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가을·겨울 루이비통 남성쇼에 등장한 남자 모델. 사진 루이비통
2022 가을·겨울 루이비통 남성쇼에 등장한 남자 모델. 사진 루이비통
2022 가을, 겨울 루이비통 남성쇼 무대. 사진 루이비통
2022 가을, 겨울 루이비통 남성쇼 무대. 사진 루이비통

2022년 1월 20일. 이전에 보지 못했던 특별한 패션 자선 경매품이 공개됐다. 루이비통과 나이키가 협업하고, 전 루이비통 남성 컬렉션 아트스틱 디렉터인 고(故)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디자인한 ‘에어포스 원(Air Force 1)’이다. 루이비통과 나이키가 협업하고, 이 시대 패션과 문화에 가장 영향력 높은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디자인한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는데, 2021년 11월 28일 심장혈관육종이라는 희귀암으로 버질 아블로가 세상을 떠나며 패션계 최고의 화제작은 세기에 남을 유작이 됐다.

200켤레 한정 생산된 루이비통의 상징인 LV 모노그램과 다미에 패턴의 ‘에어포스 원’은 루이비통 파일럿 케이스와 함께 소더비를 통해 자선 경매에 올려졌다. 루이비통 파일럿 케이스는 모노그램 가죽을 오렌지색으로 재해석한 제품인데, 브랜드 고유의 S 잠금 장치를 흰색 메탈 소재로 새롭게 마감했고, 흰색의 나이키 스우시 로고의 러기지 택(수하물 꼬리표)으로 장식해 특별하다.

아블로의 ‘에어포스 원’ 경매 시작가는 2000달러(약 244만원)였으며, 판매 수익금은 버질 아블로의 ‘포스트 모던’ 장학기금으로 기부됐다. ‘포스트 모던’ 장학기금은 가나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아프라카계 미국인인 버질 아블로가 아프리카계 미국 흑인과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의 학비 지원을 위해서 설립한 것이다.

그리고 버질 아블로의 자선 경매품이 공개된 날, 버질 아블로의 마지막 루이비통 2022년 남성복 가을/겨울 컬렉션이 열렸다.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팬덤을 거느린 슈퍼 스타의 마지막 컬렉션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루이비통은 이번 컬렉션이 버질 아블로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컬렉션이 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루이 드림하우스(Louis Dreamhouse)’라는 컬렉션 타이틀과 함께 ‘루이비통 맨(Louis Vuitton Men)’과 함께했던 버질 아블로의 여덟 개 컬렉션의 마무리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루이비통의 최고경영자(CEO)인 마이클 버크는 패션 전문지 ‘우먼스 웨어 데일리’와 인터뷰를 통해, 2018년부터 버질 아블로가 보여줬던 놀라운 패션 요소들과 그가 항상 사용하던 소년과 집에 대한 은유를 이번 컬렉션에 추상적으로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 반쯤 가라앉은 지붕의 굴뚝이 연기를 뿜어내며 쇼의 시작을 알렸고,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는 사이 댄서들이 무대에 설치된 지붕과 계단 등을 거꾸로 타고 내려오는 등 아찔한 아크로바틱 퍼포먼스를 펼쳤다. 또한 거대한 식탁에 치네케 오케스트라(Chineke! Orchestra) 단원들이 앉아, 버질 아블로의 가까운 친구이기도 한 래퍼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가 작업한 쇼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했다. 치네케 오케스트라는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 아래 흑인 연주자들이 모여 창단한 유럽의 오케스트라다.

루이비통 맨의 2022년 가을/겨울 시즌 패션쇼는 버질 아블로 그 자체였다. ‘어린이의 때묻지 않은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소년기의 이념’이란 설명처럼 소년의 성장 스토리가 이어졌다. 입체적이며 구조적인 재단과 스포츠 웨어, 스트리트 웨어 등 다양한 장르의 의상이 버클이 달린 트렌치 코트, 스타디움 점퍼(운동 선수가 운동장에서 입었던 점퍼로 야구 점퍼로 많이 불린다), 빛 바랜 색으로 워싱된 LV 로고 프린트의 데님 등이 루이비통과 나이키가 협업한 스니커즈들과 근사하게 매치됐다. 동시에 버질 아블로적인 유머 요소들이 색색의 종이 꽃다발, 강아지처럼 쫑긋한 귀 모양으로 디자인된 발라클라바(balaclava·머리, 얼굴, 목을 거의 다 덮는 방한용 모자), 페인트통 모양의 가방 등 패션 액세서리들이 버질 아블로의 마지막 루이비통 맨 컬렉션에 활기를 더했다. 이번 컬렉션의 초대장엔 버질 아블로가 생전에 남긴 ‘유머는 휴머니티의 시작점이다’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꿈, 소년, 집과 함께 유머와 위트 역시 버질 아블로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다.


