 흑인 체조 스타 시몬 바일스를 앞세워 무려 네 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명실상부한 여자 체조 최강국의 위치를 차지했다.

이런 영광 뒤에는 짙은 그림자가 있었다. 미국 체조 대표팀과 미시간 주립대에서 30년간 팀닥터로 활동했던 래리 나세르가 수백 명의 선수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밝혀져 2018년 175년형을 받았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미국 체조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존 게더트는 나세르의 성추행을 방조했을 뿐만 아니라 성폭행과 인신매매를 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졌다.

오랜 기간 미국 체조 대표팀을 둘러싼 성범죄가 가능했던 것은 선수의 인권보다 올림픽 메달과 기업의 후원에 눈이 먼 미국체조협회의 방조가 있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있는 국가대표 체조팀 훈련 센터는 카로이의 이름을 딴 카로이 랜치였다. 이 훈련장은 2018년 나세르 사건의 여파로 영구폐쇄됐다. 이 훈련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엄격한 규율과 억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여자 선수들이 나세르의 성범죄 사실을 제대로 폭로하지 못했다는 증언까지 나오면서 카로이는 성범죄의 숨은 방조자라는 꼬리표까지 달게 됐다. 카로이가 창조한 미국 여자 체조의 달콤한 ‘승리 지상주의’ 모델에 대한 경종이었다.


개성파 선수들의 등장

오랫동안 백인 꼬마 요정들이 이끌던 세계 여자 체조는 다변화되고 있다. 흑인 선수와 중국 선수들이 세계 최정상에 오르기 시작했으며 체조 불모지였던 국가에서도 세계적 선수들이 속속 배출되고 있다. 작고 귀여운 코마네치 스타일의 선수가 아닌 자신만의 장점을 뽐내는 개성파 선수들이 등장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브라질과 벨기에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판도 변화가 감지됐다. 2단 평행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벨기에의 니나 데르바엘 선수는 170㎝로 지금까지 봐왔던 여자 체조 선수와는 달리 큰 체구를 활용한 다이내믹한 경기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도쿄 올림픽 도마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레베카 안드라데는 빈민촌 ‘파벨라’ 출신으로 체조 여왕이 되면서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 체조 열풍을 만들어 냈다.

앞으로도 세계 여자 체조의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는 요정 같은 선수들의 미소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도 살펴보게 될 것이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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