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부시코바의 사진집 ‘나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 남편을 어떻게 설득했는가’ 표지. 사진 김진영
올가 부시코바의 사진집 ‘나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 남편을 어떻게 설득했는가’ 표지. 사진 김진영

너무나 당연해서 질문조차 갖지 않았던 ‘어떤’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상대를 내 쪽으로 설득하거나 아니면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상대와 나 사이의 부조화를 해결하려고 한다.

러시아 사진가 올가 부시코바(Olga Bush-kova)에게는 도저히 다름을 인정할 수 없는 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설득도 쉽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갖는 문제였다.

올가에게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한 번도 질문을 던져본 적 없는 그저 당연한 것이었다. 늘 엄마가 되고 싶었고 아이가 있는 미래를 꿈꿨다. 결혼 전 아이를 갖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기에 결혼 후에야 남편 미샤가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샤는 올가에게 왜 아이를 가지고 싶은 건지 질문하고 아이를 정말 원하는지 되물었다. 그리고 남편이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역설적이게도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남편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거는 이러했다. 여성이 직업적인 독립을 이루기 전에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면 전업주부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고, 남편은 이것이 사진가가 되고자 하는 아내의 삶을 결국 망칠 것이라 생각했다.

올가는 자신이 일도 육아도 잘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말로는 소용이 없었다. 증명해야 했다. 이들은 논의 끝에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장난스러운 합의’에 이른다. 올가가 사진집을 출판하고 사진가로서 인정받으면 아이를 가지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올가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아이를 낳고자 하는 자신의 깊은 욕망을 주제로 삼기로 한다. 태어날 수 있을지 아닐지 결정도 되지 않은 아이는 사진으로 찍을 수 없었지만,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남편을 설득하는 과정을 기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 남편을 어떻게 설득했는가(How I Tried to Convince my Husband to Have Children·2021)’에는 바로 이러한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아이를 갖고자 하는 욕망과 관련된 모든 자료가 수집돼 있다.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아이들 사진. 사진 김진영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아이들 사진. 사진 김진영

우선 첫 번째로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이들 사진이다. 작가는 친구들의 아이들 사진과 아이가 포함된 행복한 가족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를 집의 빈 벽에 붙이기 시작했다. 오래 본 사진을 떼고 새로운 사진을 붙이기를 반복했다. 당신도 한때 아이였다는 점을 남편이 자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남편의 가족으로부터 오래된 가족 앨범을 받아 그의 아이 시절 사진도 붙였다. 이렇게 집 안에 만들어진 아이들 사진 전시장의 풍경도 사진에 담았다.

아이의 사진을 통해 아이를 원하지 않던 사람이 생각을 바꾸어 아이를 원하게 될 수 있을까. 올가 역시 이것이 순진한 접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올가가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벽에 붙였던 것은 올가 역시 남편의 주장이 매우 합리적이라 느꼈기 때문이었다. 논리적으로는 반박하기 어려웠기에, 올가는 자신의 욕망을 사진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남편이 조금이라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집 안에 포토월을 만든 것이다.

두 번째는 작가의 일기다. 친구가 낳은 아이를 볼 때 자신이 느꼈던 감정, 엄마가 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 남편에 대한 불만, 벽에 붙은 아이들사진에 대한 남편의 반응 등이 기록돼 있다.

세 번째는 올가와 미샤가 나눈 토론의 녹취록이다. 둘은 아이를 갖는 문제에 관해 수차례 토론했고 이를 녹음했다. 아이를 갖고자 하는 것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때문인지, 아이를 가지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지 등을 두고 이들은 격렬하게 토론한다. 텍스트에 기재된 수많은 느낌표는 이들이 나눈 대화의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사진집에는 그녀가 아이를 갖지 않기 위해 먹어야 했던 피임약 사진이 40여 장 담겨 있다. 사진 김진영
사진집에는 그녀가 아이를 갖지 않기 위해 먹어야 했던 피임약 사진이 40여 장 담겨 있다. 사진 김진영

마지막으로 네 번째 요소는 피임약 사진이다. 작가가 기록한 약 3년간의 설득 과정 동안 작가는 끊임없이 피임약을 먹어야 했다. 책에는 40여 장의 피임약 사진이 PVC에 인쇄돼 4쪽마다 한 번씩 규칙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규칙성은 여성의 신체에서 배란이 정기적으로 일어나며, 임신을 막기 위해서는 약 또한 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책 전반에 걸쳐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독자 역시 규칙적인 쪽수에 맞춰 주기적으로 알약을 마주하고 책장을 넘겨야 한다.

작가는 이러한 네 가지 종류의 사진과 글을 담고, 작은 사이즈, 노출형 제본, 군데군데 수록된 실제 일기장의 스캔 이미지 등을 통해 ‘아이를 갖겠다는 하나의 목적에 초점을 둔 인물의 일기장 같다’는 인상을 주도록 디자인했다.

책은 2014년 11월 1일에 기록한 다음과 같은 작가의 일기로 끝난다. “가제본이 완성되었다. 첫 번째 버전이다. 이제 약을 그만 먹어도 되는 걸까? 우리가 이제 시도해볼 수 있을까? 책이 출판되면, 당신은 나를 프로로 인정해줄까? 출판사를 찾아봐야겠다.”

사진집을 출판해 사진가로서 인정받으면 아이를 낳자는 올가와 미샤의 장난스러운 합의는 남편이 진심으로 아내가 예술가로 성공하길 바랐기 때문이었고, 실제 올가에게 작업의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마지막 일기가 가슴저리게 들리는 까닭은 올가가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혹 스스로 만족한다 한들, 자신이 무언가를 해냈는지 아닌지, 그래서 이제 아이를 가져도 되는지 아닌지를 스스로 자답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올가라는 한 인물의 이야기는 여성에게서 아이와 일이 이토록 양립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뼈아프게 상기시킨다.

이들은 이후 마침내 아이를 가지기로 합의했을까? 아니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채로 살아가게 됐을까? 책으로는 어떤 엔딩을 맞이했는지 알 수 없다. 이 책은 아이에 관한 책인 듯하지만 결국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문제를 둘러싼 두 사람의 각기 다른 세계관이 존재하고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 끊임없이 부딪히는 과정은 비단 ‘아이’에 관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책의 제목은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어떻게 설득했는가”라는 틀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시점으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책에는 미래의 아이(possible future children)라고만 언급된 그 아이의 얼굴을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아이를 갖는 엔딩을 통해 작가는 새로운 시작점을 통과해 현재 커리어와 가정에 대한 또다른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었다.


▒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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