소더비 경매를 통해 공개된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X 나이키 에어포스 원. 사진 소더비
소더비 경매를 통해 공개된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X 나이키 에어포스 원. 사진 소더비
버질 아블로와 메르세데스-벤츠가 협업한 ‘프로젝트 마이바흐’. 사진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인스타그램
버질 아블로와 메르세데스-벤츠가 협업한 ‘프로젝트 마이바흐’. 사진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인스타그램

거장이 남긴 유작, 고공 행진하는 가치

그렇게 버질 아블로가 직접 디자인한 마지막 패션쇼가 끝났다. 투병 중에도 컬렉션 대부분의 의상을 완성해 뒀을 만큼 그는 마지막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41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에 더 이상 그의 패션쇼도, 그가 작업한 디자인이나 협업 작품들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패션계와 그의 팬들은 믿기 어려웠다. 그만큼 그가 생전에 남긴 유작들의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소더비 경매를 통해 1월 26일 23시부터 2000달러로 시작한 루이비통 X 나이키 에어포스 원의 경매는 2월 9일 밤 12시에 종료됐는데, 대다수 사이즈가 약 10만달러(약 1억2220억원)에 낙찰됐고, 최고가는 35만2800달러(약 4억3041억원)를 기록했다.

버질 아블로의 패션 브랜드 ‘오프 화이트(Off-White)’와 나이키가 협업한 ‘조던 1 X 오프 화이트 레트로 하이 시카고 더 텐’은 사망 직후 가격이 기존 리셀 가격인 670만원대에서 1100만원대까지 급상승했다. 천재 예술가들의 사망 이후 작품 가격이 치솟아 오르듯, 예고 없던 패션 천재 버질 아블로의 사망으로 그가 생전에 나이키와 작업한 스니커즈들의 리셀 가격이 제일 먼저 빠르게 급등하고 있다. 버질 아블로가 세상을 떠난 후 공개하게 된 루이비통의 200만원대 프리미엄 양말 시리즈들도 희소가치 때문에 리셀가가 급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엇보다 버질 아블로의 유작 중 큰 화제를 일으켰던 ‘프로젝트 마이바흐’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메르세데스-벤츠 디자인 총괄 고든 바그너는 버질 아블로에게 특별한 협업을 제안했었다. 첫 협업 작품으로 벤츠의 정통 오프로더인 G 바겐을 레이스카 스타일의 ‘글라덴 바겐’으로 재탄생시켜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두 번째 협업으로 ‘프로젝트 마이바흐’를 진행 중이었다. ‘프로젝트 마이바흐’는 버질 아블로를 추모하며 마이애미의 루벨 미술관에서 공개됐다. 최고급 럭셔리 세단인 기존의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정체성을 새롭게 재해석하기 위해, 럭셔리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시도가 특별했다.

2인승 전기 오프로드 쿠페 모델로, 고급 차에서 보기 어려운 작은 직경의 휠, 나사로 박은 휠 하우징, 파이프로 만든 케이지와 루프 랙 그리고 캐리어처럼 디자인된 자동차 내부 시트, 내장된 공구 박스와 마이바흐 로고가 새겨진 도끼 등은 버질 아블로적인 상상과 비틀기를 보여준다. 대자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전기 쇼카는 미래 전기 모빌리티 시대 여행의 모습을 함축시킨 것이다.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에까지 무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선사했던 버질 아블로, 그는 단지 패션 디자이너만이 아니었다. 의상, 스니커즈, 가방, 자동차 등 세상의 모든 사물을 캔버스 삼아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지닌 작품을 창작해온 아티스트였다. 2013년 버질 아블로가 자신의 브랜드 오프 화이트를 설립한 후 2021년 11월 28일까지, 이전 패션 천재들과 달리 괴팍하거나 신경질적이지 않은 젠틀하고 마음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아티스트 버질 아블로가 있어서 패션계는 풍요로웠다. 오프 화이트, 루이비통, 나이키, 메르세데스-벤츠라는 브랜드 네임이 아닌 ‘버질 아블로’ 그 자신이 아이콘이며 브랜드 네임이 됐다. 패션, 아트, 디자인의 경계를 허문 버질 아블로의 유작들은 21세기 문화의 아이콘으로 기록될 것이다.


▒ 김의향
패션&스타일 칼럼니스트, 케이노트(K_note) 대표

김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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